[사회] 뉴스 기사입력 2011-09-05 오후 1:50:00
이명박 대통령님, 정몽준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두 분께 전달될지 어떨지 모를 편지를 부치는 이유는 현대미포조선 노동자인 저희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두 분께서는 제 아버지가 겪고 있는 부당함에 귀 기울이실 의무가 있습니다. 이는 두 분이 그만한 책임이 있는 위치에 계시기 때문임은 물론이고 평소에 두 분께서 말씀하시는 지론에 비추어 보았을 때 두 분은 그 지론과 일치하지 않은 상황으로 노동자인 저희 아버지를 부당함에 몸서리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있는 김소연
‘공정사회’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최근 ‘공생발전’을 강조하십니다. 강자만 독식하며 살아남는 정글이 아닌 함께 살아가며 발전하는 공정한 사회가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것일 테고요. 저는 그것이 요즘처럼 물가대란, 취업난 같은 경제난의 행렬로 거리에 음울함이 넘치는 시대에 참 적절하고 훌륭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정몽준 의원께서도 범현대가의 통큰 기부를 이끌어내시며 대통령의 생각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두 분의 콤비 플레이가 미덥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아보시려는 꼼수는 아닌지, 다가온 대선을 겨냥한 생색내기 정치쇼는 아닌지 먼저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방식의 돌려 말하기조차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동안 두 분께서 보여준 모습은 국민적 원성을 사고 있는 행태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저의 아버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숱한 아우성을 냈던 이들 중 한 명으로서 두 분께 끊임없는 탄원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저와 저희 가족에겐 제자리 걸음이었습니다. 2009년 1월 17일 사내하청 복직 연대투쟁 농성장에서 현대중공업 경비대 심야테러가 일어난 지 벌써 2년 7개월이 지났습니다. 회사 안팎을 지키는 복면을 한 경비대 50~60여명이 자정 무렵 쇠파이프, 각목, 소화기로 무장하고 농성장 주변을 지키던 경찰 30명을 밀쳐내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가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것이 명백한 범죄 행위임을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상식이라곤 전혀 통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정규직 노동자 대표를 맡으신 아버지께서는 집중적으로 표적 테러를 당하여 2년 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테러의 후유증으로 병원 치료를 받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계십니다. 아버지 뿐만이 아닙니다. 이 사태로 인한 우리 가족의 정신적인 피해는 나날이 심해져 갔고 피해자임에도 꾸준히 날아오는 벌금 고지서는 가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어머니는 늘 시름시름 걱정만 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저 자신도 이 사회에 대한 믿음과 신뢰보다는 불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희망찬 내일을 꿈꿔야 할 대학생이지만 고등학생 때 이미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노골적인 부조리함과 모순을 아주 적나라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경찰, 검찰 측에서는 피해자가 뻔히 존재함에도 복면을 한 경비대 중 누가 아버지를 테러했는지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처벌을 할 수 없다고 발뺌합니다.
또한 이 사건을 주제로 진행한 한 번의 국정조사와 두 번의 국정감사 역시 대기업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나마 올해 초, 진보신당은 당시 저희 아버지와 함께 테러를 당했던 몇몇 당원들 명의로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했고 법원은 “법치국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불법행위”로 판결했습니다. 현대중공업의 항소 포기로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만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여전히 저의 아버지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주주이자 실질적인 오너입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이 정몽준 의원 사무실과 청와대를 아무리 찾아가도 되돌아오는 건 벌금 고지서일 뿐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정몽준 의원의 경호원들에게 심한 모욕을 겪기까지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과 정몽준 의원님 두 분께 제가 느끼는 유일한 인간적 감정은 불신과 분노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공정사회이고 공생발전인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두 분이 뻔질나게 사용하시는 ‘모두’, ‘함께’라는 어휘는 그저 거짓이고 가짜로 들릴 뿐입니다. 겉만 따뜻하고 속은 차디찬 호빵같은 느낌이랄까요? 병영식 노무관리와 사설 경비대에 의한 살인적 폭력, 비정규직 탄압이 버젓이 행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떡고물들로 기업인이 유력 정치가가 되고, 뒤를 봐주는 검경은 출세가도를 달리는 게 바로 당신들의 공정사회고 공생발전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를 증명해주세요. 저는 두 분이 이 나라, 이 사회를, 그리고 국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두 분의 언행일치를 기원합니다. 또한 믿고 싶습니다. 정말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김소연
김소연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김석진 의장 큰딸 (성공회대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