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무당' 노무현이 노동자 잡네

  • 글쓴이: bulnabia
  • 2003-08-28

민주노총 성명 전문.

1. 아예 모르는 사람 보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자칭 노동운동에 대해 좀 안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연일 노동자들을 매도하고 민주노총을 욕하면서 강경탄압을 지시하고 있다.

25일에는 대화를 거부하는 노동단체는 그 법이 옳든 그르든 묻지 않고 단호하게 처리하겠다더니, 26일에는 아예 민주노총을 지목해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다.

'민주노총이 화물연대 불법 파업에서 모든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민주노총의 활동은 정당성이 없다'는 게 대통령 말이다. 대통령의 불호령 속에 경찰은 화물연대 지도부 16명에게 체포영장을 때리고, 민주노총 중앙과 부산 사무실을 압수수색한다며 하루종일 경찰병력을 넣다 뺐다 긴장을 높였다.

전두환 노태우정권이나 김영삼 김대중 정권도 아니고 참여정부을 표방하며 엉뚱하지만 재벌과 수구세력에게 '친노정권'이란 별명까지 얻은 노무현 정부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2. 우리는 노대통령이 노동문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의 출발이라는 판단이다. 듣자듣자 하니 앞뒤도 맞지 않고 참으로 엉뚱한 이야기뿐이다.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노동문제에 직접 관여한 경험이래야 87년 6월 항쟁 직후 불과 몇 달이었고 그것도 88년 초 바로 총선에 출마해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현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 한 노동사건 담당 변호사 생활 기간은 모재벌을 비롯한 기업을 위한 변호인 활동을 겸한 세월이었다. 국회의원 시절의 청문회며 파업현장 연설을 말하지만 그게 벌써 20년 가까이 흐른 먼 옛날 일이다.

엄청난 사회변화 이상으로 달라진 노동운동의 변화를 먼발치에서 그것도 정치인의 이해관계로 관찰해온 한 사람의 기성 정치인일 뿐이었다.

설사 기성 정치인과는 다른 잠깐의 인생경험이 가슴에 남았다 해도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다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노동운동에 대한 이해 수준 자체가 엉뚱하기 짝이 없다.

3.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경제문제 등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노대통령의 노동문제에 대한 소신과 철학의 깊이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불과 여섯 달 만에 180도로 뒤바뀐 말과 태도이다. 소신과 철학의 깊이와 180도로 돌변하는 시간은 비례하는 것인가. 노동관련 대선공약이나 인수위 시절 노동정책 방향과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의 노동문제와 관련한 태도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겠다는 감동 어린 공약은 허공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공격할 때 양념거리로만 비정규직의 아픔을 언급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임기 안에 주5일 근무제를 완료하고 비정규직에게 월평균 1.5일 휴가를 보장하겠다는 대선공약을 팽개치고 재벌이 시키는 대로 국회 계류 정부안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이루겠다는 노동정책의 큰 방향은 사라지고 영국 대처리즘이나 미국 레이건의 노동탄압을 능가하는 '사용주 대항권' 강화로 돌변했다.

철도·전교조·화물 관련 노정합의를 파기한 데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정권이 돼버렸다.

4.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내세운 노무현 참여정부에게 노동자와 서민들은 큰 기대에 부풀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불과 여섯달만에 즐겨 쓰는 단어를 '동북아 중심국가'에서 '2만달러시대'로 바꿨을 뿐, 분배는 간 데 없고 성장만 나부끼는 앙상한 가지만 흔들고 있는 참여정부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중심의 성장위주 정책에 물든 경제관료들의 포로가 돼버린 노무현 정부, 과연 이들에게 개혁을 바랄 수 있겠는가. 노동배제의 원칙 아래 경제논리와 치안·공안정책의 부속물로 전락한 노동정책을 사회정책과 인권복지정책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한국 현대사의 교훈은 노무현 정권에게는 이미 '쇠귀에 경 읽기'가 돼버렸다.

외환위기의 어려움 아래서도 출범 일곱 달 만에 파업현장에 경찰병력을 투입했던 국민정부는, 불과 넉 달 만에 철도파업을 무력 진압한 참여정부 앞에서 '그래도 양반'으로 기록되게 됐다.

취임 첫 해 노동자 87명 구속에 머물렀던 문민정부의 기록은 출범 여섯 달 만에 그에 버금가는 수의 노동자를 구속한 노무현 정권 앞에서 '김영삼은 그래도…'로 자리를 옮겼다.

'선무당' 노무현 정부에게 노동문제는 노동배제와 경제·치안·공안논리의 부속물일 뿐 아니라 '그 법이 옳든 그르든 묻지 않는' 오기에 찬 적대감 섞인 광기 어린 민간파쇼통치 대상물이 돼 가는 꼴이다.

5. 돌연변이가 간혹 있을지라도 생명은 영원한 법이다. 시민권조차 주어지지 않은 노동운동을 '사고뭉치'로 몰아세우는 뒤틀린 오기로 강경 탄압한다고 해서 순리로 풀지 못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화물연대 파업, 이렇게 억누르면 반드시 다시 터지게 돼 있다. 민주노총을 근거 없이 몰아세우고 독설을 퍼붓고 뭇매를 때린다고 해서 노동운동이 사라지거나 위축되거나 쥐 죽은 듯 강요된 침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회갈등을 순리로 풀려는 성실함과 지극정성이 없는 권력의 아집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고 말 것이다. 뒤틀린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노동운동을 매도하고 후려치는 일은 당장은 쥔 권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결국은 우스운 얘깃거리로만 남을 뿐이다.

6.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이 최소한 여소야대의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노동관련 대선공약을 성실히 지키고 노동개혁을 실현하길 진심으로 바랬다. 최선을 다하는 존경하는 대통령을 갖길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일이 돼버렸다.

취임 여섯 달이 막 지난 노무현 정권이 독설과 후려치기로 민주노총을 때려잡는 것이 남은 4년 6개월 임기를 노동운동과 죽기살기로 붙어보자는 선전포고라면 우리도 달리 방법이 없다.

오랜만에 조중동과 한나라당에 칭찬 받으며 벌인 노동탄압이 소신에서 우러나온 일이고, 앞으로도 쭉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겠다면 그것은 노무현 대통련 자신의 선택이며, 그 책임 또한 노대통령 몫이다.

상반기 사업을 매듭짓고 하반기 사업방향을 설계하는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가슴 속 깊숙이 담아둔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에 대한 측량하기 어려운 적대감을 드러내 강경한 탄압을 공공연하게 선포한 오늘의 상황을 우리는 더하고 뺄 것도 없이 노동운동이 처한 정세로 정확히 반영해나갈 것이다.

오는 28일과 29일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함께 국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이 투쟁을 시작으로 오기와 광기가 서린 노무현 정권의 노동자 천대와 노동운동 탄압에 강력히 맞서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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