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화순, 담양 역사기행을 다녀와서........
노동대학에 신청하고 개강집체교육을 통해 토론방식과 진행방법을 배우고 본 강좌 9강좌 중 가장 관심을 가졌던 노동의 역사부분에 대해 아직도 많은 부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노동대학 종강집체교육 대신 종강 역사기행으로 바꾸어 광주, 화순, 담양으로 역사기행을 간다는 말에 선 뜻 라인의 모든 문제를 제쳐놓고 신청을 했다.
장마와 태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 찌는 더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7월의 마지막 주에 현자노조 노동대학1기를 함께 했던 우리들은 노동자 투쟁의역사가 묻혀있는 역사기행을 위해 광주, 화순, 전남으로 종강역사기행을 떠났다.
출발 전 작은 소란을 뒤로하고 전남화순에 도착하여 한국역사연구소 박준성 선생님과 김진순 노동자교육센터 대표와 함께 ‘천불천탑’이 있다는 화순 운주사에서 ‘못생긴 부처’와 ‘누운 부처’를 보고 박준성 선생님으로부터 역사기행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와 운주사 창건에 관련된 설명을 듣고 고려 초 권력자들과 민초들의 생각차이가 불상으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운주사를 둘러봤다.
운주사를 출발하여 화순탄광에 도착하여 일제의 수탈정책에 관한 설명과 ‘공장자주관리운동’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해방 이후 노동자들이 공장을 어떻게 관리해었며 왜 계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든 중 여기 화순탄광에 ‘5· 18민중항쟁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는 말에 놀라 달려가 본 내 눈에 박힌 글귀는 더더욱 놀라웠다.
1980년 5월 21일 밤 9시, 화순탄광 노동자들이 다이너마이트를 8톤 트럭 7대를 통해 다이너마이트를 전남도청으로 실어 날라 그 다이너마이트가 몇 일되지 안치만 ‘해방 광주’를 지켰다는 사실조차 나는 몰랐었다.
‘화순탄광 다이너마이트 사적비’가 이번 역사기행의 “핵심”이 다라는 생각과 함께 노동자들의 위대한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화순탄광을 뒤로하고 숙소인 금호리조트에 짐을 풀고 노동대학 각 조별 졸업논문 발표를 시작으로 마무리강의와 2004년 현자노조 노동대학1기 졸업식을 마치고 간단한 단결의 장을 통해 서로간의 동지애를 확인하고 1일차 기행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튼 날 민주화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광주 5.18묘역을 찾아 가기 전 담양 소쇄원에 들러 현재의 건물들이 자연을 거슬려서 건물을 짓은 것에 비해 소쇄원은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자연을 이용해 건물을 축조하였다는 설명과 함께 옛 선조들의 지혜와 정취를 느끼고 광주 국립5.18묘지에 도착하여 민주의 문을 지나 묘지에 들어서자 유명 정치인(?)들이 기념식수를 했다는 표석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민주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 앞에 뾰족이 서있는 거대한 탑이 마치 열사들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두어 놓고 있다는 느낌 속에 묵념을 마치고 5.18광주 항쟁관을 둘러보고 광주 전남지역 노동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구 5.18묘역으로 발걸음을 옮겨 노동열사들에 대한 묵념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부르고 울산으로 향했다.
울산으로 내려오면서 최규진 선생이 역사기행을 한 후 쓴 글 중 “오늘의 ‘민주’에 내일의 ‘광주’가 갇혀있구나. 미래의 ‘참 민주’를 열어가야 할 노동자는 아직 ‘갇힌 광주’ 앞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구나.” 라는 말이 나의 머리에 자꾸 맴 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현자노조 노동대학 역사기행을 함께하기 위해 와병중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 동행 해 주신 박준성 선생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p.s: 아무리 휴가기간이지만 사이트에 광고성문구는 삭제를 빨리해주세요.
보기에 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