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 및 10장2조에 대해

  • 글쓴이: 노동자의힘
  • 2004-08-20


계급적 산별의 핵심은 조합원 주체의 현장투쟁이다

건의료노조에게 04년은 산별교섭을 성사시키고, 본격적인 산별교섭시대를 연 첫 해다. 보건의료노조는 '역사적인',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은'이라는 등의 화려한 수식어로 산별총파업, 산별합의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산별협약의 의미는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협약인가? 98년 산별노조를 건설한 뒤부터 7년간 보건의료노조의 중요한 목표였던 산별교섭이 성사되었지만, '산별교섭을 통하면 나아진다'라고 했던 말들은 협약에서 관철되었는가?

보건의료노조는 산별요구로 '산별기본협약, 주5일제, 의료의 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산별 임금 및 특별요구', 지부 요구로 '주5일제 관련 인력 요구, 임금인상 세부 요구, 지부 현안문제 등', 대정부 요구로 '보건의료정책, 노동정책, 산별교섭 제도화 등과 관련된 요구'를 하기로 하고, 교섭방침으로 '2004년을 산별교섭의 원년으로 만든다, 산별요구는 지부교섭에서 다루지 않는다' 등으로 정했다. 애초에 지부별로 각개전투해서 쟁취하기 힘든 요구들을 산별총파업을 통해서 힘있게 쟁취하는 것이 그 취지였겠으나, 산별합의안이 노동조건개악을 담고 나온 시점부터 이 교섭방침은 오히려 지부투쟁을 차단하고, 지부의 문제제기를 '반조직적 행위'로까지 인식되게 만드는 효력(?)을 발휘했다.

산별교섭·산별총파업에 대해 보건의료노조의 평가는 '첫 산별교섭의 성사로 산별교섭 시대의 개막, 지역·특성·조건의 편차를 뛰어넘은 산별합의안, 산별교섭의 지평을 넓힌 최저임금제·보건연대기금, 위력적인 산별총파업, 산별총파업의 합법성 쟁취, 근기법 개악을 뛰어넘은 주5일제 쟁취, 의료공공성 강화의 새로운 전화점 마련' 등이다. 하지만, 산별합의안의 실내용은 보건의료노조의 평가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합의안에 담긴 의미들

보건의료노조 산별합의안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용자 단체 구성과 산별교섭 노사 공동준비에 관한 1장과, 지부교섭의 빠른 타결을 위해 노사가 노력하자는 8장, 주 5일제 시행대상 병원은 병원의 비용부담 증가 등을 고려하여 기본급 2% 인상, 그 외 병원은 기본급 5%인상을 합의안 9장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더라도 보건의료 노조 합의안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2장 의료공공성 강화 :

보건의료 노조는 의료 공공성 쟁취로 '환자권리장전'을 합의했으나, 이것은 '의료 공공성 강화 투쟁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와 자본은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법인'을 허용함으로써 의료기관의 돈벌이를 합법적, 무한정 벌일 수 있게 하는 등 자본유치를 빌미로 보건의료의 상업화에 앞장서 왔다. 건강보험의 경우 98년 IMF 이후에 보험료를 체납하여 건강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의료사각지대'인구가 150만 가구에 달함에도 정부가 한 조치는 체납된 보험료의 징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었다. 2003년에 건강보험재정이 1조원의 흑자를 달성했음에도, 정부는 건강보험재정안정 대책을 이유로 올해 보험료를 6.75%인상했다. 건강보험이나 경제특구 등에서 발생되는 상업화·영리화에 대한 제기는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또한 의료 공공성 쟁취와 관련하여 산별노조 차원에서 사회적 의제로 제시해야 할 것과 서울대병원의 단기병상제 폐지 요구처럼 지부에서 구체적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지부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의료공공성 강화와 관련하여 지부교섭도 열어두었어야 한다.

3장 주5일제 노동시간 단축 :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기준근로 시간으로 명시했지만, 연월차 휴가 및 생리휴가를 개악된 근기법대로 받아들였다. 이를 재직중인 노동자들에게 한정함으로써 신규 직원들은 이조차도 적용을 받지 못하도록 해 놓았고, 결과적으로는 노조 내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양상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신규직원과 재직직원의 차별적용'이라는 것은 산별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합의를 한 것이다.

4장 비정규직 요구, 5장 병원의 사회적 노력 :

4장 직접고용의 경우 '단계적 정규직화'나 '가능한 고용보장 노력' 등으로 합의함으로써 보건의료노조에서 몇 년간 요구했던 것 이상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5장은 간접고용과 관련한 항목이다. 간접고용은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가 분리되기 때문에 노동3권 박탈, 부당노동행위, 상시적 고용불안 등에 시달려왔다. 이미 서울대 시설관리 노조를 비롯한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의 사용자성이 불인정'되기 때문에 투쟁해 왔고,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이 용역회사 직원들의 직접사용자는 아니지만'이라고 산별합의안에 명시함으로써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노동유연화 확대에 기여하게 되었다.

6장 최저임금제 :

민주노총에서는 2004년 최저임금에 대해 전체 노동자 임금수준의 50%를 요구하고 투쟁에 나섰다. 보건의료노조에서 최저임금 관련하여 합의한 내용은 "보건의료산업 노동자(산업분류 : 보건업)의 최저임금은 노동부 '매월 노동통계 조사보고서'에 의거한 월 평균 정액급여의 40%를 산업별 최저임금으로 합의"이다. 보건의료노조의 합의는 이미 금속노조 산별교섭에서 사용자들이 '보건의료 노조의 최저임금 40%안'을 들고 나왔던 것처럼, 전체 최임제 투쟁전선에서 기준을 만드는 안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최임제 투쟁에 악영향을 미쳤다.

7장 '보건연대기금' :

보건연대기금의 합의내용은 "조합과 사용자는 '전체 보건의료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비정규직 복지, 모성보호, 의료산업 발전' 등의 용도로 보건연대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노사 동수 각 3인이 참여하는 '보건연대기금 노·사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기금 조성방법, 운영방안 등 세부사항을 논의하여 노·사 합의 후 시행한다"로 되어 있으며 '정부위원회의 참여와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아직 기금조성방법이나 운영방법 등이 논의되지 않았지만,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한국사회 성장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양극화의 극복을 위해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가 필요하다"는 자본과 정권의 의도대로 관철될 수밖에 없음이 불 보듯 뻔하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격차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어떻게 투쟁으로 돌파하느냐가 해결책이지, 결코 '연대기금'의 조성으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사 공동관리를 전제하고 있는 연대기금은 '공동관리'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통제를 의미한다. '보건연대기금'은 노동유연화에 대한 승인에 다름 아니다.

10장 2조로 드러난 문제들

10장 협약의 효력 :

"2) 단, 제 9장(임금), 제3장(노동시간단축), 제1조(근로시간단축), 제5조(연·월차 휴가 및 연차수당), 제 6조(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며, 동 협약 시행과 동시에 지부의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을 개정한다."

첫째, 개악된 근기법에 따라 단협을 개악시키려는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었다.

10장 2조에서 지부 단협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효력을 가지는 사항들은 개악된 근기법에 따른 것으로 월차유급휴가의 폐지, 연차유급휴가 수 제한, 실질적으로는 삭감인 생리휴가(사용시 월 1/30에 해당하는 금액이 월급에서 공제됨) 등을 합의했다. 근기법 개악을 통해 단협을 개악시키고자 하는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었으며, 이후 단협 개악의 여지까지 제공하고 있다. 자본이 주장하는 주 5일제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탄력적 운영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는 이미 현장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관철되고 있고, 자본의 노력이 산별합의안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또한 10장 2조는 산별합의 이후 지부의 쟁의권을 봉쇄하려는 자본의 '이중쟁의 금지' 요구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둘째, 10장 2조는 상층 중심의 관료화된 산별노조로 만드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산별노조 재편을 통해 제도화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노조가 산별노조 재편과정에서 조직의 질적 강화를 바라지만, 정권은 반대로 산별노조 재편과정(파업권 약화, 전입자 축소 등을 통해 노조 기능의 약화)에서 이런 장치를 제도화하려고 하고 있다. 노조의 투쟁력 약화는 사회적 합의체제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서구의 사회적 합의체제를 연구한 모든 학자들, 노무현정권, 노사정위원회 관계자, 사용자 단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사회적 합의체제의 전제 조건의 하나로 노동조합 하부를 통제할 수 있는 중앙집권화된 상급조직을 들고 있다. 사회적 합의란 노동조합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밑으로부터의 요구를 통제하지 못하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요구의 통제는 곧 투쟁의 통제이다. 개악된 근기법에 따른 노동조건의 후퇴, 신규직원에게 차등적용, 임금인상안을 2%로 동결, 산업평화와 사회적 분위기로 노조에게만 양보를 강요하고, 노조 상층을 '산별교섭, 사회적 교섭'이라는 형태로 묶어둠으로써 하부를 통제하는 양상은 '노동시장 유연화, 임금삭감, 노조투쟁력 약화' 등을 기치로 노무현 정권이 부르짖는 사회적 합의체제와 흐름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10장 2조를 통해 지부 파업권을 통제하려는 사측의 태도, 10장 2조를 포함한 산별합의안에 대한 문제제기를 반조직적 행위로 매도하는 본조의 태도, 산별총파업에서는 우호적이었다가 지부투쟁에 대해서는(서울대, 경북대 병원 노조의 예처럼)불법파업 운운했던 노동부의 태도 등에서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지부) 현장의 자발적 투쟁의 봉쇄'였다. 현장 투쟁이 봉쇄된 산별노조에게 남는 것은 상층 중심의 관료화된 껍데기뿐인 산별노조 일 뿐이다.

셋째, 지부 현장투쟁의 족쇄로 작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보건의료노조 내에는 국립대 병원, 사립대 병원, 지방공사 의료원, 적십자 병원, 중소 병원 등 다양한 병원 사업장이 모여있다. 이들은 특성과 조건이 뚜렷이 다르기 때문에 평준화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상향 평준이냐, 하향 평준이냐'라는 것 보다 기준협약을 어떠한 내용으로 마련하느냐가 핵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산별기준협약을 정하고 이를 각 사업장의 특성과 조건에 맞게 투쟁을 통해 보충할 수 있게 했어야만 지부의 현장투쟁을 지지·엄호 할 수 있었다. 금속노조의 경우 '대기업은 낮추고 중소 사업장은 높여서 격차를 줄이는 게 아니다. 전체 노동자들에게 해당하는 사회복지제도, 최저임금제를 현실화 시켜서 격차를 줄인다. 정기적인 임금인상도 산별협약에서는 최저기준을 마련하고 기업별로 보충교섭 해 보완한다'로 하고 있다.

10장 2조의 족쇄의 효력은 이미 여러 병원지부의 투쟁에서 드러났다. 서울대병원처럼 교섭자체를 사측이 거부하는 빌미가 되거나, 제주대 병원처럼 산별합의안을 넘어 생휴 임금보전을 신규직원에게 적용키로 노사가 합의해도 교육부에서 재교섭 압력이 들어오거나, 교섭거부가 명백하기 때문에 아예 지부에서 교섭내용으로 다룰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관건은 '산별공동 투쟁으로 어떻게 돌파하느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산별교섭안은 최저기준을 합의하고, 적어도 각 지부가 투쟁으로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게 열어 두었어야 했다.

희망은 '보건산별'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투쟁하는 지부다!

보건의료 노조에게 올해는 첫 산별총파업·산별교섭을 벌인 해이다. 정권과 자본에게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협약은 이후 산별교섭에서 모델로 삼을 것이기에 더욱 그 출발이 중요한 해였다.

서울대병원지부의 경우 10장 2조와 관련하여, "보건의료노조가 이 조항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공식 의결기관을 통해 차기 년도 단체교섭에서 이를 삭제키로 결의하지 않는 한,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하겠다"는 조건부 탈퇴를 조합원들의 89.9%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서울대병원노조 조합원들은 지금의 보건 산별의 모습이 '계급적 산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투쟁으로 보여주었다. 산별교섭 상대인 병원사용자와의 '교섭 성사'가 절대시된 나머지, 정작 산별노조의 주체인 조합원들은, 조합원들의 현장투쟁은 외면당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왜 탈퇴까지 불사하는지에 대한 핵심은 제껴 두고, 자본 내에서가 아니라 노동운동 내에서도 형식적 산별주의에 빠져 있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다.

10장 2조 문제제기에서 핵심은 "노동조건의 후퇴"와 "조합원 주체들의 투쟁에 대한 통제, 봉쇄"에 대한 거부다. 어떠한 노조든지 간에 실질적인 힘은 조합원 주체들에게 있는 것이며, 투쟁에 대한 조합원들의 판단은 최우선적으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현장투쟁이 거세된 채 계급적 산별노조는 불가능하다. 현장투쟁에 대한 통제는 투쟁하는 대중의 통제뿐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지도부' 역시 자본과 정권에 통제 당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산별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라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준 서울대병원 지부의 결정은 정당한 행위다. 산별노조의 희망은 보건산별이라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서울대병원 지부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계급은 전폭적 지지와 연대로 화답해야 한다.

2004.8.20
노동자의 힘

 

수정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