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던 당부

  • 글쓴이: 박준성
  • 2007-04-08

언제였던가. 장소와 분위기는 또렷하게 떠오르는데 시간을 모르겠다. 지리산 자락에서 금속연맹 조직담당자 교육을 하고 뒤풀이를 하는 자리였다.

편도선이 부어서 지리산 흙돼지 바베큐 안주에 그렇게 좋아하는 소주도 한 잔 마시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술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을 지경인데도 목소리 높여 강의는 잘 했다. 목은 아프지, 술은 못마시지, 고통스럽게 앉아 있는데 술기운이 약간 오른 한 동지가 할 이야기 있다며 바짝 다가와 앉았다. 강의를 잘못했나 싶어 허리를 곧추 세우고 마주 보았다.

내 나이 쯤 돼 보이는 그분이 양손으로 내 손을 꼭 감싸쥐고는 "선생님, 밑빠진 독에 뭍 붇기라 생각하지 마시고 구멍난 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는 이치를 잊지 마세요. 자갈밭에 물대기라고 떠나지 마시고 자갈밭에 씨뿌리고 가꾸는 농부같은 마음으로 노동자 교육 포기하지 마세요"하였다. 바짝 긴장했었는데... 술잔을 부딪치고 눈을 질끈 감고 목에 힘을 주어 소주 한 잔을 꿀꺽 삼켰다. 고마왔다.

떠나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나. 그렇게 듣는 한 마디 한 마디들이 내게는 교과서보다 더 큰 힘이었다. '노동해방'을 꿈꾸며, 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반자본 대안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 아직도 내가 물주고 씨 뿌릴 일이 있다고, 기억이 살아나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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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개

요꼬 2007-04-09 08:47

눈물이 핑도네~....신랑 요즘 엄청 구박하는 중인데..... 반성중(좀 다른 이야기인가^^;)

김진순 2007-04-13 23:53

노동운동이 잘 안되면 절친한 동지들이 "도대체 교육을 어찌 했기에 운동이 요모양 요꼴이 입니까 ?"고 한마디 합니다. 그럴때 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아픔과 반성이 또 한켠에서는 그래도 그럴수록 계속 씨뿌리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노동해방 그날이 오겠지 또 위로 하면서 보따리 하나들고 전국을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씨뿌리다보면 언제인가 열매 맺는 씨도 있겠지요. 그것이 바로 노동자교육센터의 존재이유 입니다.

복수초 2007-04-15 22:04

밑빠진 독에 뭍 붇기라 생각하지 마시고 구멍난 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는 이치를 잊지 마세요. 자갈밭에 물대기라고 떠나지 마시고 자갈밭에 씨뿌리고 가꾸는 농부같은 마음으로 노동자 교육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미련하게 학습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복수초 또한 미련스럽게 학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학습하고 조직하고 선전선동에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