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적자'인 것이 좋다!

  • 글쓴이: 유균
  • 2004-11-01

철도 생활 9년. 아침 9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9시 퇴근, 월 270시간을 전동차와 씨름하고 있지만 누구나 그런 것처럼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사는 게 팍팍하다는 아내의 지청구에 이골이 날만큼 난 40대 가장인 나는 가끔씩 신문 한 귀퉁이를 넉넉히 차지하는 철도 적자의 주범, 철밥통 철도노동자다.

10년 가까이 철도 밥을 먹다보다 이제 '철도 적자'라는 말은 만성이 됐다.
그러나 인원을 줄이는 것밖에 없는 '경영효율화' 방안이 내 붙거나, 한 술 더 떠 '이럴때 몸조심하라'며 너스레를 떠는 관리자들을 볼 때면 가끔은 심기가 편치 않다.

기름 밥을 먹는 처지에 '돈 되는 경영'에는 문외한이지만 철도청 높은신 분들은 정말 너무 한심하다.
물건 팔 때 원가에 이익 붙여 파는 게 상식 아닌가?
'철도 요금이 원가에 60%, 전철은 56%', '철도청의 24개 노선 중 21개 적자, 631개 역 중 345개 역의 매출액이 운영비에도 미달' 한다는 국정감사 내용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뭔가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

장사는 장사꾼답게 해야 한다. 2003년 철도청이 운송으로 번 돈이 1조6천억이고 적자가 3천억 정도니, 원가만 받으면(40% 요금 인상) 무려 6천4백억을 더 벌 수 있으니 흑자내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자역은 그냥 문 닫으면 된다. 더욱이 서민들이 주로 이용했던 무궁화열차가 줄건 말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야 쓰러지건 말건 단 한 명의 충원도 없이 개통된 KTX(고속철도)에서 6천7백억(2005년 9천7백억 예상)을 벌었다. 정부가 처음 약속대로 건설비용만 내 놓으면 완전히 땅 집고 헤엄치다. 왜 능력도 없는 놈들은 두고 만만하게 홍어 뭐라고 현장서 일하는 우리만 '돈 먹는 하마'로 만드나?

어찌됐건 내년이면 105년간 민족의 애환을 함께 해 온 국영철도 시대는 막을 내린다. 철도는 공사가 되고 나도 알량한 공무원 옷을 벗게 된다.
그리고 철도 짬밥 10년이 되는 나는 '나의 발칙한 상상'이 현실화되지 않길 바란다. 수익에 눈먼 철도가 국민의 얇아터진 주머니마저 터는 철도로 전락하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아직도 난 "돈이 모자라 서울 외곽에다 집을 구했는데, 먼 데 산다고 차비까지 더 내라니 화가 나기보다는 그저 서럽다"는 이 땅의 서민들과 더 가깝다.

!

수정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