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은 를 보다가 '야, 이거다!'하며 무릎을 친 적이 있습니다.
왕양명의 수제자인 왕심재의 에 나오는 대목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해방 세상을 만드는 '과정 중에 해방'된 인간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위에 종종 이야기했던 '미꾸라지'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도인이 어느 날 한가하게 시장을 걷고 있다가 우연히 어느 가게의 한 통 속에 들어 있는 뱀장어를 보았다. 포개지고 뒤얽히고 짓눌려서 마치 숨이 끊어져 죽을 것 같았다.
이때 홀연히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나타나서 상하좌우전후로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니 마치 신룡과 같아 보였다. 뱀장어들은 미꾸라지에 의해서 몸을 움직이고 기가 통하게 되었으며 생명의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뱀장어의 몸이 움직일 수 있게 하고 기를 통하게 하여 뱀장어의 목숨을 건진 것은 모두 미꾸라지의 공인 것이 틀림없으나 그 역시 미꾸라지의 즐거움이기도 했던 것이다.
결코 뱀장어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또 뱀장어의 보은을 바라고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 ‘본성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갑자기 비구름이 일고 천둥, 번개가 일어나더니 미꾸라지는 비를 타고 올라가 하늘의 강에 뛰어들고 대해를 넘나들어 유유히 움직이는데 좌우로 마음대로 나아가니 그 즐거운 모양이 비길 데 없었다.
작은 통 속에 들어 있는 뱀장어를 돌아다보고는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뒤틀어 용으로 변하여 다시 천둥과 비바람을 일으켜 뱀장어가 가득 찬 통을 기울였다.
이로써 갇혀서 눌려 있던 고기들이 모두 즐겁게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정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려서 함께 장강대해(長江大海)로 돌아갔던 것이다.“
파닥파닥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약동하는 상상력을 봅니다. 넘실대는 해방의 기쁨이 펼쳐집니다. ‘미꾸라짓국 먹고 용트림한다’느니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린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있어야 할 곳' '해야 할 것'을 따져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서 해야 할 것을 하는 것'을 고심하지 않고, 본성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그것이 스스로는 물론 주위에도 생기와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본성에 따라 움직이다 용으로 변하는 미꾸라지가 되어 함께 ‘장강대해’로 돌아가는 '꿈'을 꾸어 봅니다. 해방 세상을 만드는 '과정 중에 해방'되는 인간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