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평론 46호(2010년 겨울호)(특집: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

  • 글쓴이: 노동자교육센터
  • 201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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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

80년대 말 노동자들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자본가여 먹지도 마라”라는 가사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른 적이 있다. 이는 노동해야만 살 수 있는 노동자들을,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와 대립시키며 자본가를 공격하고 있다. 또한 노동은 모든 인간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도적적·사회적 의무로 보고 노동하지 않았을 때는 먹을 자격도 없다고 본다. 노동을 생존의 근본 조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고 하는 생각,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며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왔다는 생각은 노동자에게 특권적인 위상을 부여해 줄 수 있었고, 이러한 주장 속에서 노동자의 지위가 상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의 신성성은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만 빵을 먹게 될 것이다.”라는 성경구절부터 캘빈의 예정설과 청교도주의, 아담스미스와 리카도의 노동가치설, 헤겔과 맑스의 노동에 대한 후세대의 편향된 해석들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 모든 구성원들은 노동자와 자본가, 그리고 좌우를 막론하고 노동의 신성성, 노동중심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거나 이를 이용하고 있다.

세상은 변해서 신자유주의시대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자본가들이 즐비하고 그들은 능력과 경쟁을 강조한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는 1980년말 자본가에게로 향했던 노동자들의 노동 중심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노동자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노동중심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 시대 노동자를 향한 부메랑이 되어, 노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의 빈곤과 몰락을 정당화해 준다.

정보화, 세계화 등 최근의 역사적 변화의 추세 속에서 노동의 신성성은 제고되어야 하고, 노동해방의 이념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 재구성된 노동해방의 이념 위에서 대량실업,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 현재 당면하고 있는 노동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새로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번 진보평론 46호의 특집은 위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고자 했다.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라는 주제다. 아직 연구가 충분히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과제다. 각각의 글들의 연관성과 체계성이 부족하고 필자들의 주장과 견해가 상이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노동해방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연구해 나갈 지 그 필요성은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이번 특집을 계기로 노동해방의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확대되기를 기대해 본다.

장대업은 「가치, 불균등한 자본의 지배형태 그리고 제3의 노동자계급들」에서 어디선가 항상 자본과 노동 간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천연덕스럽게 재생산되는 사회체제가 자본주의 사회이고 한쪽에서 열심히 투쟁할 때 다른 한쪽에서 여지없이 포섭의 길을 걷는 것이 노동운동의 전지구적 역사적 과정이라고 본다. 필자는 가치와 계급, 불균등한 자본의 지배형태, 그리고 제 3의 노동자계급들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지속되는 계급투쟁에도 불구하고 확대재생산 되는 자본의 지배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이성백 「노동해방 이념의 재구성」에서 정보화, 세계화 등 오늘날 변화된 조건 속에서 노동해방의 이념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고 맑스의 노동해방의 이념부터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을 신성시하는 노동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하고, 자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란 전통적인 이념에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현대 사회의 형성기에서부터 경제적 재분배의 기본원리가 되어왔던 “노동에 의한 소유”라는 원칙에서 노동과 소유를 분리하는 새로운 원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20세기 사회진보운동의 목표가 노동할 권리와 참정권의 쟁취에 있었다면, 이제 21세기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진보운동의 목표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생활할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하는 권리를 쟁취하는 데에 있음을 주장한다.

박영균은 「노동의 신화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문화혁명」에서 근대적인 노동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는 ‘노동의 신화’와 정보사회론의 기술결정론에 근거하고 있는 ‘노동의 종말’ 양자를 모두 비판하고, 맑스가 말하는 ‘노동해방’은 ‘생존권’이나 ‘노동의 소외 극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달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여 좀 더 많은 것을 인간적으로 향유하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자본과 임노동의 체계 안에 갇혀 있는 노동운동, 즉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개선투쟁”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의 인문적, 문화적, 예술적, 신체적 활동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문화혁명”과의 결합을 제안하면서 “자본주의적인 욕망의 계열화 속에 있는 주체의 형성을 벗어나 다른 계열의 실재적 삶을 창출하는 유물론적 정치학”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은미는 「페미니스트 노동 개념의 함의: 성별화된 세계체제 이론의 가능성」에서 (교환)가치생산 중심의 노동 개념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노동 개념을 확장하고, 재개념화해 온 페미니즘 노동 연구를 살펴본다. 페미니즘 노동 연구가 단순하게 여성들의 삶과 경험이 배제되어왔으며 여성의 경험이 온전하게 이해되고 사회적 삶으로 온전하게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적 설명을 넘어, 새로운 시대의 사회변화를 연구하는데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 모색해보고 있다.

강연자는 「주40시간 법정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제: 민주노총은 초과노동 제한하고 실업 감소 투쟁에 앞장서라」에서 IMF 이후 일자리 나누기로 시작된 노동시간 단축이 높은 초과근로를 유지함으로써 일자리 나누기는 물론 실근로시간 단축도 실패한 과정을 분석한다. 초과근로는 노동자간 경쟁을 유도하고 노동자 연대를 약화시키는 핵심요소로 자본가의 노동자 관리통제 도구이다. 따라서 초과근로 제한은 노동자 내부 경쟁 지양, 연대 강화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출발선으로 본다. 그리고 노동진영이 초과근로 제한을 통한 실업률 해소에 주도적으로 나설 때 사회대안 세력으로서 자기 입지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보며, 초과근로 제한에 따른 임금문제를 민주노총 표준생계비에 근거하여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목차

□ 편집자의 글 : 진보적 이론운동의 새 장을 열자

□ 특집 :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

* 가치, 불균등한 자본의 지배형태 그리고 제3의 노동자계급들(장대업)
* 노동해방 이념의 재구성(이성백)
* 노동의 신화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문화혁명(박영균)
* 페미니스트 노동 개념의 함의: 성별화된 세계체제 이론의 가능성(문은미)
* 주40시간 법정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제: 민주노총은 초과노동 제한하고 실업 감소 투쟁에 앞장서라(강연자)

□ 정 세
* 연합정치를 말한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중심으로(손호철)
* ‘신복지운동’론과 무상의료로 가는 길: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논쟁에 대한 소론(우석균)
* G20 정상회의의 불편한 진실(배성인)
□ 국 제
누가 에드 밀리반드를 ‘빨갱이’라 부르는가?(서영표)
□ 발언대
* 학생인권조례 통과와 전망(전누리)
* 상지대 사태, 그 본질은 무엇인가?(방정균)

□ 일반논문
* 독일 통일 20년: 급속한 일방적 정치통합과 사회통합의 타임래그(정병기)
* ‘소외된 노동’의 경제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