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안녕?!

  • 글쓴이: 안병주 (닉네임 허기저. 다산인권센터 전 상임활동가)
  • 2015-08-02

  '엄명환' 이라는 본명 보단 '오렌지가 좋아'로 친숙한 인권활동가가 지난 6월 영면 했습니다. 오렌지는 수원 촛불,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로 한국사회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며, 자신의 카메라로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는 어릴적 부터 만성신부전증으로 인해 일주일에 3번씩 신장투석을 해오며, 한국사회의 아픔을 함께 해왔습니다. 자신의 삶을 즐기고 웃으며 사회와 마주 하려 했던 그의 용기와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글은 엄명환 님과 함께 활동했던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의 추모글을 싣습니다.(편집자 주)

 

  얼마 전까지 비가 안와서 농민들 속이 타 들어갔는데, 태풍의 영향인지 며칠 비가 좀 많이 내렸다. 오렌지가 있는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설마! ^^) 모르겠다만 여하튼 하늘에서 내려준 비가 참 고맙게 느껴지더군. 바다를 메우고, 산을 옮기는 인간들이 자연의 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하늘에서 보는 인간들 군상은 어떤지 모르겠다.

 3년전인가 4년전에 다산인권센터 사무실 늦은 밤, 너와 단둘이 있을 때 불쑥 던진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 죽으면 카메라는 허기저 줄게’

  그 때가 아마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당신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때 쯤이었던것 같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애매한 상황에서 난 ‘헛소리 하지 말라’고만 했던 것 같고. 결국 그 날 당신 집주소까지 받아놨지.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언제 저세상 갈지 모르겠다고, 혹시나 연락이 안되면 자기 좀 처리해달라고 나한테 집주소를 불러줬잖아. 난 못이기는 척 주소를 받아 적어 핸드폰에 저장까지 해뒀다. 지금도 그 주소를 가지고 있다. 장례 치룰 때 네가 살던 집 문에 ‘출입금지’ 딱지를 큼지막하게 붙여 논 걸 보고 사람들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참으로 독특한 녀석이야, 너란 인간. ㅎㅎㅎ

  2008년 겨울이었던가, 너를 처음 만난 날이 수원의 어느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였던 것 같다.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와서 기자회견 위치를 물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당신이었어. 기자회견이 끝나고, 통성명을 하는데 ‘오렌지가 좋아예요’ 하는데 솔직히 좀 뿜을 뻔 했다. ‘영어몰입교육’ 어쩌구 하면서 ‘어륀지’ 열풍(?)이 불 때 너는 ‘어릔지’가 아니라 ‘오렌지’가 좋다는 사회 비판적 닉네임을 생각했나 본데, 좀 어이가 없었다. 내 닉네임이 ‘허기저’인 것처럼 굉장히 1차원적이라고나 할까. ㅋㅋㅋ

  그 뒤부터 매주 수요일 수원촛불 열혈 멤버로 활동하면서 넌 ‘카메라’를 만났지. 물론 애인을 만났으면 좋았겠지만...아쉽게도 넌 카메라에 빠져들기 시작하더군. 2008년 수원촛불이 시작한 뒤 토리(박김형준 작가)가 틈나는 대로 사진을 촬영해 주었는데, 점점 수원촛불 사진은 오렌지 담당으로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었지. 초기에 밋밋한 사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성(?)이 묻어나는 그런대로 봐줄만한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 이 기세를 몰아서 수원촛불 뿐만 아니라 다산인권센터 활동을 시작으로 반올림까지, 너의 사진활동의 영역을 점점 넓혀 갔지. 어느 현장에나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그때부터 다른 활동가들은 오렌지가 있는 이상 사진 걱정은 덜었던 게야. 그 땐 고마운지 잘 몰랐지만, 지금 사진을 누가 찍어주냐는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너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물론 가끔 시간약속을 안지켜서 열불나게 할 때도 많았지만 말이다.

  네가 하늘로 올라간지 한 달. 네 동생이 전해준 유품은 다산인권센터에 고이 모셔두었다. 걱정마라. 어디 팔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네가 촬영한 엄청난 분량의 사진들도 조금씩 정리해서 1주기때 멋진 사진전과 사진집을 낼 계획이다. 덕분에 큰 일 하나 늘었지 뭐니. 고맙다. 짜샤.

  하늘에서야 따로 건강챙길 일이 없겠다만, 이승 사람들 사는 모양 보고, 스트레스 받지 마라. 우리야 어떻게든 살아 낼 테니까 말이다.

  추신)

  야! 너 하늘로 가고 나서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그러던데 말이야. 나한테 준다던 카메라를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다 준다고 말해 놨더만. 콱!

  아참, 네가 준 그 낡은 배낭, 아직도 메고 다닌다. 너 가고 나서 태울까 싶기도 했지만 준 사람 성의가 있지, 끈 떨어질 때까지 메고 다니마. 고맙다, 명환아. 아...한 가지 더 있다. 너 쓰러지고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면회 갈 때 마다 욕 좀 했다. 사람들이 욕해야 빨리 일어난다고 해서 그런거야~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