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로 바라본 국가의료정책이라는 엄청난 주제에 대한 기고를 청탁받고 당연히도 정중히 사양을 했다.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과 저널리스트들의 엄청난 분석, 비판, 논쟁, 담론이 있고 그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정리해 담아내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를 낸 것은 개인적 단상과 소회의 형태의 기고라도 문제가 없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다. 이런 소심한 전제를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메르스 확진자가 늘어나고 격리대상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넘쳐나면서 관련하여 온갖 평론과 담론이 넘쳐났고 (한국사회의 의료관련문제에 대해서는 마치 하나의 도그마와도 같은) '공공의료' 담론이 등장했고 어김없이 '진주의료원' '공공의료 강화' '의료의 공공성' 등의 단어들도 등장했다. 그렇다. 사회의 각 구성원 (혹은 사회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 중 공공 의료의 취약성(혹은 의료 시스템의 공공성 결여)의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이번 메르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제껏 제기되어 온 한국사회의 건강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에 비해서 이 사안은 공공 의료의 취약성과는 아주 약하거나 먼 연관고리를 가진 문제라는 생각이다. 다만 의료 혹은 건강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임을 전염성 질환인 메르스의 유행과정에서 극적으로 드러내 보였을 뿐이다.
한국사회에서 공공의료, 의료 공공성, 무상의료 등의 단어들은 끊임없이 캐치프레이즈로 활용되는 있는 반면, 때로는 너무 포괄적으로 때로는 너무 지엽적으로 쓰여 그 의미는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지는 않다. 최근 '청년의사'라는 보건의료 매체의 한 칼럼의 필자가 토로한 '공공의료', '의료의 공공성', '의료의 공공성 제고'라는 단어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고충을 공감한다. 의료의 고유한 속성에 포함된 '공공성'을 구태여 구분해내서 강조해야만 하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가 있기는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 나라의 보건의료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것으로 해결을 보자고 하는 일종의 안일한 환원주의의 문제도 짚어야하겠다.
공공병원이라면 신종 감염병을 더 잘 확인하고 대처했을까? 소위 슈퍼전파자가 삼성의료원이 아니라 국립의료원 서울의료원에 내원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뜨거운 맛을 보았으니 공공병원을 더 지어서 메르스와 같은 상황에서 확진자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안정적으로 격리하도록 하자는 것도 단편적 시각이 아닐까? 격리병상 음압병상은 공공 병원에만 주로 설치하는 것이 타당한가? 사회의 구성원들이 엄중한 보건상의 위기에 처했을 때 민간의료기관/공공의료기관의 자원이 구분되어 동원되는 것이 타당하거나 혹은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것이, 국공립병원을 지어 올리고 공공병상을 늘리는 것 만으로 성취되는 것 아니라 거기에 걸맞는 기능을 하는 관리 시스템과 인력이 배치되는 문제가 같이 가는 것이다. 메르스 시기에 겨자색의 유니폼을 맞춰 입은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의 공무원들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국민들은 그들의 무능함을 한탄했고,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국가의 (보건)시스템에 대한 불신이었다. 공공병원과 공공의료가 확충되자면 가운을 걸친 의료인들만 아니라 바로 그런 공무원 혹은 준공무원 인력과 기능 역시 확충되어야 한다는 사실(혹은 공무원인 의료인이 늘어나거나)... 어떠한가? 당신은 소위 공공의 영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판단을 공무원들에게 맡길 수 있는가?
각설하고, 메르스의 문제가 이렇게 확산된 첫 번째 원인은 단연코 정부의 무능, 국가기능의 실종에서 찾아야 한다. 전염병의 관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공동체 리더들이나 지배계급의 중요한 역할이었으며 국가 성립이후에는 국가의 역할이 되었다. 전염병의 관리에는 대부분 검역과 격리조치가 필요하기 유무형의 물리력이 동반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강력한 행정주체를 필요로하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공공 의료기관 뿐 아니라 민간 의료기관에 대해서도 정부는 다양하고 강력한 통제 기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발휘할 수 있었다. (공공 병원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점에서는 명백히) 취약한 공공의료의 기반이 메르스 확산의 종범이라면 그러한 공적 통제 기능을 발휘해야할 적정한 시기를 판단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 전 국민의 공중 보건상의 위기관리보다 거대한 자본을 배경으로 한 민간 병원의 위기관리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국정 운영 주체들로부터 비롯된 국가 기능의 실종이 더 메르스 확산의 주범이다.
비록 전염병이 관리에 있어서 검역과 격리 등의 통제가 수반된다고 할지언정 민주주의 사회의 의료 환경에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은 시기에 일상적으로 공중보건상의 위기에 대해서 논의와 협의를 통한 규범/매뉴얼/교범/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이고 무언가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통해 미리 합의된 통제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 무능한 정부는 아무 일이 없는 시기에는 일상적으로 군림하다가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뒤늦게 논의하고 협조를 구하되 그 무능을 입증하게 될 터이며 이미 너무 많은 생명이나 귀한 것을 잃고 난 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보건의료상의 문제는 산적해 있다. 공공의료 강화, 의료의 공공성 제고, 의료 전달체계의 정상화 등등 다 필요하다. 허나 작금의 메르스와 관련한 사항에 집중하자면 이렇다.
공중보건상의 혹은 시민(국민)의 건강문제에 대한 위협을 다루는 과정은 위험의 확인( hazard identification), 위험성의 평가(risk assessment), 위험성에 대한 소통(risk communication) 등이 단계적으로 때로는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메르스 사태에서는 어느 한 부분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부는 기술이나 기능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었다. 신뢰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정보가 공개되었던들 불안과 의심은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신변의 중대한 위협이 있는(혹은 있으리라고 여기는) 상황에서는 믿음직하던 정부나 기관조차도 의심하기 마련일진대... 신뢰는 위험성 소통(risk communication)의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때때로는 목적이 되기도 한다. 건전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의 온전한 한 주체가 되어야할 정부와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무능하고도 신뢰할 수 없는 정부는 그 자체가 리스크이다.
나의 전공인 직업환경의학 분야에서 배우기를 위험요인에 대한 공학적 대책은 바꿔버리거나(대치), 격리시키거나 환기시키거나 그것도 안되면 개인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이다. 발암 물질과 같은 지독한 것들은?
바꾸는 것이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