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은 기념이 아닌 투쟁

  • 글쓴이: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
  • 2018-03-26

 3월 8일 스페인에서는 530 만 명 여성들이 두 시간 파업을 하며 거리로 나왔다.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의 행진을 외신으로 접하면서 민주노총 여성사업 담당자로서 많은 생각이 오가는 주말이었다.

 민주노총도 110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100: 64라는 남녀 간 성별임금격차에 항의하는 뜻으로 2017년에 이어 두 번째 조기퇴근 시위를 준비했다. 취지는 하루 8시간 기준으로 남성노동자는 8시간 노동의 임금을 받고 있다면 여성노동자는 5시간의 임금만을 받고 남은 세 시간은 무급 노동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여성노동자들은 오후 3시에 조기 퇴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2017년 조기퇴근 시위는 노동운동과 여성운동 영역에 성별임금격차 해소라는 과제를 제기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사회적으로도 성별임금격차를 통해 여성노동의 현실을 드러내는 성과를 만들었다. 이어 제 2회 조기퇴근 시위는 아직도 여전히 3시에 퇴근해야하는. 성별임금격차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금 드러내야 했다. 그리고 2018년 3.8 세계 여성의 날은 #ME TOO 운동의 중심에서 일터 성폭력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을 계획하고 투쟁을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직장내 성희롱과 성폭력은 그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직장내 성희롱은 일터성폭력으로 여기기 보다 ‘여성들이 일 과정에서 겪는 견딜만한 불편함’ 정도로, ‘성적인 농담정도는 가볍게 웃고 넘어가야하는 조직문화에 적응해야 함’을 강요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는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해 일터에서 배제되고 결국 일터를 떠나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직장내 성희롱은 여성의 고용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아직은 직장내 성희롱으로 인한 인권 침해를 구제 받을 방법이 미진하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사내 구제기구가 설치되지 않았고, 이를 대처해야 할 주체들은 부족하다. 직장내 성희롱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을 지원을 위한 법률. ‘고평법’은 기업에서 사문서화 되어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는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구제 시스템이 존재하는 경우가 있고, 노동조합이 이를 위해 피해자와 함께 투쟁하지만 다수의 여성들은 혼자 대응하거나 일터를 떠나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이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현재의 #ME TOO운동이 일터 성폭력. 공동체내 성폭력을 공론화하고 성차별적인 고용 관행과 우리 사회의 강간문화를 고발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렇기에 110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은 어느 시기 보다 직장내 성희롱. 성폭력. 이를 가능하게 했던 여성혐오와 성차별로 가득한 일터 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를 바꾸기 위한 투쟁을 결의하는 계기로 준비하였다.

 

 각지에서 터져나오는 #ME TOO는 “나도 성폭력을 당했다” 라는 해석 보다 “나도 말하겠다”가 적정할 것이다. 그 동안 성폭력 피해를 바라보는 시선이 피해자의 말하기를 의심하고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색이었다면, 피해자의 말하기를 들어주고 그 원인을 조직적인 강간문화, 성차별적인 행태로 돌아보는 계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는 노동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의 말하기에 대해 ‘조직문화도 이해 못하는 까칠한 내부 고발자’로 대하던 시선을 거두고 ‘불평등한 조직문화에 대한 용기 있는 증언자’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결과가 얼마나 긍정적인 대안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 중이지만 신속한 대책이 모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연일 직장내 성희롱 종합대책. 공공기관 성희롱 종합대책.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폭력 종합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곧이어 민간기업 성희롱 종합대책도 준비되고 있다. 정부의 종합대책은 성희롱 발생 이후 구제 방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노동조합의 대응은 현장권력을 강화하여 고용평등위원회, 고충처리위원회, 인사위원회에 적극 개입하여 직장내 성희롱 피해 구제시스템이 정착되도록 해야 하며, 성희롱 예방 교육과 조직문화 개선을 통한 사전 조치에 집중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직장내 성희롱. 성폭력이 근본적인 성차별 구조에서 기인하는 점을 인식하고 성차별적인 고용 전 과정을 통해 파생된 직군. 직무 분리. 차별임금을 극복하는 투쟁 계획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투쟁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는 단체협약이다. 그 동안 현장에서 잠자고 있던 성평등 단협 조항을 살려내야 할 것이며 올 해 체결될 단체협약에서 성평등 조항을 신설. 강화할 계획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ME TOO 정국을 통해 단기적인 대응이 아닌 보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성평등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논의와 실천을 진행하고자 한다.

 

 다시 스페인의 3.8 여성의 날 2시간 파업으로 돌아간다. 스페인 노총은 3.8 여성의 날 2시간 파업을 준비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전국에서 간부. 조합원 교육을 실시했고, 매일 같이 관련 교육 선전물이 쏟아져 나왔다. 대체 스페인노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여타 국가의 노총과 달리 3.8 관련 행사와 선전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낯설게만 여겨졌었다. 그리고 3월 8일 530만 명이 파업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대체 어떤 연유로 스페인 노총은 페미니즘 조직으로 자신을 정체화 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민주노조운동 30년. 민주노총 20년의 역사에서 수시로 제기되었다가 사라져간 것은 페미니즘이었다. 현 시기 반성폭력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100인위원회’ 운동은 가해행위를 드러냄으로 피해자에 향했던 수치심을 가해자에게 돌리고 말하기의 공간을 열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 성과는 2015년 메갈리아 운동과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 이후 활발해진 ‘ㅇㅇ조직내 성폭력’을 폭로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2003년 여성할당제의 도입 이후 노동조합의 여성대표성은 정치 영역의 여성대표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내 페미니즘 이슈는 한 보 진전 이후 두 보 후퇴를 거듭하며 수도 없이 같은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제 동일한 문제제기와 동일한 방식의 대안 찾기를 넘어 새로운 모색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의 물길을 노동운동으로 향하게 하고, 페미니즘과 조우하는 노동운동의 가능성이 넓어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3월 7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는 전조직적으로 미투 운동을 실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는 단지 현시기 사회현상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으로만 볼 수 없다. 노동조합이 변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의 변화를 우리 사회의 페미니스트들이 안팎으로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 ME TOO 는 피해자들의 말하기 공간을 열었고 노동조합에 페미니즘의 공간을 만들었다. 2018년 3.8 세계 여성의 날 광화문 광장은 노동조합에 열린 페미니즘의 광장이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