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pa] 양자간 협정, WTO 관련 기사 몇 가지

  • 글쓴이: 운영자
  • 2003-08-21

미 하버드대생, 스크린쿼터 지지선언
[속보, 연예] 2003년 08월 19일 (화) 22:51

미국 하버드 대학생 41명이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지지하는 선언문을 e메일로 보내왔다고 19일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이사장 유지나)가 밝혔다.

하버드 대학생들은 최근 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노래로 태양을 쏘다’를 관람한 후 WTO,BIT 등 국제통상협정들이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이를 개선하기 위한 국제기구 출범을 염원하는 의미로 지지 서명을 보내왔다.

하버드 대학생들은 지지 선언문에서 “우리는 할리우드의 독점적 배급방식에 대항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영상 분야의 문화 다양성 운동에 참여하고자 한다”면서 “세계 각국은 다양한 방식(보조금·세제 혜택·방송쿼터·스크린쿼터 등)으로 그들의 문화 매체를 보호할 수 있는 권한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규대 enter@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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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자국보호', 나중엔 '후진국 때리기'
[속보, 경제] 2003년 08월 19일 (화) 12:12

는 우리 사회의 각종 현안에 대해 좀더 깊이있는 분석과 대안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안칼럼]을 신설했습니다. 매주 2차례에 걸쳐 소속 국내외 학계와 연구소 전문가 10여명이 칼럼진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칼럼진 명단은 아래 덧붙인 글 참고) 이번에는 영국 캠브리지대 장하준교수(경제학)가 선진국의 위선적인 무역정책을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 주

국제무역기구(WTO) 관련 협상에서 우리나라는 후진국들에게 욕을 많이 먹는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유치산업 보호정책의 온상이었고 외국인 투자를 극심하게 규제했으며 지적재산권을 밥 먹듯이 위반하던 나라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이제는 공산품 관세철폐, 다자간 투자협정,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외치는 선진국의 편에 서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나댄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도 자기들이 후진국일 때는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며 지적재산권을 위반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이런 일들을 100년, 200년 전에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고, 따라서 우리나라같이 최근 잘살게 된 나라만 위선적인 것으로 보일 따름이다.

'개구리 올챙이적 모르는' 선진국의 자유무역 옹호

이러한 '역사적 위선'의 원조는 영국이다. 우리는 흔히 영국을 자유무역의 시조로 알고 있지만, 영국이야말로 유치산업 보호를 발명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16세기까지만 해도 당시의 '첨단산업'이던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인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양모를 수출하고 모직물을 수입하던 유럽의 후진국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드워드 3세, 헨리 7세 등 영국의 왕들은 양모에 수출관세를 부과하고, 모직물에 수입관세를 부과하며, 정부가 직접 나서 외국인 기술자를 스카우트 하는 등 모직물 산업의 수입대체 공업화를 추진하였다.

특히 1721년에는 영국 최초의 수상인 로버트 월포올(Robert Walpole)의 지도 하에 본격적으로 국가주도 산업화가 시작되는데, 이때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영국이 쓴 산업 및 무역 정책은 유치산업에 대한 보호관세 및 보조금 지급, 수출품 원재료에 관한 관세 환급, 수출보조금 지급 등 20세기 후반 일본이나 한국이 쓴 정책과 매우 유사했다.

18세기에 영국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최고의 공업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지만 영국이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시작한 것은 자국의 경제적 우위가 공고해진 19세기 중반 (1860년대)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영국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무역과 자유방임의 미덕을 설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국이 자기들은 관세와 보조금을 통해 공업을 발전시켜 놓고 다른 나라들에게는 자유무역을 권고하는 것은 영국의 과거를 아는 당시의 '후진국'인 미국이나 독일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이었다. 이 때문에 19세기 유명한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 (Friedrich List)는 그의 명저 '국민적 정치경제의 체제'(The National System of Political Economy 1841년)에서 영국이 후진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권하며 다니는 것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뒷사람이 못 올라 오도록 그 사다리를 차버리는 것(kicking away the ladder)과 같다고 혹독히 비판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리스트를 유치산업 보호론 - 후진국이 새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보호관세와 보조금 등의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이론 - 의 아버지로 알고 있지만, 이 이론의 원산지는 미국이고 리스트는 1820년대 미국에 정치망명하고 있던 시절에 이 이론을 처음 접했다는 것이다.

미국,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130년동안 세계최고 관세 유지

유치산업 보호를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영국이지만 그것을 처음으로 이론화한 것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으며 10불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튼(Alexander Hamilton)이었다.

해밀튼은 1791년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유럽의 선진국의 경쟁을 물리치고 산업화를 하기 위해서는 관세와 보조금을 통해 '유치산업'(infant industry)을 보호,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을 비롯하여 당시 경제학계에서 정설로 여겨지던 '미국은 농업에 특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해밀턴의 이론은 그의 생전에는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농산물을 수출하고, 값싸고 질 좋은 영국의 공산품을 수입하고 싶어 했던 남부 지주들의 저항을 받아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지만, 1816년 영-미 전쟁 종식 후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해밀턴의 이론은 이후 미국이 세계 최고 제조업국가로서 지위를 완전히 굳힌 1945년까지 130여년간 미국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루었다.

이 기간 동안 미국은 35-55%에 달하는 세계 최고율의 제조업 관세를 유지하며 자국산업을 발전시켰는데, 특히 1870년대 증기선이 일반화되기 까지 미국산업은 대서양이라는 자연적 보호장치의 덕을 보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스위스 경제사가 폴 베어록(Paul Bairoch)이 미국을 "현대 보호무역주의의 본산이요 철옹성(mother country and bastion of modern protectionism)"이라 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또한 미국은 20세기 중반까지 자본수입국으로서 외국인 투자를 엄격히 규제하였다. 해운업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아예 금지되어 있었으며, 농지, 채광권, 벌목권에 대한 외국인투자도 엄격히 규제되었다. 은행의 경우에는 외국인은 이사가 될 수 없었으며, 국책은행의 경우에는 외국인 주주의 투표권 행사마저 금지되어 있었다.

19세기 말 새로운 세계적 금융 중심지로 떠오르던 뉴욕주는 은행업이라는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1886년 외국은행의 업무를 제약하는 법을 도입하였고 1914년에는 아예 외국은행의 지점설치를 금지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도 자신들이 욕하던 영국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후 자국이 세계최고의 위치에 이르자 자유무역과 외국인투자 자유화를 옹호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두운 과거'는 영국과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스위스, 네덜란드 정도를 제외하고는 현재의 모든 선진국이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산업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늘날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있다.

스위스는 1907년까지 특허법의 도입을 거부하면서 독일의 화학, 제약 기술을 '훔쳤음에도' 오늘날 스위스 제약회사들은 특허 수호에 누구보다도 앞장선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보다도 더 심하게 외국인 투자를 규제했지만 요즈음은 WTO 에서 자국이 과거에 사용했던 규제의 대부분을 '불법화' 할 다자간 투자협정 체결을 누구보다도 목청 높여 외치고 있다.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 수립위해 나서야 할 때

우리나라도 이에 예외가 아니다. 산업화 초기에는 누구 못지 않게 자국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며 지적재산권을 무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 산업이 수출경쟁력이 생기고, 우리기업이 해외투자를 시작하고, 우리가 출원한 특허의 수가 늘어나게 되자 '안면몰수'하고 선진국과 같이 후진국들에게 시장개방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군대에서 신참 때는 얻어 맞으며 고참들을 욕하다가 자기가 고참 하급 대열에 끼면서 신참들을 구타하기 시작하는 상병쯤 된다고 할까?

영국, 미국, 스위스 등 현재의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보호무역, 외국인 투자 규제, 지적재산권 무시 등 '나쁜 짓'을 한 지가 워낙 오래되어 자기 조상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망각했다는 핑계라도 있다. 그러나 불과 10-20여년 전만 해도 후진국의 입장에서 선진국의 개방압력을 피해 온갖 수단을 쓰면서 자국산업을 발전시키려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그 뻔뻔스러움이 부끄러울 뿐이다.

▲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2003 오마이뉴스
군대에서도 구타의 사슬을 끊으려면 한 기수가 희생을 하여 맞기만 하고 후배들을 때리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일본, 대만, 우리나라 같이 보호무역과 외국인 투자규제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한 기억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나라들이 지금 나서서 기존 선진국의 '사다리 차버리기'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앞장서서 후진국의 발전을 진정으로 돕는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의 수립을 추진하지 않으면 이러한 '국제 구타'의 사슬은 끊길 수 없다.

일본은 결연한 행동을 하기에는 너무 잃을 것이 많아졌고, 대만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거의 완전히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이러한 역사적인 '국제 구타'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우리가 끊어야 한다.

/장하준 기자 (ohmynews@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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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글에 실린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필자의 영문저서, Kicking Away the Ladder Development Strategy in Historical Perspective (Anthem Press, London, 2002) 와 The Northern WTO Agenda on Investment: Do as we Say, Not as we Did (Duncan Green과 공저 The South Centre, Geneva, 2003)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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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칠레간 FTA 비준땐 정부발주 공사 입찰 가능
[경제] 2003년 08월 18일 (월) 18:50

한·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을 국회가 비준하면 칠레기업도 국내 기업과 같은 자격으로 8000만원 이상의 정부 물품조달이나 81억원 이상 정부발주 공사에 응찰할 수 있다.

재정경제부는 18일 이같은 내용의 ‘국가계약법 시행령 특례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한·칠레 FTA가 비준을 받는대로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가입 28개국에만 적용하던 응찰자격이 칠레는 물론 앞으로 FTA가 체결될 일본, 싱가포르 등에도 확대된다.

특히 WTO 정부 조달협정의 중앙정부 양허 하한선이 물품·서비스는 2억1000만원, 건설공사는 81억원이지만 FTA에 따라 칠레 기업에는 물품·서비스의 하한선이 8000만원까지로 낮아진다.

한·칠레 FTA에 따라 우리 기업 역시 칠레 정부가 발주하는 동일한 수준 이상의 물품·서비스나 건설공사 발주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

/ dympna@fnnews.com ?{송경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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