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홍콩각료회의 저지 투쟁 참가 수기

  • 글쓴이: 유병환
  • 2005-12-28

WTO 홍콩각료회의 저지 투쟁 결과보고

작성자 : 전국공무원노동조합충남본부청양군지부장 유병환


WTO 홍콩각료회의를 투쟁으로 무산시키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12월 12일 오후 2시 45분 비행기로 마카오를 거쳐 홍콩 우카이사 캠프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경 이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들은 첫 소식은 민주노총 동지들이 묵을 호텔이 홍콩경찰들의 방해로 호텔에 투숙을 할 수 없게 되어 우카이사 캠프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홍콩투쟁단의 투쟁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이 예상되었습니다.

이튿날 13일에는 한국농민참가단 결의대회, 한국민중참가단 결의대회, 바아캄페시아 국제 농민대회를 치루고 WTO홍콩각료회의를 치루는 컨벤션센터 앞까지 가두행진과 컨벤션센터까지 수영 진격투쟁에 참가하였고,

14일 우카이사캠프에서의 아침식사 장면

한국민중투쟁단 대표단들의 연설

WTO 홍콩각료가 열리는 컨벤션센터까지의 수영진격투쟁 장면 회의

14일엔 홍콩 SECO 백화점 앞에서의 홍콩시민들에게 “조우산(좋은 아침입니다.)”이라는 인사와 함께 시내 선전전을 하였으며 아시아 민중대회를 빅토리아 공원에서 비아깜페시나 동지들과 함께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시간에는 비아깜페시나 동지들과의 단결과 친화의 밤을 우카이사 캠프에서 신명나는 농악과 함께하였습니다..

14일 세코백화점 앞에서의 거리선전전에 나가는 장면

우카이사 캠프에서의 비아깜페시나 국제농민행동 동지들과 단결의 밤 장면

15일에는 그동안 WTO를 사랑한다던 홍콩시민들과 홍콩투쟁단의 폭력성을 부각 시키려던 홍콩의 언론들이 한국의 농민들이 이역만리 홍콩까지 자비를 내면서까지 투쟁하려하는지 관심을 갖게된 3보 1배 투쟁을 빅토리아 공원에서 컨벤션센터까지 약 2.5Km를 3시간에 걸쳐 진행하였습니다. 3보 1배 투쟁이 남 보기에는 쉽게 느껴질지는 몰라도 저에게는 무릎이 멍들고 발가락에 물집이 터지는 고행이었고 향후 4일간 제대로 앉지도 서지는 못하는 투쟁의 댓가가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이날 밤 9시경까지 있었던 한국민중투쟁단 문화행사에 많은 기자단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기도 하던 날이었습니다.

3보 1배 투쟁 중 잠깐의 꿀같은 휴식시간


WTO반대를 지지하는 홍콩경찰과 함께

16일에는 브라질 농민운동의 경험을 듣는 시간과 브라질 농민들의 투쟁사 그리고 많은 질의 응답이 오가는 귀중한 시간이 있었고 한국민중연대 상임의장인 오종열 의장의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브라질농민운동 대표들과의 대화의 시간 장면

컨벤션센터 진격투쟁이 있은 17일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WTO 홍콩각료회의를 저지시켜야 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한국농민참가단 결의대회와 비아깜페시나 국제농민행동 본대회를 치른 후 바로 가두행진을 시작하였고 경찰의 저지선을 뚫기 위한 맨몸뚱이의 육탄돌격 투쟁을 전개하면서 수십명의 전농동지들과 민주노총 동지들이 홍콩경찰들의 곤봉에 맞아 처참하게 피를 흘리는 투쟁이 이어졌습니다.


WTO홍콩각료회의 저지투쟁단을 지지하는 홍콩대학생 프리시와 함께


홍콩의 어린이도 반대한다. WTO

홍콩의 어린이도 반대한다. WTO

홍콩경찰들은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동지들을 쇠 수갑을 채워 연행하였고 밤 9시경부터는 시위대를 완전포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느 농민회원은 병원에서의 응급처치만 받고 WTO 홍콩각료회의를 무산시키기 위한 본 대오에 합류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런 가열찬 투쟁 덕분이었는지 각국의 각료들이 우리 투쟁단이 무서워 호텔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호텔방에서 컵라면을 먹는다는 우스갯 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WTO 홍콩각료회의를 더 이상 치루지 못하고 스위스 제네바에서 2006년 3월로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에 투쟁이 승리하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습니다. 농민·노동자를 다 죽이는 WTO를 박살내기 위해서는 투쟁의 고삐를 늦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투쟁이 고조화되는 밤 10시경 홍콩경찰은 한국투쟁단과 비아깜페시나 국제농민행동단체들 전원을 연행하기로 결정하고 18일 03시부터 강제연행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행은 세계 신기록을 남겼습니다. 투쟁단이 홍콩경찰에 협조 하였음에도 18일 03시부터 연행하기 시작하여 15시까지 12시간에 걸친 최고 장시간의 연행이란 것과 1,001명의 연행이라는 세계최다의 연행이 그것입니다.


WTO반대를 지지하는 긴머리 소년이란 별명을 가진 홍콩의 국회의원


홍콩경찰에 의해 연행되어가고있는 WTO홍콩각료회의 저지 투쟁단

본인도 17일 밤을 경찰의 완전 봉쇄와 화장실 출입도 못하게 하여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는 인권침해의 고통을 함께한 투쟁단 동지들과 함께하였고 경찰에 연행되는 18일 13시까지 길거리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고통을 당하여야만 하였습니다. 경찰서에 연행된 이후에도 수용할 유치장, 구치소, 교도소가 부족해서 경찰서 마당의 버스안에서 구금되어 있다가 21시 어딘지 모르는 경찰서로 이송되어 죄수 수인번호(본인 죄수번호 CAF 03481)등록, 사진촬영, 수갑을 채우고 18일 11시경 어딘지 모를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교도소는 중국불법체류자들을 수감하는 교도소라고 하였으며 5평 남짓의 교도소 방에는 20여명씩 수감되어 서로의 몸이 부딪혀 움직이지도 못하는 한마디로 돼지 우리였습니다.

홍콩교도 안에서의 전농충남도연맹 동지들과 함께 기념사진(감방동기동창들)


홍콩경찰의 폭력 진앞에 의해 머리가 깨진 경북도연맹 감방동기와 함께

19일 아침에는 같은방에 있는 동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전북도연맹 동지들과 경북도연맹동지들 충남도연맹의 농민회 동지들과 함께 앞으로의 한국농업의 문제 그리고 세계농민. 노동자, 민중들의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였습니다. 토론결과 쌀을 지키겠다는 자국의 농민을 때려죽이는 노무현 정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를 달라는 농민을 총으로 쏴죽이고 농산물 수출국이라는 나라에서 굶어죽는 민중들이 있는 브라질 정부, 농산물을 수출하지만 정작 농민들은 배곯는 중국정부 이러한 세계의 기존 보수자본가 편인 정부를 믿을 수 없기에 노동자, 농민, 민중의 정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과 보수 수구세력과는 그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민중의 생명은 민중들이 지켜야 합니다. 그 누구도 대신 나서서 싸워주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싸워야만 합니다. 이러한 심도있는 토론이 오가는 저녁 10시경부터 숙소별로 석방이 되기 시작 10시 50분경에 또다시 투쟁의 현장으로 복귀하였습니다.


홍콩 성보일보 기사에 실린 유병환 지부장(가운데 사진촬영하는 이)


홍콩 동방일보에 첫페이지를 장식한 서울본부 구로지부 여성동지


홍콩신문에 실린 17일 켄벤션센터 접수 투쟁 진격도


홍콩 교도소에서 석방된 다음날 41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충남도연맹 동지

이번 투쟁에서 저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WTO를 사랑하다던 홍콩시민들이 우리의 투쟁을 보고 감동하여 여론조사결과 6:4로 한국의 홍콩투쟁단을 지지한다는 홍콩시민들
그와는 반대로 한국은 농업을 포기했다는 발언을 하는 WTO각료회의 대표인 김현기 자국의 국민이 타국 경찰에 1,000여명이 연행되었어도 이들 대표단에게 면회한번 안하는 한국정부 홍콩교민들에게 투쟁단이 홍콩에 오면 일체의 편의제공을 하지 말라는 유인물을 배포한 한국영사관

우카이사 캠프에 커피와 홍차를 끓여와 캠프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담장 밖에서 차라도 한잔 드시라던 뜨거운 동포애,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깊은 산속의 교도소에까지 김치와 고추장을 사식으로 넣어준 이름모를 교포들 진정 많은 것을 생각하게하고 투쟁의 결의를 다시 한번 다지는 고귀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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