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 ‘공순이’는 사라졌으나 그 자리를 1천만 명에 가까운 ‘비정규직’이 채우고 있는 시대, ‘해고는 살인이다’는 구호가 현실이고, 노동자들이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확인하고 노동조합을 되찾으려고 1500일이 넘게 거리에서 싸워야 하는 시대다. 다른 세상은 가능할까?. 아니 다른 세상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1848년에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은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의 유령이”로 시작하여 “이제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로 본문을 열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로 끝을 맺는다. (박종철출판사 번역판은 <공산주의 선언>으로 제목을 붙였다)
책 분량은 각 나라 판 서문을 포함해도 보통 문고본보다도 얇다. ‘선언’형식으로 된 글 속에 함축된 뜻을 담았기 때문에 한 문장 한 문장이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때로는 세미나를 하면서 몇 주에 걸쳐 읽을 필요도 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아보려는 정도라면 하루 밤 사이에도 훑어볼 수는 있다.
<공산당선언>은 160년이 넘도록 자본주의 세상을 변혁하려고 꿈꾸었던 사람들이 읽었던 필독서였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자료이기도하다. 자본주의가 한창 발전하던 때 쓰였지만, 자본주의가 망해가는 지금도 어떻게 망하는 것이 제대로 망하는 길일까를 모색할 때 상상력을 얻기에 유효한 책이다.
희망의 빛을 찾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말’과 ‘글’을 찾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던 폭력의 시대였다. 일본어나 영어로 된 ‘금서’들을 어렵사리 구해 복사를 해서 볼 때였다. <선언> 같은 책은 복사점에 복사를 맡겨두고 나중에 찾아서는 안 되는 책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잘못 인쇄된 복사지까지도 잽싸게 챙겨야했다. 파지가 휴지통에 섞여들어 갈까봐 그랬다. 지금은 전집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포함하여 번역본만도 6종류가 있다. 좋은 해설서와 전문서적도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번역된 원문도 떠다닌다. 책을 구하기 어려워 읽기 힘든 시대는 아니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 했던 일을 감추고 싶은 자들이나 1%에 속하는 ‘귀족’ 지배자들, 또는 책대로 세상이 변하거나 사람들이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 멍청이들은 <공산당선언> 뿐 아니라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들을 오래된 레코드판의 흘러간 옛 노래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세상을 꿈꾸는 노동자들에게 그런 책들은 여전히 내가 살아가는 자리를 돌아보고 살아갈 앞날을 비춰주는 등대이다. 휘황찬란한 불 빛 아래 말과 글이 홍수처럼 흘러넘친다. 그 가운데 어떤 말과 글이 제대로 된 희망의 빛인지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면에서 어둠의 시대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때 고전은 시대나 상황이 바뀌더라도 곱씹으면서 생각을 다시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는 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