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사람이 하늘인 세상
박준성(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
올해가 살아생전에 갑오년을 마지막으로 맞는 사람도 있고, 60년 뒤에 또 다시 맞을 수 있는 사람도 있겠다. 지금 평균수명대로라면 나이 50이 안 되는 사람들은 2074년 갑오년까지 살 가능성이 있다. ‘갑오년’에라도 돌아보아야 할 120년 전 ‘갑오년’ 역사의 핵심은 동학농민군들이 꿈꾸었던 세상이다. 농민들의 요구와 지향은 “밥이 하늘이다” “사람이 하늘이다”하는 상징적 구호에 함축되어 있다. “밥이 하늘이다”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권리인 ‘생존권’을 뜻한다. “사람이 하늘이다”는 인간의 자존과 존엄성이 인정되어 양반 상놈, 위아래 따로 없는 평등 세상에 대한 염원이다. 1894년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회는 밥이 하늘이고 사람이 하늘인 세상이 아니었다. 밥이 하늘이고 사람이 하늘이 되려면 세상을 그렇게 바꾸어야 했다.
1892년 ‘선운산 도솔암 마애불 비기 사건’이 있었다. 1890년대 초 선운산 도솔암 마애불 비기를 꺼내면 한양이 망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손화중의 동학조직이 농민들의 염원이 담긴 비기를 꺼냈다. 1893년 11월에 있었던 ‘동학혁명 모의’는 고부관아를 뒤집어엎고 탐관오리의 전형인 군수 조병갑을 잡아 죽이고, 그 하수인들을 처단하고,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하여 무장을 한 뒤 전주성을 점령하고 서울로 쳐 올라가겠다고 ‘사발통문’까지 작성한 사건이다. 모의에 참가한 20명의 나이는 평균 37세였다. 평균 나이를 높인 송두호(66세), 송인호(53)를 빼면 35세였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사회 변혁을 꿈꾸던 이들의 모의는 봉기의 주된 고리인 조병갑이 익산군수로 발령이 나면서 미뤄졌다. 1894년 1월 조병갑이 고부군수로 그대로 부임했다. 사라졌던 주 타격대상이 다시 나타났다. 그에 맞춰 ‘고부봉기’가 터졌다. 3월 20일 무장에서 기포하면서 ‘제1차 농민전쟁’이 전개되었다. ‘동학혁명 모의’ 때 서울까지 쳐 올라가겠다는 ‘경사 직향’의 뜻은 3월 25일 ‘백산대회’에서 “병을 몰아 서울에 들어가 권귀를 진멸시킬 것”이라는 ‘농민군 4대 행동 강령’ 가운데 한 항목으로 이어졌다.
1894년 농민전쟁 이후 지금까지 120년 동안 전국 규모로 일어난 민중항쟁, 사회변혁운동으로 꼽을 만한 사건은 일제 강점기 1919년 ‘3.1운동’, 해방 후 1946년 ‘9월총파업’과 ‘10월인민항쟁’, 1960년 ‘4월 혁명’, 1979년 ‘부마민중항쟁’, 1980년 ‘5.18 민중항쟁’, 1987년 ‘6월 항쟁’과 ‘7.8.9노동자투쟁’이다. ‘3.1운동’은 1910년대 무단통치를 1920년대 문화정치로 바꾸어냈다. ‘4월 혁명’은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렸고 노동운동, 통일운동을 촉발시켰다. ‘부마민중항쟁’은 18년에 걸친 박정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5.18 민중항쟁’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끊이지 않고 마르지 않는 저수지가 되었으며 사회변혁의 꿈을 되살려 내었다. 1987년 6월 항쟁은 간접선거를 통하여 신군부가 계속 권력을 잡겠다는 ‘4.13호헌조치’를 폐지하고 7.8.9 노동자투쟁을 촉발하였다. 7.8.9 노동자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분수령이 되어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조직인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민주노총’ 건설을 가능하게 했다.
1894년 농민전쟁은 이러한 사건의 앞자리에 있던 높은 봉우리였다. 뿐만 아니라 밑으로부터 ‘민중’이 조직체계를 갖추고, 무장을 한 뒤 서울까지 진격하겠다고 선언하고 일 년 내내 전국 곳곳에서 항쟁을 계속한 대규모 사회변혁운동이었다. 투쟁 주체의 조직, 무장, 목표, 지속성, 희생자에서 1894년 농민전쟁에 버금가는 사건은 없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싸움에서 전라도 감영군과 싸워 승리하였고, 장성 황룡촌 싸움에서는 1811-12년 ‘홍경래난’이후 62년 만에 중앙에서 파견된 경군의 한 부대와 싸워 이겼다. 당시 호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인 전주성까지 점령하였다. 1894년의 ‘갑오개혁’을 이끌어 냈으며,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농민들이 지방 행정에 참여하여 자치 질서에 영향을 미친 ‘집강소 체제’를 경험하였다.
1894년 제1차 농민전쟁은 승승장구하였고 투쟁의 성과와 의의는 컸으나 제2차 농민전쟁이 패배함으로서 서울까지 쳐 올라가겠다는 구상은 실현하지 못했다. 밥이 하늘인 세상, 사람이 하늘인 세상도 이룩하지 못했다. 농민군 내부의 조직과 무기와 지향과 사상, 전략 전술, 투쟁의 원칙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더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다.
밥이 하늘인 세상, 사람이 하늘인 세상은 조선이 망해야 가능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망해도 제대로 망해야 했다. 조선은 망했으나 1894년 농민군의 꿈꾸었던 세상을 만듦으로서 망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면서 망했다. 조선이 제대로 망할 기회를 망친 것은 친일 개화파 정권, 보수 유생 토호 세력, 침략자 일본군이었다.
1894년 농민전쟁 120주년이 지났으나 2014년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생존권’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생존을 유지할 수 없어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소식이 이어지 있다. 권력은 인간의 소중한 자존과 존엄성을 유린하고, 자본은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서열화하고, 노동자들은 사람답게 사는 삶 보다 돈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 과거 어디로 돌아갈 곳도 없다. 지금 여기서 120년과 같은 ‘농민전쟁’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1894년이 던지는 강한 질문이다.
고대 로마시대 ‘스팔타쿠스의 난’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투쟁은 끊임없이 깨지고 패배했지만 소멸되지는 않았다.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아도 역사의 희망이 소진되고 역사적 낙관주의가 희미해져가는 절망의 상황에서 늘 ‘사건’이 터져 나왔다. 여전히 생존권이 문제가 되어 ‘밥이 하늘’이라고 외쳐야 하고, 인간의 자존과 존엄이 짓밟혀 ‘사람이 하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120년 전 동학농민군이 외쳤던 ‘밥이 하늘인 세상’ ‘사람이 하늘인 세상’의 꿈은 버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