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2014년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이었다. 갑오년이 이갑자 되는 해라 더 관심을 기울였다. ‘4.16 세월호 참사’로 주춤하기는 했으나 농민전쟁 역사기행도 여러 차례 안내했다. 특히 더 관심을 기울여 찾았던 곳은 농민전쟁 2대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개남의 활동무대였다. 농민군이 1984년 4월 말 전주성을 점령하고 ‘집강소 체제’에 들어갔을 때 전봉준은 수천의 무리를 거느리고 금구 원평에 웅거하면서 전라우도를 호령하였고, 김개남은 수만의 무리를 거느리고 남원성을 근거지로 삼아 전라좌도를 통할하였다. 실질적인 세력은 전봉준 보다 김개남 쪽이 더 컸다. 그런데 이제까지 연구는 전봉준에 집중되었다. 전봉준은 농민군 ‘총대장’으로 주목을 받아 전해지는 이야기가 적지 않은데다 1894년 말 잡힌 뒤 서울에 끌려가 5차례나 취조를 받은 기록과 판결문이 남아 있다. 그에 비해 김개남은 전주에서 바로 처형되었기 때문에 재판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스스로 남긴 기록도 전혀 없다. 김개남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싶고 글도 쓰고 싶은데 자료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자료 탓만 하면서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다방면으로 흔적 찾기 작업을 하게 된다.
1970년 11월 13일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죽음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전태일의 생애에서 우리가 오히려 관심 기울여야 할 측면은 그의 분신 죽음보다 우리 나이로 23년을 산 길지 않은 그의 삶이었다. 전태일은 <전태일 평전>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 1983년 6월 출판된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전태일과 가까이 살았던 1970년대 노동자들보다 1980년대 노동자들이 전태일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 것은 조영래 변호사가 지은 <평전> 덕이다. 그 바탕을 이룬 것은 전태일이 남긴 일기, 수기, 편지 같은 기록이었다.
역사는 과거의 흔적을 수집하고, 정리하고, 선택하고, 분석하고, 평가해서 재구성한 사실이다. 과거의 흔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료가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가 없다고 할 만큼 기록은 중요하다.
짧은 메모라도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는 사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든 때이다. 예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1982년 2월 20일, 1980년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다가 목숨을 잃은 윤상원 열사와 그를 들불야학으로 끌어들여 노동야학을 같이하다가 사고로 먼저 숨진 후배 박귀순의 영혼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만든 노래로 알았다. 강의도 그렇게 했고, 글도 그렇게 썼다. 그런데 작곡자 김종률이 어느 인터뷰에서 광주민중항쟁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영혼결혼식에도 못 가본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1982년 4월에 광주에서 문화운동하던 사람들이 소설가 황석영씨 집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자기는 4월로 알고 있는데 같이 있던 사람들 가운데 그때가 5월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기억이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혼결혼식 이후에 만든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날짜까지는 작곡자 자신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몇 월 몇 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했다고 한 줄 메모라도 써두었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기억조차도 점점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먼 예를 들 것도 없이 각자가 했던 일들도 기록해 두지 않은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 할 것이다.
<1984년> 소설에서 조지 오웰은 누가 과거의 기억을 지배하느냐, 과거의 기억을 지배하는 자들이 현실과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지배 계급이 계급 지배를 관철하는 힘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기억, 기록을 지배하고 역사를 장악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노동자의 현실과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 노동자가 자기의 역사를 기억하고 지배하는 방식의 하나로 내가 강조하는 것이 ‘노동자 자기 역사쓰기’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자기 역사를 쓸 때 가장 기본 되는 기억의 기록이 일기이다.
2015년 1월도 벌써 거의 지나고 있지만 올 해는 일기를 써보자.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들어왔고, 아이들에게는 일기를 쓰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안 쓰고 있지 않나. 글쓰기가 두렵거나 절박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못 쓰고 있을 것이다. 일기라고 꼭 길게, 문장을 만들어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체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를 보면 열악하고 급박한 상황에서도 꼬박꼬박 일기를 썼다. 그렇다고 날마다 '꼼꼼하고 자세하게,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쓴 것은 아니다. 한 줄이나 두 세 줄로 무미건조하게 하루 일기를 쓴 날이 허다하다. 문학적 꾸밈이나 꼼꼼한 반성 없이 겪은 일만 썼는데도 오히려 긴박하거나 아픈 상황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노동자의 역사와 현실의 실천과 해방의 미래를 위해서 기록은 중요하다. 개인이나 단체나 근거 있는 평가와 반성, 성찰을 위해서도 기록은 필요하다. 그 출발을 일기로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