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노동자 차별, 함께 넘어서기

  • 글쓴이: 곽이경(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 민주노총 대외협력부장)
  • 2015-03-10

‘프라이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작년에 개봉했지요. 80년대 광부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한 게이,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80년대 중반 대처 정부를 뒤흔든 광부 파업이 전국적인 초점이 될 무렵,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무작정 탄광마을로 들어가 파업 지지활동을 통해 연대를 건설했습니다. 성소수자들로부터 모금을 받아 전달하고 광부노동자들을 위한 기발한 콘서트를 열기도 했죠. 물론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어요. 지배적 편견과 혐오가 당연히 컸고, 시골의 광부노동자들은 더 심한 편견 속에 있었기 때문에 연대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함께 싸우면서 동지가 되는 과정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요. 이후 광부노조가 영국노총(TUC)와 노동당에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압력을 넣는 데 앞장섰어요. 이를 계기로 더 많은 노조들이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하고 동성애자 조합원모임들도 생겨났어요. 이 영화도 엄청난 숫자의 광부노동자들이 대형버스를 타고 성소수자들의 자긍심 행진(Pride Parade)에 함께 행진하는 모습을 비추며 엔딩을 맞이합니다. 실제로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긍심행진에 지지와 연대를 표하며 참가했지요.

 

저는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여성 동성애자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광부노동자와 성소수자의 연대 경험은 제 가슴을 뛰게 했어요. 내 주변의 왠만한 성소수자 친구들은 모두 노동자인데 왜 아무도 커밍아웃을 못하는 걸까? 왜 노동조합 활동가들조차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고 생각지 않을까? 직장에서 결혼 압박에 시달리고 사생활을 감추느라 고생이 많다는 이야기는 성소수자 직장인들의 술자리 단골 메뉴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문을 갖기 시작했어요. 아무도 커밍아웃하지 않는 일터, 그 곳은 안녕한지 말이죠. 일하는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위축감, 불안 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되묻기 시작했어요. 성소수자의 노동할 권리는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죠. 많은 연구들이 사회적 거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집단으로 동성애자를 꼽곤 해요. 거리감은 이내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나지요. 편견과 혐오가 건재한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지내는 공간에서 배제되거나 미움을 받는다고 느껴요. 일하는 사람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언제나 동료들로부터 이런 거리감을 실감하며 일해야 하는거죠.

 

성소수자 노동자 차별, 무엇인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커밍아웃’이라고 해요. 본래 이 말은 ‘벽장을 뚫고 나오다’라는 뜻에서 유래했어요. 지금,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할 수 없는 직장은 벽장과 같아요.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환경에서 자신을 숨겨야 하는 이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놓이게 되요. 여러 국내외 연구들이 동성애자들은 강박적 불안이 방어적으로 생겨난다고 지적하고 있고, 그 결과 성소수자들은 일상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훨씬 높다지요. 성소수자 친화적인 직장이 업무 생산성을 훨씬 높인다는 경영학계의 연구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어요. 성소수자가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직장에서는 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동료나 상사들이 성소수자를 비하하거나 무시하더라도 당사자는 한껏 위축되거나 모멸감을 느끼며 꾹 참는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어떤 말과 행위가 차별로 인정되기까지는 차별받는 당사자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끊임없이 입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안 보이는 사람에 대한 차별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 노동자는 늘 차별금지의 바깥에 놓이게 되지요. 그러므로 회사의 취업규칙,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단체협약 등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공공연하게 혐오를 드러내거나 성소수자를 농담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약속할 때, 비로소 지금껏 문제가 아니었던 ‘태도’들을 점검할 기회가 생기는거죠.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스스로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가치임을 설득시키면서 진행되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차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공정하게 대우받고 평등하게 분배받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가족수당이나 복지수당 따위가 성소수자들에게 차별적입니다. 결혼 후 가족을 이룬 배우자나 자녀 수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수당이나 각종 경조사에 대한 유급휴가 등은 애시당초 가족을 이룰 수 없어서 배제된 사람들의 문제는 고려하지 않지요. 동성파트너와 10여년을 함께 살고도 이러한 혜택에서 제외된다면? 신혼여행도 본인의 연차휴가를 빼서 다녀와야 한다면? 파트너 인정이 되지 않아 간병휴직을 낼 수 없다면? 직장의료보험에 피부양자 등록이 되지 않아서 굳이 지역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면? 다른 부부는 다 해주는 전세자금대출이 나만 안 된다면?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철저히 이성애 가족 중심으로 짜여진 기업복지와 사회보장제도 바깥에서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를 ‘정상가족’ 바깥의 사람들에게 확대하는 것은 평등을 위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자신의 모습으로 일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

 

노동자들에게 ‘해고’나 ‘실직’은 너무 두려운 일입니다. 결국 먹고 살 길이 끊기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성소수자들은 채용 과정부터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머리가 짧거나 치마를 입고 싶지 않은 레즈비언에게 면접관은 대뜸 여자답게 하고 다니라거나 살 좀 빼라는 훈수를 두지요. 결국 면접장을 돌아나오면서 느끼는 모멸감은 오롯이 그녀의 몫입니다. 주민등록번호와 외모가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가 채용 장벽에 가로막혀 보다 열악한 일자리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도 현재로서는 개인의 몫입니다. 직장검진에 포함된 에이즈 검사 때문에 매일이 불안한 HIV/AIDS감염인 노동자들은 또 어떨까요? 일터로 진입하기까지 성소수자에게는 차별이라는 큰 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갖가지 형태의 고용차별(모집, 채용 및 해고, 노동조건 및 환경 등)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겪는 구체적 현실은 이들의 경험 속에 뭉뚱그려져 있던 고립감이나 박탈감, 모욕감이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갉아먹었는지를 낱낱이 밝힐 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 노동권’은 어떤 특별한 권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성소수자 노동자가 자기 모습 그대로 평등하게 노동할 권리, 그것을 위해 필요한 변화를 아우르는 권리인거죠. 물론,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것까지를 포함해서 말이에요.

 

연대의 경험을 통해 차별 넘어서기

 

차별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프라이드>에 나오는 광부노동자들처럼 노동자들은 파업이나 투쟁 현장에서 성소수자들과 함께 싸우는 경험을 통해 편견을 깨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일부는 성소수자들이 왜 일터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해요. 희망버스에 함께 탔던 한 노동자가 게이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동성애자를 처음 본(!) 충격에 휩싸였지만 환호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편견의 벽을 넘어서게 되었다는 일화가 그런 경우지요. 일터에서 존재감도 없고 권리도 없던 여성노동자, 장애인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비추어 더 깊이 공감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모멸감을 이해한다는 장기투쟁 중인 해고노동자와 성소수자들의 농성장에 가장 먼저 달려왔다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지지자들이 늘어나면 차별을 금지하는 각종 제도나 성소수자를 주체로 참여하게끔 하는 기회가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지요. 성소수자를 받아들이고 동료로 여기는 노동자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노동조합도 할 일이 있다!

 

한편, 성소수자 운동의 과제로 알려져 있던 것들의 상당수는 노동현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게다가 노동자들이 싸울 때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들도 많지요. 노동조합, 노동현장은 성소수자 평등을 자신의 과제로 삼을 수 있는 다양한 실천을 하는데 무척 좋은 공간입니다. 노동조합이 성소수자 노동자의 이름으로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성소수자 노동자를 조직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노동조합 내 성소수자 위원회를 만들거나 대의원을 선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소수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의 실현을 옹호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책무이죠. 성소수자 노동자의 드러내기는 노동조합의 의지가 확고할수록, 그리하여 이성애자 노동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혀 인식 전환의 계기를 더 폭넓게 마련할수록 손쉬워 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내에서 지지모임 등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커밍아웃이 어려운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나설 수 있기 위한 가장 시급한 조건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새로이 발견하는 경험, 그 힘을 모아 세상을 바꾸는 신나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