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퀴어문화축제 문화제

  • 글쓴이: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 2015-08-02

  퀴어문화축제는 퍼레이드, 영화제, 전시회, 토론회, 파티 등 문화컨텐츠를 위주로 구성된 시민참여형 축제이다.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고, 기여할 수 있는 축제로서 2000년을 시작으로 매해 축제를 개최하여 올해 16회를 맞이하였다. 2015년 6월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이슈 중 하나가 퀴어문화축제 특히 퍼레이드일 것이다. 보수개신교계의 격렬했던 반응 덕에 더욱 유명세를 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2014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보수개신교계의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개최를 방해하기 위한 행동은 2015년 더욱 조직화 되고 적극적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문화행사는 당국의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퀴어문화축제는 문화행사이기에 마찬가지로 허가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퍼레이드 참여자의 안전을 보장하며 거리 행진을 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하고 이때에 필요해지는 것이 집회신고이다. 일부 보수개신교 세력들은 이점을 이용해 집회신고를 선점함으로서 퍼레이드의 개최를 막으려 했다. 경찰이 취하고 있는 선신고 우선 원칙을 악용하여 신고개시일 전부터 해당 지역 경찰서 앞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등 집회신고 1순위를 선점하려 하였고 퍼레이드의 예정 장소의 1순위 집회신고를 함으로서 퍼레이드의 날짜와 장소의 변경이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들은 시청, 경찰서 등 관공서에 항의 방문을 하고 전화 등 민원 접수를 진행하여 관공서를 압박함으로서 퍼레이드의 개최를 막으려 하였다.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불허할 것을 요구하는 그들에 압력에 관공서가 휘둘리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하였다. 서울시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폭언을 일삼는 보수개신교계의 주장을 성소수자도 사회를 살아가는 정당한 구성원임을 알리는 목소리와 대등하게 취급하였고, 경찰서는 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행사 보장을 위한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는 결국 한국사회가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나 아직 관공서들은 보편적 인권과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결국 퀴어문화축제가 퍼레이드의 장소를 서울 시청 앞 광장과 그 일대로 변경하면서 오히려 퍼레이드를 더욱 성공적으로 개최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혹자들은 이렇게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며 굳이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진행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끄럽지 않으면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 특정 계층에 한정되어 있던 사회적 권리 보장이 시민사회 구성원에게로 확대되는 과정도 사회적 소란 속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속적으로 존재를 알리고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것이 아닌 사회변화를 위한 중요한 노력인 것이다.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고 서로 존중할 수 있을 때 건강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 보장과 자유의지 발현의 보장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제약될 수 없는 절대 보편적 가치이며 이는 사회 다양성 보장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거나 폭력의 대상화 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1969년 스톤월 항쟁을 시작으로 이어져온 전세계의 퍼레이드는 성소수자의 생존과 권리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그 근간이다. 현재 세계 각국의 퍼레이드는 관광상품이 될 만큼 그 규모가 커지고 모습이 화려해 졌다. 또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또한 다양해 졌지만 그 시작점이었던 존재 자체가 사회로부터 부정당하던 시절의 절박한 외침 역시 아직 각국의 퍼레이드를 이루는 근간이다.

  한국의 퀴어문화축제 역시 여러 사회적 의미를 갖는데 그 중 하나가 사회적 소통을 통한 인식변화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이 그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드러내는 것이다. 특정 구성원의 존재가 명확히 인식되지 않으면 사회는 그 존재를 구성원으로서 대우하지 않는다. 이는 사회가 각 구성원의 권리 보장을 논함에 있어 인식되지 않는 존재는 그 대상으로 존중되지 못한다는 것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사회에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내가 이 사회에 살아가고 있음을 알리고 인식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인식 변화 역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사회적 소통 수단으로서의 퍼레이드를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 하여 방해하고 그 참여자에게 저주와 폭언을 내뱉고 해당 사회구성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정당한 사회적 주장이라 할 수 없다. 이는 명백한 사회적 폭력인 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그 대상이 성소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공격하기 쉬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나보다 사회적으로 강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요즈음의 한국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가 묻혀버린 경직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는 힘있는 집단, 다수의 집단이 아닌 이들에 대한 배척과 혐오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퀴어문화축제의 개최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이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한 보장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와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사회적 폭력은 폭력일 뿐이다. 정당한 폭력이라는 것은 없으며 폭력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