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되새겨보는 해방세상의 꿈(광주/담양편)

  • 글쓴이: 윤혜영 철도노동자
  • 2015-08-02

  설레는 마음으로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발장소로 향했다.

  광주..오월의 이름...8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순전히 윤리과목선생님(당시 전교조 광주지부 창단멤버. 해직교사)을 향한 팬심 하나로 광고협(광주고등학교학생협의회)발대식을 참석한 이후 전남대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를 만든 탯자리..빛.고.을...광주

  순례의 시작은 전남대와 ‘박관현 열사비’참배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전남대 정문에서 5월 당시 산산이 흩뿌려진 오월의 꽃잎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기념조형물과 설명문을 보면서 나는 어느새 10살로 돌아갔다.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 총소리, 아우성소리, 함성소리.

  초등학교 3학년. 계엄령이 선포되고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학교장의 가정통신문을 받아들고 봄방학이라 마냥 좋아했던 그 시절. 동네언니들을 따라 뒷동산에서 삘기와 봄나물을 뜯으러 돌아다니던 따스한 봄날. 평온한 며칠이 지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이 끌려가고 개죽임을 당했다는 풍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어린 내게도 들리던 그 시절.

  평온이 깨지고, 내 친구 민숙이의 팔꿈치에 계엄군의 총알이 스친 이후 민숙이는 성장이 더디고 비가 오면 결근하는 학생이 되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광주출신이지만 대학시절까지 나는 각종 5.18관련 행사와 순례를 별로 참석하지 않았다. 35년의 긴 세월이 흘러서일까? 그때의 상처를 찬찬히 들여다볼 맘의 여유가 생겼다. 이철의 선배님의 순례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건 웬만큼 맘이 치유되어서인지도 모른다.

 

  소중히 모아진 5.18자료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남아..

  우리가 도착한 그날, 광주 금남로에는 5월 역사적 현장이었던 광주가톨릭센터건물에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이 세워지고 개관하는 날이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관련 자료들을 소중하게 전시해놓았다. 5.18 기록사진들을 본 순간, 시민군들이 버스차창에 걸터앉아 각목으로 타악기 두드리듯 버스를 두들겨대던 그날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당시 계엄군들이 들고 있던 장총에 꽂혀있던 봄볕에 빛나던 대검의 눈부심까지도.

  시원찮은 등사기로 만든 선전물, 긴박감을 메모해 놓은 기자수첩, 민주화운동을 확대시키기 위해 주변 지인들에게 호소하기위해 흘겨 쓴 손 편지와 수습대책위의 회의 자료들.

  소중한 자료들이 한곳에 모아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짧은 시간동안 내용을 살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록물들을 알아보기 쉽도록 흘겨 쓴 글씨나 손상된 자료들을 정자체 인쇄물로 함께 전시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오월의 꽃잎은 핏빛 상처만 남긴 채 산산이 부서지고..

  그 시절 따사롭다 못해 무덥던 5월 한낮, 40대의 엄마는 두려운 눈빛으로 딸 셋을 겨울솜이불(당시 솜이불은 총알이 뚫지 못한다는 풍문이 돌았기 때문에)에 덮어놓고 출근 후 돌아올 줄 모르는 아빠와 고등학생 큰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로 다니던 완행열차 운행이 멈추고 계엄군의 재진입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남도청에 있던 시민군들이 어찌되었는지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우리가족은 평온을 가장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후 군부독재가 들어서고 우리가족은 누구도 5.18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말단공무원이었던 아빠가 소리 소문 없이 잡혀갈까봐...

  내가 차린 상차림도 아닌데..왜?

  우리 일행은 자리를 옮겨 화순으로 향했다. 오월투쟁이 점차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화순탄광노동자들이 대량의 화약을 싣고 광주시민군들의 민주화투쟁을 엄호하기 위한 진격준비를 한 것이다. 노동자, 학생, 시민 할 것 없는 그야말로 광주꼬뮨이 탄생할 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오월기념비의 맞은편에 자리 잡은 빨치산 진압 공덕비가 주는 웃픈 현실처럼 그건 순전히 상상의 역사일 뿐이었다.

  무등산 편백자연휴양림에 숙소를 잡은 우리는 한낮에 폭풍처럼 밀어닥친 5월 정신을 수습하느라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망월동 묘역을 들려 담양 소쇄원과 식영정으로 이동하였다. 조선시대에 내로라하는 양반들이 꾸며놓은 정원이었다. 전날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하는 일정을 마쳐서인지 풍광 좋은 정각이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모처럼 연휴를 맞은 관광객에 밀려 무엇을 차분히 정리해볼 여유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일행의 피곤과 반성을 말끔히 치유해준 건 남도의 넉넉한 상차림이었다. 저렴하지만 한상가득 차려진 한정식. 담양의 떡갈비정식은 1박2일 바쁜 일정에 여유를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100점 만점에 120점 ㅎㅎㅎ

  남도의 딸이지만 요리에 젬병인 내가 봐도 무한 감동의 상차림이었다. 푸짐한 인심과 끝없이 나오는 산해진미의 상차림에 내 어깨까지 우쭐해졌다. 내가 차린 상차림도 아닌데..왜??

 

  이정도 맛 높이 역사기행이라면? 가을기행도

  ‘이정도 맛 높이 역사기행이면 가을기행도 한번 따라가 봐’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려와 기획이 돋보이는 기행이었다. 오월 광주를 방문해주신 동지들~~혹은 갈까 말까 망설이는 동지들...기대하지 않은 여행에서 주는 반전은 감동 백배인거 아시죠? 우리함께 가을 역사기행 겸 맛 기행 떠나볼까요???

  - 2015년 6월 현장투쟁중인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