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7,530원. 1,060원 인상. 16.4% 인상률. 역대 최고치다.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고,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어디서나 화제다. 보수 언론에서는 연일 자영업자 망한다는 이야기만 쏟아내고, 진보적이라는 신문들은 문재인 찬양에 바쁘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해왔던 단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 조금씩 보인다. 어떻게 1만원을 포기할 수 있냐는 입장과 이만큼 오른 정도가 어디냐는 입장이다.
알바노조의 입장은 전자에 가깝다. 인상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이만큼 오른 것이 훌륭하다는 입장과 1만원을 요구했던 그 기본적인 정신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1만원이라는 액수, 과연 이 숫자가 단순히 임금의 양만을 의미했던 것일까. 1만원은 그냥 현실적인 조건 아래서 최대한 많이 올리기 위한 협상용 카드에 불과했는가.
적어도 알바노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1만원은 우리,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이다. 경제적 근거나 정합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선언한 것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필요하다고.
이 주장 앞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액수만이 아니다. 왜 1만원인가. 왜 우리 사회는 1만원을 주지 못하는가. 1만원이 지급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 등등 우리 사회의 노동의 문제와 실제 그 돈을 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어느새 우리 사회 저임금노동자들의 표준임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최저임금위원회라는 형태의 결정기구는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데 전혀 적합하지 않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동계위원들이 자영업자 대책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최저임금위원회에 건의하였으나 최저임금위원회는 그런 전반적인 대책을 논의하는 곳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용자위원들이 반발하여 결국 무산된 것이다.
1만원이 화두가 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면서, 올해 들어 어떻게 해야 1만원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는 올해 최저임금 논의가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논의는 최저임금 결정과 연결되지 않았다. 외부에서 새로운 제안,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단들이 여기저기서 제출되었으나 최저임금위원회는 결국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임금을 결정한 것이다.
올해의 경우, 공익위원이 심의구간을 정해주고 사용자 안과 노동자 안을 그 사이에서 내라고 제안했고, 이 심의구간에서 벗어나는 안을 제시한다면 다른 쪽에 투표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 뒤따랐다. 이 협박은 치명적이다. 어떤 안을 어떤 형태로 내놓아도 결국 공익위원 뜻대로 결정되는 미래는 정해져있다. 이러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1만원이 현실화되는 방법은 올해 그랬듯 대통령이 약속하는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실현은 되겠으나 이렇게 실현되는 1만원은 노동자의 뜻이 아니라 대통령의 시혜일 수밖에 없다.
올해를 보자면 내년에 과연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통령이 약속했고, 모두들 찬양하고 있으며,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당장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구호는 단순한 떼쓰기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물론 최저임금 1만원이 되기 전까지 문재인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실현되기 전까지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민주당 정부를 온전히 신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은 알바노조의 인식, 실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인식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저임금 1만원’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최저임금 1만원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했던가. 인간다운 삶, 일터에서 당당한 삶, 여가가 있는 삶, 행복할 수 있는 기반, 공정한 경제 구조, 등등이 아닐까.
그 길로 가는 데 있어 최저임금 1만원은 하나의 수단이자 도구였을 뿐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만능열쇠도 아니고,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 가난한 사장님이 나에게 최저임금 1만원을 줄 수 있도록 임대료를 낮추고, 대기업의 갑질을 없애는 투쟁, 여성이 대부분 최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하는 사회를 바꿔내기 위한 투쟁, 더 이상 일터에서 부당한 지시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노조를 만드는 투쟁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