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black size=5>송두율교수사건 세 번째 공판 안내 및 온라인 소식지
face=바탕,신명조 color=black size=2>
face=바탕,신명조 color=black size=2> style="FONT-SIZE: 11pt"> color=black size=5><송두율교수사건 세 번째 공판 안내>
style="FONT-SIZE: 11pt">지난 16일에 열린 송두율교수사건 두 번째
공판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변호사 반대심문이 중심이 이룬 이 공판을 통해 송두율 교수를 국보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이고 정당성이 없는가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검찰의 재심문과 증인의 증언이 중심이 될 제3차 공판이 아래와 같이
개최됩니다.
style="FONT-SIZE: 11pt">
face=바탕,신명조 color=black>일
시
face=바탕,신명조 color=black>2003년 12월 23일(화) 오후 3시
반
face=바탕,신명조 color=black>장
소
face=바탕,신명조 color=black>서울 지방법원 311호
법정
style="FONT-SIZE: 11pt"> style="FONT-SIZE: 11pt">
style="FONT-SIZE: 11pt">송두율교수의 무죄석방과 국보법 철폐를 위해 많은
분들의 방청을 부탁드립니다. 보수우익단체에서 동원한 사람들이 자리를 선점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늦어도 30분전에 오셔서
착석하시기 바랍니다.
face=바탕,신명조 color=black>
style="FONT-SIZE: 11pt"> 아울러 오후 2시 반 서울지법 정문 앞
(서울지검 쪽)에서 대책위 기자회견도 개최됩니다.
style="FONT-SIZE: 11pt"> 시간적 여부를 지닌
분들께서는 이 기자회견에도 함께 해 주시기를 아울러 부탁드립니다.
style="FONT-SIZE: 11pt">2003. 12.
style="FONT-SIZE: 11pt"> 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style="FONT-SIZE: 11pt"> *.
style="FONT-SIZE: 11pt">제4차 공판부터는 공판이 매주 화요일 2시 311호 법정에서 열립니다.
style="FONT-SIZE: 11pt"> (예를 들어 제4차 공판의 경우는 12월 30일 오후 2시입니다) 공판일자를 아예 수첩에 적어
두셨다가 공판 날 잊지 말고 30분전까지 법정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대책위 주최 기자회견은 4차공판 때부터는 오후 1시 서울지검쪽 정문
앞에서 개최됩니다. 이 기자회견에도 많이 참석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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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교수대책위
온라인 소식지(2003.12.19.)
▶ 송두율
교수 2차 공판 참관기
출처: 통일뉴스
일시; 2003년 12월 16일 오후 2시 30분
? 2003년 12월
16일 서울형사지방법원 중법정 311호, 오후 1시-1시 30분; 대책위 주최로 법원 동문 정문
입구에서 기자회견, 시대착오적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송두율 교수의 석방을 촉구(약 50명). 지난 1차 공
판 때와는 달리 극우세력의 조직적 동원이나 시위가 없는
상태.
오후 2시 30분; 개정과 동시에 밝은 웃음으로 입장하여 방청석을 향해 인사하는 송두율 교수에게 뜨거
운 박수. 방청객
가운데 일부 극우세력들 아우성과 욕설. 이에 재판장 한 명을 불러내 인적사항을 확인
하고 입실 금지 처분, 추후 유사 사태 재발시 감치권
행사 경고. 법정 내 방청객 가운데 1차 공판 때와
같은 조직적인 극우세력의 참관은 없는 듯 산발적으로 뒷좌석에 모여 않아 작은 소란.
그러나 대체적으
로 지난 1차 공판보다는 조용한 가운데 변호인 반대심문으로 진행.
▶ 변호인 반대심문 요지
1)
독일유학과 학문성과를 모두 반대심문: 철학을 전공으로 시작했으나 1968년 혁명 이후 유럽의 지
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하버마스 교수의
지도로 사회학과 경제사 등을 공부. 소련 사회주의에 대한 회
의에서 중국, 알바니아, 쿠바, 북한 등을 '정당한 이상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 학문적 관
심으로 1973년 북한 방문. 비교사회주의와 방대한 자료 수집에 기초한 사회주의 연구와 북한에 대한
올
바른 연구접근법으로 '내재적 접근법' 제안 등의 학문적 성과 자부. 현재는 근대와 탈근대 문제에 관한
4부작 집필, 현재
2부까지 출간 3부 집필중. 이 진술 도중 송두율 교수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
세이가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 돛단배에 몸을 묶은 것을
학문활동과 이번 귀국의 심경으로 비유. 내재적
접근법에 대한 변호인의 심문에 대해 송두율 교수는 방대한 경험적 자료의 섭렵과 비교사회주의
연구방
식으로 이루어지며, 선험적 존재론적 파악 관점에 반대하며, 소련 혹은 중국을 사회주 모델화하려는 시
도에 반대하려는 것이며
칸트의 내재적 비판을 원용한 것이라고 대답. 철학 비전공자에게 내재적 접근
법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남(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은 것이
며, 소련과 중국 등에 대해서는 엄청난 자료들이 있지만, 북한은 외부에서 수집할 수 있는 자료가
턱없
이 부족, 이에 따라 실체적 자료수집이 1973년 최초의 북한 방문의 가장 큰 이유였다고 대답. 이어서 북
한을 방문한 결과
밖에서 볼 때와 본질적 차이는 없었으나, 내부에서 직접 접촉한 자료가 중요했다고 대
답. 국정원과 검찰에서 내재적 접근법이 친북 편향성을
갖는다고 보는 데 대해, <교수신문>이 몇 년 전
1년의 프로젝트로 진행한 우리의 100대 이론 선정에 '내재적 접근법'이
포함되었음을 상기시키며, 학문
의 코드와 법의 코드가 각각 진리-허위와 적법-불법에 관한 것으로 다르다면서 법의 코드로 학문의
코
드를 처벌하는 것은 '분서갱유'에 다름아니라고 주장.
주체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관한 변호인의 질문에, 송 교수는
첫째, 비교사상사적 관점에서 제1
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으로 인한 정식적 황폐와 외세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민족
볼셰비즘(슈펭글
러, 칼 슈미트 등)을 낳았듯, 주체사상도 북한이 처한 위기의 산물이라는 점 둘째, 보편과 특수에 대한
태도
문제에서 피히테를 인용하면서 "나는 나이다"(定立)을 통해 타(他)를 정립해야 한다면서 남한은
세계화를 말하면서 동시성을 지향하고 북한은
주체성을 이야기하며 비동시성을 지향한다고 대답. 송 교
수는 변방의 세계에 있는 주체가 자기긍정하려는 사상이며 자아가 자아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주변환경
에의 적응이 중요한 데 이것이 바로 자주성이라고 대답. 송 교수는 북측 학자들과의 토론에서 중국과 달
리 북한에서는
전세계적의 사회과학에 대한 연구가 부진함을 지적하며, 국제적 채널의 화대를 충고했다
고 진술. 주체사상이 "폐쇄성"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
아닌가라는 변호인의 심문에 송교수는 주체사상은
단어만 번역되었지 해석학적 전제인 전체를 모르는 외부 관찰자에게는 이해의 어려움이 있다고
대답하
면서, 북한의 상급 학자 박승덕, 이성갑 등은 일어본을 통해 서구의 철학과 사회과학에 대한 정보와 높
은 소양을 갖고 있다고
진술 그리고 주체사상의 자폐성 극복을 위해 많은 정보를 제공할 필요성을 느꼈
다고 진술
북한체제에 대한 평가를 묻는 변호인의
심문에 대해, 송 교수는 1980년대 중반 이전 북한의 스스로의 혁
명과 건설이 이룩한 성과에 자만함으로써 80년대 중반 이후의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평가하며 특히 관
료주의에 그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
수령제에 대한 변호인의 심문에 대해, 송 교수는
그람시의 집합적 지능=당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어느
사회나 다양한 근대의 사회분화의 결과 당연히 출현하기 마련인 관료주의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중국이 이에 문화혁명을 통해 대응했다면, 북한은 수령제가 그 대응 방식이었다고 대답.
경계인에
대한 변호인의 심문에 대해, 송 교수는 귀국 이후 남한 사회를 보면서 느낀 점은 아기 경계를
기회주의로 인식하는 흑백의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진술. 구속을 각오한 이번 귀
국과 경계인의 역할에 대해서 2003년 3월 평양에서 열렸던 제6차 남북해외
통일학술회의 폐막 만찬에서
학술회의를 준비하면서 남북 양측의 원고 가운데 각 30%씩은 서로를 자극하지 않게 자신이 조정하여
폐기시킨 경험을 예로 들었음을 상기함으로서 대답을 대신하며, 앞으로도 이런 경계인의 역할을 하겠다
고 다짐. 모두 반대심문은 송
교수의 유학생활과 민주화 및 통일운동 그리고 자신의 학문세계와 현재의
마음가짐과 다짐 등 전반에 관하여 마치 철학 특강처럼 해박한 지식과
적절한 예를 동원·인용하며 진행
되었다.
2) 1991년 이전의 행적에 관한 반대심문에서 조선로동당 입당은 북한의 입장에서
냉전기에 자국을 방문
한 해외학자가 돌아가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 등을 할 데 대비한 일종의 방어책으로서 통과의례에 불과
한 것으로
입당했으며, 이번 귀국 이후 여러번 탈당에 관한 의사를 명백히 했음을 강조. 독일에서 활동
했던 '민건' '학술연구원' 등은 민주화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취지의 대답.
3) 정치국 후보위원 서열 23위 김철수에 관한 건: 1994년 김일성 장례 참석 입북시에 김철수 명의
사용
했으나 정지국 후보위원 선임 사실통고나 의례는 없었으며 당시 북한 내에서도 해외동포와 함계 활동하
며 송두율 명패를 사용. 당시
병원의 약 봉지에 김철수와 송두율 명의가 혼용되는 것에 항의했으며 이후
1995년 방북 때도 시정요구 사실 있었다고 진술. 베를린 주재
북한 요원인 김경필의 보고서를 근거로 변
호인과 송 교수는 북한의 상층 통일전선 사업의 대상이었지 최고위급 간부인 정치국 후보위원이 아님을
조리있게 반박.
4) 친북 편향성 주장에 대한 반대 심문: 송 교수는 1972. 7.4남북공동성명, 1991.12
남북기본합의서,
2000. 6.15남북공동선언 등을 예로 들면서 결코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으며 북한의 통일방안이나 현재
의 조건
등을 고려할 때 "적화통일" 의도도 없다고 진술
5) 학문활동, 사회활동, 방법론에 관한 반대심문: 송 교수는 역사와 민족에 대한
일관된 관심과 무정체
성 세계시민보다는 민족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학문적 방법론에 의거했다고 전제.남북한은 유교주의 담
론과 통일에
대한 염원에서 공통성을 가진다고 보면서 남북의 상호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위한
학문공동체의 형성에 헌신했음을
강조.
6) 변호인은 송 교수의 주요저서, 특히 <역사는 끝났는가><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경계인의
사색>에서 송 교수의 학문관과 사회관 인생관을 증명해 주는 구절을 인용하며 확인.
7) 학술회의 관련 반대심문: 검찰이 주요
기소 내용으로 삼은 6차례에 걸친 통일학술회의에 관해 송 교
수는 길승흠, 백영철 등 남한의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요구했고, 북한은 현재도
연례화에 반대함에도 남
한의 학자 기업, 언론사들의 열의와 지원에 힘있고 있음을 강조하고, 자신은 남북 학문공동체 형성을 위
해
중재자로서의 역할 수행해왔음을 강조. 이 과정에서 북측과 잦은 의견차이도 있었으며 북측은 경제
적 지원을 바라고 있음을 훗날 알게 되었다고
진술.
?변호인 반대심문 말미에 송 교수는 발언을 자청하여, 하이네가 13년간의 파리 망명을 끝내고 유대인과
공화주의자라는
이유로 박해받던 고향으로 돌아가 한 해 겨울이나마 지내며 <겨울동화>를 남길 수 있
었으나, 자신은 이번 귀국 이후 고향
제주도를 한 번이라도 찾아가보고 남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인지 의구심이 든다는 소회를 피력.
재판부의 보충심리에서,
북한에 대한 김철수 명의 사용에 항의했다는 송 교수의 진술에 집중하여, 구체
적 정황과 일시를 확인함으로써 정치국 후보위원 부분이 기소와
판결의 핵심적 내용이며, 검찰이나 법
원의 최대 관심사이자 증거 등이 취약한 것임을 강조. 제3차 공판은 12월 23일(화) 오후 3시
30분 중법
정 311호에서 재개하기로 하고 추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311호 법정에서 심리
키로 결정함,
다음 공판부터 변호인과 검찰 채택의 증인들에 대한 심문 예정을 공고함.
? 공판 방청기 약술: 변호인 반대심문이었던 2차 공판은 송
교수의 학문세계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
랑과 함께, 경계인으로 앞으로 조국의 통일을 위한 헌신의 결의를 천명하는 좋은 기회로 되었던
듯하다.
반면에 검찰의 기소내용이 빈약한 논거와 증거로 마치 사람에 대한 기소가 아니라, 송 교수의 저서와 통
일학술회의에 대한
트집잡기 및 송 교수에 대한 인신공격성에 있음으로 해서 변호인 반대심문도 검찰의
주장을 하나씩 밝히려다 보니 학술회의 내용과 저서 등에
대한 방만한 인용과 확인식의 지루함이 있었
다. 이로써 우리는 이번 재판이 분서갱유의 고대적 망동이고 정상적인 상식인이 가질 수 있는 법에
대한
최소한의 경애심마저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송 교수의 말씀처
럼 과연 "법의 코드는
적법과 불법만을 논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유희에 불과한 것일까?
▶ 방청 소감기
송두율교수석방대책위 운영위원, 민교협
사무처장
장시기 동국대 교수
12월 16일 오후 1시. 장충동에서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교대 역으로 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에 오르고 내린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은 너무나도 평온하다. 지하철에 걸려 있는 TV 화면에는 반나
의 어느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대학생인 듯한 어느 여성의 손 위에는 책이 펼쳐져 있고, 그녀의
두 눈은 인쇄된 글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너무나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그러나 나의 생
각은 이미 송두율 교수에게 다가간다. 지금 이 시간에 송두율 교수는 두 손이
포승줄에 묶여서 닭장 차
에 실려 서울법원으로 오고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동시성과 비동
시성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평온한 후기 근대의 자본주의와 억압과 폭력이 살아 날뛰는 핵심(초기) 근
대의 냉전 이데올로기가 동시성과 비동시성으로
공존한다. 남한과 북한이 그렇다. 근대라는 동시성과
더불어 핵심 근대와 후기 근대의 비동시성으로 공존한다.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이다.” 송두율 교수가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여 북쪽의 지식인들에게
끊임없이 반복하여 말했다는 구절이다. “북쪽의 폐쇄성은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번역의 한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지 북쪽의 인사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는 말은 아니다. “변화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번역의 한계”나 “언어의 한계”는 법정의 두 당사자인 검사와 변호사에게 존재하고 있었으며, 재판
을 관람하는
방청객들 사이에도 거대한 장벽으로 존재한다. 송교수가 재판정에 들어오자 많은 사람들이
두 손을 들어 흔들거나 박수를 쳤다. 그러자 뒤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자가 “이 빨갱이들! 박수치지 마!”
하고 말했고, 다른 한 남자가 “빨갱이들은 아무데에서나 박수쳐!”하고 말한다.
재판장이 그를 불러 퇴장
을 명했다. 박수를 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다.
송교수의 변호사가 끊임없이 “송교수”라는 호칭을
사용하자, 검사가 전두환과 노태우의 예를 들면서 “
피고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변호사는 이 시대착오적 재판과
사문화된 국가보
안법의 적용은 잘못이라며, 계속 “송교수”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나
는 앞의 중년
남자처럼 법정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고, 내 두 눈과 귀로 역사적인 “지식인 사건”의 법정
을 목도하고 싶다. 이것이 역사적인 “지식인
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2003년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송두율 교수 재판>이 1874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뒤레피스 사건>과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도 아니고 러시아인도 아니기 때문에 간첩의 멍에를 썼던 “뒤레피스”처럼,
송두율 교수는 남쪽
도 아니고 북쪽도 아니기 때문에 간첩이라는 멍에를 쓰고 있다.
프랑스의 지식인인 에밀 졸라가
<뒤레피스 사건>을 언급하면서 영국으로 망명한 것은 프랑스의 전근대
적인 제도를 근대적인 제도로 변형시키는 계기가 된다. 나는
<송두율 교수 사건>이 한반도에서 근대적
으로 확립된 두 개의 국가가 탈근대의 국가로 변형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뒤레피스가
프랑스인도
아니고 러시아인도 아니기 때문에 간첩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송두율 교수가 “남쪽도 아니고 북쪽도 아
닐 뿐만 아니라
남쪽이면서 북쪽”이기 때문에 간첩일 수는 없다. 근대화 과정은 흔히 민족 국가의 형성
이라고 말한다. 민족국가의 토대는 동일한 언어의
사용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오직 하나의 언어
만을 고집하면서 남쪽의 언어와 북쪽의 언어를 두루 헤아리지 못한다. 영어와 일어,
그리고 중국어와 불
어를 이해하고 번역하면서 같은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북쪽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하거나 번역하려고 하
지도 않는
우리는 과연 정상적인 근대인일까?
송두율 교수는 칸딘스키의 “and”론을 제시하면서 독일의 한 기자가 경계인을 “생산적인 제
3자”로 언급
하였다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그는 최근 감옥에서 읽은 김지하의 『생명철학』이 자신의 경계인론이나
“내재적 접근법”과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this or that)”가 아니
라 “이것이면서 저것인(this and
that)” 공생의 철학이다. 대나무 밭에 있는 대나무들끼리 서로 다투거
나 질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대나무 밭의 땅 밑으로 들어가면 모든
대나무들은 뿌리가 서로서로 연결되
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함께 살자고 하는 그의 두 손을 포승줄로 묶어 법정에 세우는 야만과
더불어 빨갱이로 몰아붙여 죽이려고 한다.
송두율 교수가 서구 사회주의 연구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구)소련과 중국에 대한
존재론적 연구에
대한 하나의 학문적 저항으로 제시한 “내재적 접근법”은 외재적 접근법에 대한 대안이 아니다. 사회철
학을 전공하는
그는 사회구조를 초월적 구조로 인식하는 근대적 연구방법론에서 벗어나 어떤 사회구조
의 생성적 요인을 내재적으로 연구해야만 한다는 “내재적
접근법”을 창안했다. 따라서 그가 이야기하는
내재적(immanent)이라는 말은 초월적(transcendental)이라는 근대적 언어에
대한 탈근대적 대안이다.
그는 말한다. “히틀러가 책을 불태워 분서갱유(焚書坑儒)한 것처럼 이 분서갱유의 재판을
집어치우라”
고... 책을 불태우고 지식인을 재단하는 것은 미래가 없는 것이라고... 그는 남한이 지니고 있지 않은
30%와 북한이
지니지 못한 30%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하여 <남북 학술대회>를 주최했다고...
송두율 교수가 이야기하는 남한은 세계화의
국가이고, 북한은 주체화의 국가이다. 따라서 그는 세계화
된 주체화와 주체화된 세계화가 우리의 통일방안이라고 말한다. 동시성과 비동시성이
서로 교차하면서
상호 작동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아마도 세계화된 주체화이며 주체화된 세계화가 아닐까? 송두율 교
수의 노력으로
제 6차 까지 이어졌다가 이제 중단되어 있는 <남북 학술대회>는 항상 “지뢰제거 작업”이
선행되었다고 송교수는 말한다.
“지뢰제거 작업”이란 남족 학자들과 북쪽 학자들의 언어가 서로를 자극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학술대회를 하기 이전에 상호 원고를 교환하는
작업을 말한다. 우리의 언어 속에
수많은 지뢰가 숨어 있구나! 그리고 송두율 교수는 우리 사회에 수많이 도사리고 있는 지뢰를 제거하기
위하여 이 땅으로 들어왔구나!
미국에서 은 실상황으로 TV에 방영된 것 같다. <송두율 교수 재판>이 실상황으로
TVdp 방영된다면 얼
마나 좋을까? 3시간 동안 이어진 “근대와 탈근대”, 시회연구의 “내재적 접근법”, “계몽과 해방”, 근대적
분서갱유의 “내셔널 볼세비즘”, “근대 수령론과 관료주의” 등등의 수많은 내용을 모두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심 재판이 끝나자 마치 몇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머리 속이 복잡하다. 글을 쓰는 마지막에 다시 법정
의 모습이 떠오른다.
검사의 이의제기와 판사의 제지에 청중들은 하나같이 쓴 웃음을 짖는다. 주임판사
는 두 번이나 청중을 향하여 “웃지 마세요!”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두 번 째는 “도대체 왜 웃습니까? 저
는 웃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참가한다. 그는 정말로 청중들이 웃었던
이유를 모르는 걸까?
송두율 교수의 변호사들과 수많은 청중들에게는 시대착오적이고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의 재판이 검사와
재판관들에겐
너무나도 진지하고, 마치 이 나라를 두 어깨에 짊어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
운 일인지? 이 너무나도 희극적인 비극. 다음
화요일 오후 3시 30분에 있을 검사의 증인심문은 더더욱
우스꽝스러운 희극이 될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나 나옴직한 이 우스꽝스러운
재판을 계속 목도
해야만 하는 것일까?
▶ 송두율교수 석방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계좌번호: 822401-04-003035 국민은행
김정인(송두율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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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교수
석방과 사상.양심의 자유를 위한 대책위원회
주소: 100-809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19 (천주교인권위원회 내)
http://freesong.jinbo.net
이메일 freesong@jinbo.net /전화
02)777-0641/ 팩스 02)775-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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