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의 핵실험과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

  • 글쓴이: 진보돌이
  • 2006-10-29

북(조선)의 핵실험과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반핵교조주의 또는 공상적 평화주의를 넘어서
3. 사회주의핵억지력과 북(조선)의 핵실험
4. 핵정책문서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5. ‘소극적 안전보장’을 부정한 ‘핵우산 공약’
6. 북(조선)의 핵실험과 사회주의반제혁명
7.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북(조선)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 안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북(조선)의 핵실험에 대한 정치적 견해가 둘로 갈라진 것이다.
한 쪽은 북(조선)의 핵실험이 제국주의반동공세에 맞선 자위적 조치이므로 용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다른 쪽은 북(조선)의 핵실험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에 역행하는 조치이므로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용인파와 반대파의 논쟁에 주목하는 까닭은, 진보정치세력이 사회주의국가의 핵실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그리고 중대한 정치문제가 그 논쟁에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그 문제는 비단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들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니라,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을 반대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진보정치세력들이 해명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은 아직 비핵화강령(denuclearization program)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못하였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살펴보면, 부문을 달리하여 각각 반핵강령(anti-nuclear program)과 평화강령(peace program)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환경부문에서 제시한 반핵강령은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녹색당의 강령과 같고, 외교부문에서 제시한 평화강령은 비핵화문제를 담지 못한 평화강령이다.
당의 평화강령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와 아시아 전체의 평화보장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줄임)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이해당사자 모두가 참여하는 국제적 협의기구를 결성하고 군축 및 지역평화를 위한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서술되었다.
그러나 북(조선)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논쟁은, 환경부문의 반핵강령이나 외교부문의 평화강령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그 논쟁은 진보정치세력이 사회주의국가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다.
주목하는 것은,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이 반핵강령도, 평화강령도 아니라는 점이다. 반핵강령은 한(조선)반도를 핵전쟁의 발화점으로 만들어놓은 미국의 ‘핵우산 공약(pledge of nuclear umbrella)’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북(조선)의 핵무장만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논리구조를 가진 것이므로, 그 강령은 북(조선)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한다. 다른 한편, 평화강령은 미국의 ‘핵우산 공약’과 북(조선)의 핵무장 사이에서 격돌이 벌어지는 오늘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의미의 평화와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강령이므로, 그 강령 역시 북(조선)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진보정치세력은 비핵화강령을 제시하였을까?
내가 알기로는, 비핵화강령이 아니라 평화강령을 제시하였을 뿐이다.
이를테면 1989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사회주의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 제18차 대회에서 채택한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의 원칙선언’에 들어있는 평화강령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 평화강령은 서로 다른 체제의 상호신뢰, 상호협력으로 평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로 다른 체제’라는 표현은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를 뜻하므로, 사민주의 평화강령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신뢰와 협력으로 평화가 실현될 것으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사민주의 평화강령에서는 반제국주의강령에 대한 불철저성이 묻어 나온다.
그런 까닭에, 2006년 10월 9일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은 북(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전략과 압박공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지적하지 않고, 북(조선)의 핵실험만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사민주의 평화강령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이 전개되는 현실을 외면하였다는 것, 그에 따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호신뢰, 상호협력으로 평화가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착각하였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은 사민주의 평화강령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이 벌어지는 한(조선)반도에서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시아에서 핵군축(nuclear disarmament)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정치강령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기대하건대,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은 비핵화강령을 반제국주의강령과 결합시킴으로써 다른 나라의 진보정치세력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가장 진보적인 비핵화강령을 작성하게 될 것이다.
진보정치세력이 비핵화강령을 논할 때 마주치는 첫 번째 난제는, 북(조선)의 핵실험을 반대하고 북(조선)의 핵무장을 해제하는 것을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제국주의비확산강령(imperialist nuclear-nonproliferation program)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이 제국주의비확산강령과 절대로 같을 수는 없다.
이 글은 북(조선)의 핵실험 이후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을 모색하는 하나의 시론이다.

2. 반핵교조주의 또는 공상적 평화주의를 넘어서

진보정치세력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비핵화는 정치중립적이거나 몰계급적인 것이 아니다.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은, 제국주의전쟁광(imperialist warmonger)들의 핵전쟁전략을 반대하는 비핵화라는 뜻에서 반제국주의강령과 부합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을 평화와 안전으로 보위하는 비핵화라는 뜻에서 노동계급적 가치와 부합된다.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은 반제국주의적이고 노동계급적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2-1)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이, 모든 형태의 전쟁이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영구평화(perpetual peace)가 실현되겠지만, 반평화(anti-peace)에 맞서 싸우는 반제투쟁,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평화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는 관념론에 빠진다면 평화를 실현하기는커녕 현재의 안전을 보위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평화의지를 가진 주체에게 안전을 보위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물리적 수단이 있을 때, 다시 말해서 평화를 교살하고 안전을 파괴하는 제국주의전쟁전략을 저지, 파탄시킬 수단이 있을 때, 평화와 안전은 마침내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로 전화된다.
평화와 안전을 관념에서 현실로 전화시키는 물리적 수단을 억지력(deterrence)이라 한다.
평화와 안전은 억지력이라는 물리적 수단에 의해서 보위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영구평화를 공허하게 외치는 평화주의(pacifism)에 의존해서는 자신의 안전을 보위하지도 못하고 평화를 실현하지도 못한다.
평화주의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전쟁의지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 정치적 환상이다.
그러한 정치적 환상이 중산층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의식에도 침투되었음은 불행한 일이다.
오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침략과 약탈과 살육을 저지르고 있는 참혹한 현실은, 억지력을 배제한 평화주의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얼마나 해로운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제국주의전쟁광들과 맞서 싸우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평화주의는 전쟁과 평화의 반제적, 계급적 성격에 대한 무지로 보이며, 침략전쟁과 혁명전쟁을 구분하지 못하는 맹목적 오류로 보인다.
사회변혁을 위하여 투쟁하는 진보정치세력은 전쟁의 근본원인이 적대적인 사회계급관계에 있다는 것, 그리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평화와 안전은 반동적 폭력에 맞선 혁명적 억지력으로 보위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평화를 실현하는 힘의 원천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2-2) 제국주의전쟁광들도 때로 비핵화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비핵화라는 개념에는 핵무기의 비확산(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이라는 뜻만 들어있을 뿐, 핵전쟁전략의 포기라는 뜻은 들어있지 않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말하는 비확산이란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을 은폐, 위장하고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안정화하려는 개념이므로, 진보정치세력은 그 말속에 담긴 기만성을 꿰뚫어보고 배격해야 한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틀어쥔 핵전쟁전략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광란적인가 하는 사실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핵전쟁전략의 위험성을 알려면, 미국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해온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저명한 핵물리학자들인 로저 스피드(Roger Speed)와 마이클 메이(Michael May)가 『미국 핵과학자 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2005년 3/4월 호에 발표한 논문 ‘위험한 교리(Dangerous Doctrine)’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반핵은 모든 핵무장을 반대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정치개념이지만, 모든 사회계급관계, 모든 정치정세를 불문하고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교조(dogma)가 아니다.
반핵이라는 정치개념은 그것이 노동계급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정치이념에 부합될 때, 그때 비로소 반핵교조주의(anti-nuclear dogmatism)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진보정치세력의 비핵화강령과 만날 수 있다.

2-3)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총파업투쟁 또는 대중항쟁에서 비핵화강령을 투쟁의 기치로 치켜들 때, 제국주의전쟁광들과 맞서 싸우는 반제전선은 더 한층 강화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제국주의침략전쟁을 저지하는 물리적 수단 곧 억지력이 없다.
총파업투쟁 또는 대중항쟁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도발하는 침략전쟁을 반대하지만 그것을 물리적으로 저지하지는 못한다.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물리적으로 저지함으로써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평화와 안전을 보위하는 억지력은 사회주의체제에서 조직된 군사력(military strength)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평화와 안전을 보위하고,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사회주의체제의 군사력을 사회주의억지력(socialist deterrence)이라 한다.
사회주의억지력은 재래식 억지력(conventional deterrence)과 핵억지력(nuclear deterrence)으로 구분된다.
재래식 무기는 억지력으로 용인될 수 있으나, 핵무기는 파괴력과 살상력이 너무 커서 수많은 민간인들까지 희생시킬 수 있으므로 핵억지력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는 ‘윤리적 견해’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윤리적 견해’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현실을 보지 못하는 두 가지 맹점을 지녔다.
첫째,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제국주의전쟁전략의 기본이 핵전쟁전략이므로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서는 사회주의억지력을 확보할 수 없다.
재래식 무기는 핵공격력 앞에서 아무런 억지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둘째, 핵보유국들은 재래식 무기를 대형화하고 핵무기를 소형화하는 성능개량사업을 끊임없이 진척시킨 결과,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 사이에서 대량파괴력의 경계선이 모호해졌다.
오늘 사회주의핵억지력으로 존재하는 핵무기는 60년 전에 폭격기에 싣고 가서 대도시 상공에서 떨어뜨려 수많은 민간인을 희생시킨, 크고 무거운 원시적인 전략핵폭탄(strategic nuclear bomb)이 아니라, 미사일 탄두부에 장착되어 발사됨으로써 적국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작고 가벼운 전술핵탄두(tactical nuclear warhead)이다.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을 저지함으로써 핵재앙의 위기로부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을 보위하는 물리적 수단은 사회주의핵억지력이다.
그런데 제국주의핵폭풍이 사회주의체제를 향해 시나브로 몰려가고 있을 때 반핵교조주의가 출몰하여 ‘반핵평화’라는 당위적 명제를 내세우면서 사회주의핵억지력 자체를 반대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체제를 피습위기에 내모는 것이며, 사회주의핵억지력을 제거하려는 제국주의비확산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반핵교조주의의 맹목성에 감염되면, 사회주의핵억지력과 제국주의핵공격력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은 반제적, 계급적 성격조차 가려보지 못하게 된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의 핵전쟁위험에 노출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을 사회주의핵억지력으로 보위하는 것은, 현 시기 사회주의반제혁명의 역사적 의무이다.
사회주의반제혁명은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정치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이라는 점에서 민족주의반제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주의반제혁명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제국주의전쟁광들과 맞서 싸우는 반제적, 계급적 관점에서 오늘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바라보면 문제가 명확하게 정리된다.
미국의 제국주의핵공격력과 북(조선)의 사회주의핵억지력을 동일선상에 놓고 반핵평화의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반대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반제투쟁에서 사회주의반제혁명의 의의를 부정하는 반핵교조주의와 공상적 평화주의의 오류이다.

3. 사회주의핵억지력과 북(조선)의 핵실험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이, 북(조선)은 핵실험을 실시하여 자국의 핵무장을 입증하였다.
북(조선)은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뒤에 핵무장에 성공한 유일한 사회주의국가로 되었다. 이것이 오늘 사람들의 눈앞에 전개된 현실이다.
그런데 ‘핵실험 공포증’에 걸린 반핵교조주의자들이나 공상적 평화주의자들은, 핵실험의 정치이념적 성격을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주의국가의 핵실험을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비사회주의국가의 핵실험과 동일시하는 혼동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미국이나 영국 같은 제국주의국가의 핵실험과 다를 바 없다는 식의 억지를 부리고 있다.
다른 한 쪽에서 대중언론들은, 체제위기에 몰린 북(조선)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핵무장을 선택하였다는 식의 이치에 맞지도 않는 헛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그러한 혼동, 억지, 헛소리는 너무 천박하고 무식한 것이어서 논박할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북(조선)의 핵실험과 핵무장이 지닌 정치이념적 성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3-1) 제국주의세계체제에서 중추기능을 맡은 일본이 핵무장을 하는 경우, 그것은 자위적 핵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이 틀어쥔 제국주의핵공격력의 아시아적 구성부분으로 될 것이다. 제국주의전쟁체제의 법적 기초인 미일상호방위조약이 일본의 핵무장의 정치이념적 성격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또한 제국주의세계체제에 예속된 남(한국)이 핵무장을 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자위적 핵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이 틀어쥔 제국주의핵공격력의 아시아적 구성부분으로 될 것이다. 제국주의전쟁체제의 법적 기초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남(한국)의 핵무장의 정치이념적 성격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대만의 핵무장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감시와 통제 속에 있는 일본, 남(한국), 대만의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지만, 동북아시아의 진보정치세력은 그들의 핵무장 요구를 반대하고 동북아시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대한 대립구도가 아니라 인접국들끼리 벌이는 영토분쟁 같은 지역갈등을 원인으로 하여 핵무장을 추진하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그 두 나라의 핵무장 역시 제국주의핵공격력에 맞선 핵억지력으로 될 수 없다.
또한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대립적인 비사회주의국가들, 이를테면 이란 같은 이슬람보수주의국가가 핵무장을 하는 경우, 그것은 사회주의핵억지력과 구분되는 자위적 핵억지력으로 될 것이다.
명백하게도,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대립적인 사회주의국가의 핵무장만이 사회주의핵억지력으로 된다.
사회주의핵억지력이 다른 유형의 핵억지력과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는, 그것이 자위적 국방의 차원을 넘어 사회주의반제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핵억지력이라는 것에 있다.

3-2)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 중국과 러시아의 핵무장은 사회주의핵억지력의 성격과 임무를 상실하였다.
그로써 제국주의핵전쟁의 위험성은 증폭되었고, 국제정세는 이전보다 더 위태롭고 불안정하게 되었다.
그런 시기에 사회주의핵억지력을 보유한 첫 나라가 국제정치무대에 등장하였나니 그 나라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사회주의핵억지력 대 제국주의핵공격력이 정면으로 맞서는, 그리하여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핵전력의 대립구도로 맞서는 새로운 단계로 전환되었다.
세계사회주의운동사에서 북(조선)의 핵실험이 가지는 정치적 의의는, 한(조선)반도를 핵전쟁의 발화점으로 삼은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을 저지, 파탄시킬, 그리고 핵위기를 일방적으로 강요해온 제국주의전쟁광들의 악착한 전쟁의지를 물리적으로 억지할 사회주의핵억지력을 재생시켰다는데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핵억지력의 재생계기이다.
21세기 세계사회주의운동사는, 지난 50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뚫고 매진한 끝에 기어이 사회주의핵억지력을 재생시킨 북(조선)의 반제투쟁사를 반영하여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4. 핵정책문서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

북(조선)의 핵실험을 사회주의핵억지력의 재생계기로 보는 견해는, 오늘 한(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를 입증할 때 진정성을 갖게 될 것이다.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의 위험성을 입증하는 자료는,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그 총체적 실상을 가늠하기 힘든데,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자기의 핵전쟁전략을 비밀정보(classified information)로 감춰놓아서 그 실상을 파악하기가 더 힘들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휘둘렀던 제국주의핵전쟁전략에 관해서는 로널드 파워스키(Ronald E. Powaski)가 쓴 책 『최후결전에로의 복귀: 미국과 핵무기경쟁, 1981-1999 (Return to Armageddon: The United States and the Nuclear Arms Race, 1981-1999)』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전문지식을 갖지 못한 일반대중은 그 전략을 ‘핵우산 공약’의 선언적 의미로나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은 남(한국)과 미국의 국방장관들이 한 해에 한 차례씩 만나서 그 무슨 공동성명이라는 것에 담아서 내놓곤 하는 ‘핵우산 공약’의 선언적 의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핵우산 공약’이라는 은폐와 위장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그 실상을 보아야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를 직감할 수 있다.
제국주의핵전쟁전략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보는 미국 국방부가 작성한 ‘핵태세검토(Nuclear Posture Review)’라는 핵정책문서에 들어있다.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전인 2001년 12월 31일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의 이름으로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된 그 문서는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글로벌 시큐리티(Global Security)’라는 미국의 민간연구기관이 자기의 웹싸이트에 발췌록을 공개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핵전쟁전략에 관한 군사기밀의 일부를 민간연구기관에게 흘려준 것은, 미국이 틀어쥔 핵전력을 은근히 과시하여 다른 나라들이 주눅이 들게 만드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의 상투적 수법이다.
나는 2003년 4월 3일에 작성한 글 ‘미국의 선제공격전략과 작전계획 5027’과 2003년 6월 17일에 작성한 글 ‘미일 군사동맹체제의 증강과 6.15 공동선언의 실현’에서 ‘핵태세검토’에 나오는 제국주의핵전쟁전략에 대해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핵태세검토’ 발췌문을 찾아서 다시 읽어보고, 다음과 같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4-1) 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지구 상공의 핵폭발로 생기는 전자방사(electromagnetic pulse)나 전자방해에도 마비되지 않는 첨단고주파통신체계(Advanced Extremely High Frequency Communication System)에 의거하여, 그리고 군사정보와 작전지시를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첨단광대역체계(Advanced Wideband System)에 의거하여 미국군을 지휘(command)하고 통제(control)하는 새로운 전투체계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 체계의 발전사업을 주도하는 곳은 국가핵안보부(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이다.
클린턴정부 시기에 합동참모본부 부의장이었던 해군제독 윌리엄 오웬스(William A. Owens)가 2000년 1월 1일 민주당지도부협의회 기관지에 발표한 ‘전투의 혁명화(Revolutionizing Warfare)’라는 글에서 “오래된 핵우산(nuclear umbrella)의 효용성이 사라지는 오늘, 미국은 새로운 정보우산(information umbrella)을 펼침으로써 동맹국들에게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논하였던 정보우산과 확장억지의 통합체가 럼스펠드의 핵정책문서에서 말한 새로운 전투체계이다.
국가핵안보부 방위사업국장 토머스 다고스티노(Thomas P. D'Agostino)가 ‘더욱 현대화되고 더욱 효율적인 핵무기 복합체로의 전환(Transform to a More Modern, Cost-Effective Nuclear Weapons Complex)’라고 부른, 약칭으로는 ‘2030 복합체(Complex 2030)’라고 부른 핵전력 증강사업이 새로운 전투체계의 핵심이다. (『워싱턴포스트』 2006년 10월 20일)

4-2) 새로운 전투체계에서는 재래식 전력과 비재래식 전력이 한꺼번에 가동된다.
새로운 전투체계는 이른바 선제적, 예방적 핵전력 사용(preemptive and preventive uses of nuclear force)을 위한 새로운 삼원체제(New Triad)인 것이다.
삼원체제란 지상발사기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s), 전략폭격기의 공중발사미사일(ALBMs), 핵잠수함의 수중발사미사일(SLBMs)로 적국을 초토화하는 핵공격을 기동력 및 타격력이 한층 보강된 재래식 공격과 통합시킨 체제를 뜻한다.
주목하는 것은, 새로운 삼원체제의 기본이 전술핵탄두를 장착한 핵미사일공격이라는 점이다.
문서에 따르면, 현재 8천 기나 되는 핵탄두를 2012년까지 5천 기로 줄이고, 즉각 사용할 수 있도록 작전배치한다는 것이다.
또한 재배치하는 이동표적들(mobile and relocatable targets)과 땅속에 깊이 매설된 견고한 표적들(hard and deeply-buried targets)을 전술핵무기를 동원한 장거리타격(long-range strike)과 정밀타격(precision strike)으로 파괴하는 새로운 타격체계의 개발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금 오키나와, 괌, 하와이에서는 새로운 타격체계가 이미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2006년 10월 19일)

4-3) 문서는 새로운 전투체계를 가동하여 침공할 대상을 북(조선)과 이라크로 지목하였다.
문서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북(조선)과 이라크는 고질적인 군사적 관심사(chronic military concerns)이다.” 그에 비해서, 문서는 핵강국들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라고 규정하였다.
2003년 3월 19일 새로운 전투체계를 가동한 미국군은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1999년 3월 24일 코소보 침략전쟁을 도발하였고,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침략전쟁을 도발한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세 번째 침략전쟁을 도발한 것이다.
서방의 군사전문가는 이라크침략전쟁의 특징을 묘사하면서 ‘참수공격(decapitation attack)’이라는 용어를 썼다.
제국주의침략무력의 파괴와 살육이 자행되는 가운데,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은 미국군에게 체포되었고, 지금 이 시각에도 제국주의점령군을 향한 이라크저항세력의 폭탄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이 핵정책문서에서 ‘고질적인 군사적 관심사’라고 지목하였던 두 나라 가운데 이라크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새로운 전투체계의 개발사업을 담은 핵정책문서가 작성된 때로부터 2년 뒤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럼스펠드의 핵정책문서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사실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북(조선)을 지구 위에 남은 유일한 핵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랜 시간과 엄청난 노력과 자금을 들여 개발하고 거의 완성한 새로운 전투체계를 가동하여 언젠가는 북(조선)을 공격하겠다는 악착한 침공의지가 그들에게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5. ‘소극적 안전보장’을 부정한 ‘핵우산 공약’

2005년 9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상대를 공격, 침공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는 것을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이라 한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한 달 뒤인 10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제37차 한미안보협의회(Security Council Meeting)는 소극적 안전보장을 부정하는 공동성명을 내왔다.
제37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은 “9.19 공동성명이 북(조선)의 검증가능한 핵폐기를 촉진함으로써 한(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조속히 실현될 수 있기를 강력히 희망한다”고 밝히고 나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대남(한국) 방위공약과 핵우산의 지속적 제공공약을 재확인하였다.”
그 뿐 아니라,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지속적으로 중요함을 재확인하였다.”
그 성명에 담긴 뜻을 꼼꼼히 따져보면, 그것은 북(조선)의 핵무장을 일방적으로 해제하고, 북(조선)에게 선제핵타격을 가하려는 ‘핵우산’을 증강하겠다는 매우 도발적인 선언이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란 말만 방위조약이지 실제로는 ‘핵우산’을 펼쳐 북침전쟁을 도발하려는 침공조약이며,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이란 말만 유연성이지 실제로는 ‘핵우산’을 증강하는 북침전략개념인 것이다.
‘핵우산 공약’은, 명백하게도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추진하는 대북(조선)적대정책의 핵이다.
미국 핵정보사업단(Nuclear Information Project)의 군사평론가 핸스 크리스텐슨(Hans M. Kristensen)의 지적에 따르면,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었던 리언 라포트(Leon LaPorte)는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가 열리기 직전에 기자들에게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부드럽게 표현할 것인지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9.19 공동성명을 의식해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리언 라포트는 ‘핵우산 공약’이라는 용어를 부드러운 용어로 바꿔보려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청와대는 한 술 더 떠서 이번 기회에 ‘핵우산 공약’이라는 용어를 공동성명에서 아예 삭제하도록 협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동아일보』 2006년 10월 18일)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핵우산 공약’이라는 용어를 삭제해달라는 청와대의 청원을 받아줄 리 없었다.
라포트의 말에 따르면, 그 회의에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의 ‘핵우산 공약’에 관한 표현문제를 논의하였다고 하는데, 결국 ‘핵우산 공약’에 관해서는 표현조차 바꾸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조선)의 핵무장을 일방적으로 해제하고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실현하여 ‘핵우산’을 증강하겠다는 사실상의 북침전쟁의지를 표명하였다.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은 북(조선)의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논하고, ‘핵우산 증강’을 공약함으로써 미국이 6자회담을 통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관심이 없고,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을 계속 밀고 나가고 있음을 드러냈다.
북(조선)은 9.19 공동성명에서 핵무장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하게 밝혔으나, 미국은 9.19 공동성명에 합의하고 나서 한 달이 뒤에 열린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9.19 공동성명의 전면부정으로 응답하였다.
부쉬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미국이 북(조선)을 공격, 침공할 의사를 갖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부쉬도 몇 차례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북(조선)을 공격,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그들의 말은 세상을 속이려는 거짓말이다.
그들은 북(조선)을 공격,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삼원체제의 핵전력’으로 북(조선)을 공격, 침공하려는 ‘핵우산’을 여전히 틀어쥐고 있을 뿐 아니라, 럼스펠드의 핵정책문서에서 드러난 대로 ‘핵우산’을 전례 없이 증강하고 있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의 겉과 속은 그렇게 다르다.
북(조선)이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인 2006년 10월 20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3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나온 공동성명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지(extended deterrence)의 지속을 포함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미국의 남(한국)에 대한 굳건한 공약과 신속한 지원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나오는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지’라는 전쟁개념이야말로 북(조선)을 ‘삼원체제의 핵전력’으로 공격, 침공하기 위한 ‘핵우산 증강’을 한층 다그치고 있음을 뜻한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을 더욱 위험한 지경으로 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남(한국)에게만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은 나라들에게도 ‘핵우산’을 제공하여왔다.
유럽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국들에게,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상호안보조약을 맺은 일본과 남(한국)에게 ‘핵우산’을 제공해온 것이다.
‘핵우산 제공’은 제국주의전쟁체제의 국제적 지배방식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지난 냉전시기 ‘핵우산’이라는 개념은, 사회주의핵무장국들이었던 소련이나 중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들, 일본, 남(한국)을 핵무기로 공격하는 경우, 미국이 핵무기로 보복한다는 뜻으로 썼다.
그래서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핵우산’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사회주의핵무장국의 핵공격을 억지하여 동맹국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보위효과를 가졌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적어도 남(한국)에 대한 ‘핵우산 공약’에 관한 한, 그러한 선전은 기만적이다.
미국이 남(한국)에게 제공하는 ‘핵우산’은 다른 나라에 제공하는 ‘핵우산’과 달리, 제국주의북침전쟁의 공격적 핵전력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에 관해서는 피터 헤이즈(Peter Hayes)가 오래 전에 쓴 책 『태평양의 화약고: 미국이 처한 한국(조선)의 핵궁지(Pacific Powderkeg: America's Nuclear Dilemma in Korea [1990]』에 일정부분 기술된 바 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사건’이 일어나자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전시에 공중발사 핵미사일을 싣는 거대한 전략폭격기 비(B)-52를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발진시켜 군사분계선 상공까지 바짝 접근시킨 뒤 기수를 돌리는 도발적인 선제핵타격연습을 한 달에 여러 차례씩 끊임없이 강행하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와 국방장관 해롤드 브라운(Harold Brown)이 발표하였던 남(한국)에 대한 ‘핵우산 공약’은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선제핵타격연습 중에 나온 것이다.
‘핵우산 공약’이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선제핵타격연습과 직결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조선)이 1977년 1월부터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문제와 미국의 핵전쟁위험을 제거하는 문제를 동시에 제기하기 시작한 까닭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의 ‘핵우산 공약’ 발표 이후 자기에 대한 핵공격위험을 한층 더 심각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우산 공약’은 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들, 일본, 남(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견해가 있지만, 그것은 오류이다.
그런 나라들의 핵무기 개발을 통제하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 공약’이 아니라 미국이 틀어쥔 핵확산금지체제(NPT Regime)이다.
그런데 냉전시기를 벗어난 지 오래된 오늘, 소련은 역사의 기억 속에 묻혀있고 그 뒤를 이은 러시아는 미국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적국이 아니며, 다른 한편 미국 및 그 동맹국들과 중국의 상호의존도는 한창 높아질 대로 높아지는 중이다. 오늘 핵무기를 가지고 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들, 일본과 남(한국)을 위협하는 적국은 지구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세는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그래서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 가맹국들이나 일본과 안보회의를 할 때, ‘핵우산 공약’을 확인하지 않는다. 냉전시기가 지난 뒤로는 그 나라들에게 ‘핵우산’을 제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독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어김없이 ‘핵우산 공약’을 재확인, 강조하고 있으며, ‘핵우산’을 한층 더 증강하는 도발적인 전쟁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바야흐로 세상의 눈과 귀를 피해 은밀하게 핵전쟁전략을 밀고 나가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남(한국)에게 공약하는 ‘핵우산’은 결코 선언적 의미가 아니다.

6. 북(조선)의 핵실험과 사회주의반제혁명

사회주의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또는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북(조선)의 핵실험과 사회주의반제혁명의 연관성을 논하는 주제가 무의미하게 보이거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국가의 행동을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인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에게 정면대결을 선포한 사회주의국가가 실시한 핵실험은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인식하여야 하며, 또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만이 그 핵실험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6-1) 역사적으로, 기관총의 발명이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무장봉기전략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핵무기의 발명은 사회주의체제의 보위전략을 변화시켰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두 가지 전략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지난 냉전시기, 제국주의핵전쟁이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를 공멸로 밀어 넣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낀 사회주의핵무장국들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peaceful coexistence)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은 사회주의반제혁명의 포기가 아니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은, 일반언론이 말하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나 ‘양대진영의 화해(reconciliation between the two camps)’ 따위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핵전쟁을 방지하여 사회주의체제를 더욱 공고히 만드는 건설전략이며, 사회주의반제혁명의 새로운 조건을 성숙시키기 위한 준비전략이다.
그러나 사회주의반제혁명을 수행하는 조건에서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평화공존을 유지하는 전략이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반제혁명이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을 사회주의의 승리로 전환시킬 때, 침략과 약탈은 종말을 고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갈망하는 영구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
둘째,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뒤에 홀로 남은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는 사회주의핵억지력이라는 물리적 수단을 갖지 않고서는 더 이상 자신을 보위할 수 없게 되었다.
다국적군이라는 이름으로 결탁한 제국주의침략무력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살육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리고 럼스펠드의 핵정책문서에서 드러난 대로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파괴하려는 제국주의핵전쟁전략이 구체화되고 있을 때, 사회주의체제가 사회주의핵억지력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사회주의핵억지력의 보유는 사회주의체제의 불가피한 보위전략이다.

6-2) 노동계급과 자본계급 사이에서 형성된 사회계급적 적대관계가 계급투쟁을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형성된 적대관계는 반제투쟁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계급투쟁이나 반제투쟁이 말과 말이 격돌하는 설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 투쟁은 불가피하게 물리력의 동원을 요구하게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물리력을 움켜쥐고 계급투쟁에 나설 때 계급혁명이 일어나고, 그들이 물리력을 움켜쥐고 반제투쟁에 나설 때 반제혁명이 일어난다.
일찍이 선행이론에서는 계급혁명을 ‘억압자에 대항하는 피억압자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무장봉기’라는 역사적 형태를 취한다고 보았다.
선행이론에 따르면, 피억압자인 노동계급이 억눌린 자신을 해방하기 위해 억압자인 자본계급과 맞서 싸우는 계급혁명의 물리적 폭발은 ‘역사상 유일하게 정당한 전쟁’으로 정당화된다.
서양사상사에서 이른바 ‘정의의 전쟁(justum bellum)'에 관한 이론은, 13세기 이탈리아의 신학자 토머스 어콰이너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이론화하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학, 철학, 윤리학, 정치학 등에서 다양한 담론으로 분화, 계승되어 왔지만, 그 이론은 사회계급적 관점을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기능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선행이론에서 논하였던 ‘역사상 유일하게 정당한 전쟁’은 기능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사회계급적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는 피억압자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상, 운동, 체제의 총체이므로, 사회주의가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주의반제혁명의 물리적 폭발 역시 계급혁명의 물리적 폭발과 마찬가지로 ‘역사상 유일하게 정당한 전쟁’으로 정당화된다.

6-3)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제국주의국가권력의 융합이 더할 나위 없이 고도화된 오늘날, 일찍이 냉전의 첫 시기에 출현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가 ‘거대한 군사조직체와 대규모 무기산업체의 결합(conjunction of an immense military establishment and a large arms industry)’이라고 묘사했던, 그 뒤로 언론들이 흔히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라 부르곤 하는 제국주의전쟁체제가 광풍과 화염을 몰고 오는 이 시대에, 전 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토록 갈망해온 영구평화의 길은 너무도 멀리 보인다.
제국주의는 침략과 약탈이라는 극악무도한 반동적 폭력행위, 곧 제국주의전쟁을 통해 자기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때문에 그러하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약탈적이며 전쟁적이다. 장장 250여 년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발전경로는 줄곧 약탈적이며 전쟁적이었다. 제국주의전쟁은 필연이다.
핵몽둥이를 부르쥔 제국주의전쟁광들이 침략전쟁과 약탈전쟁에 광분하기 때문에, 그에 맞선 사회주의반제혁명도 불가피하게 전쟁양상을 띄게 된다. 혁명전쟁(revolutionary war)은 사회주의반제혁명의 격화된 진행형태이다.
물론 혁명전쟁만이 사회주의반제혁명의 유일한 진행형태로 되는 것은 아니며, 정치협상도 그것의 또 다른 진행형태로 될 수 있다.
사회주의반제혁명의 진행형태가 혁명전쟁으로 되는가 아니면 정치협상으로 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세력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물리력을 동원하는 사회변혁은 총파업투쟁 또는 대중항쟁의 형태를 띄게 되는데, 사회변혁을 총파업투쟁이나 대중항쟁으로만 생각하는 협소한 인식을 가지고서는, 전쟁형태로 전개되는 사회주의반제혁명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6-4) 자본주의사회가 두 개의 적대계급으로 분열되어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끊임없는 투쟁이 벌어지는 계급사회라면, 오늘 한(조선)반도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대관계에 있음을 현실로 입증한 격전지이다.
한(조선)반도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두 개의 적대세력이 50년 동안 날카롭게 대립해오던 중, 이제는 사회주의핵억지력 대 제국주의핵공격력이 맞서게 된,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다.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이 자기의 사회주의체제를 보위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주의반제혁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은, 제국주의의 일방적 반동공세에 맞서 사회주의체제를 보위하는 방어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에 있는 어떤 중간지대에서 벌어지는 공방전도 아니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그 대결은 북(조선)이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반동공세에 맞서 싸우며 사회주의반제혁명을 밀고 나가는 진공전이다.
사회주의반제혁명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사회주의국가들인 북(조선)과 쿠바의 현실을 비교적으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1898년 미국은 스페인과 벌인 식민지쟁탈전에서 승리하여 스페인의 식민지인 필리핀과 쿠바를 빼앗으면서 쿠바 영토에 해군기지를 건설하였으니, 요즈음 비밀포로수용소로 악명이 높아진 관타나모 해군기지(Guantanamo Naval Base)가 그것이다.
당시 신흥제국주의국가로 등장한 미국은 쿠바에게 영구식민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제국주의지배체제 아래서 형식적인 독립을 얻을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였는데, 1903년 미국은 쿠바를 형식적인 독립국으로 만들면서 관타나모를 해군기지로 영구히 점령하는 식민지불평등조약을 체결하였다.
미국은 당시 금화 2천 개를 지불하기로 하고 관타나모 해군기지의 ‘영구임대계약’을 맺었는데, 오늘 쿠바정부는 훗날 관타나모를 되찾을 때 혁명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서 미국이 정기적으로 보내는 지불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
1959년 1월 쿠바혁명이 승리한 뒤로, 쿠바정부는 미국에게 점령당한 영토의 일부를 되찾기 위해서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들어가는 식수와 전기를 끓어버리고 미국군과 무력충돌을 벌이기도 했지만,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제국주의반동공세에 밀려 더 이상 공세적 반제투쟁을 벌이지 못하게 되었다.
오늘 쿠바에서 벌어지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은, 제국주의반동공세가 얼마나 광란적인지를 말해준다.
부쉬는 2003년 5월 20일 쿠바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쿠바를 위한 새로운 구상(New Initiate for Cuba)’을 발표하고 나서, 12월 5일 국무장관을 비롯한 장관급 각료들이 참가하는 대통령직속기구인 ‘자유쿠바 원조위원회(Commission on Assistance to a Free Cuba)’를 설치하였고, 2005년 7월 28일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는 ‘자유쿠바 원조위원회의 권고사항’에 따라 국무부의 ‘쿠바정권교체 조정관’을 임명하였다.
쿠바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제국주의반동공세가 가중되자, 쿠바는 사회주의반제혁명의 과업을 관타나모 반환과 중남미혁명 지원으로 전진시키지 못하고, 제국주의봉쇄압박을 받는 자국의 사회주의체제를 보위하는 것에 한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쿠바가 사회주의반제혁명의 과업을 자국의 사회주의체제를 보위하는 것에 한정시킬 수밖에 없는 까닭은, 제국주의봉쇄압박을 돌파하고 그 과업을 전진시킬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쿠바는 자기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적대정책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수단인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였다.
미국이 대쿠바 적대정책을 중단하여야 핵확산금지체제에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줄곧 서명을 거부해오던 쿠바는 결국 2002년 10월 23일 중남미지역의 핵확산금지조약인 틀라텔롤코 조약(Tlatelolco Treaty)을 비준하였고, 11월 4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였다.
쿠바가 미국의 적대정책을 중단시키지 못한 조건에서 핵확산금지체제에 들어간 것은 제국주의봉쇄압박을 돌파할 유일한 물리적 수단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둘째, 쿠바는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막아낼 재래식 억지력을 더 이상 강화할 힘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방정보국(DIA)의 보고서는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진 뒤로 쿠바군은 “최소한의 재래식 전투력을 보유한 내부세력으로 축소”되었다고 지적하고, “쿠바의 무력한 군대는 미국에게 사소한 재래식 위협밖에 되지 않는다”고 평가하였다. (『연합뉴스』 1998년 5월 7일)
이러한 상황에서 쿠바는 관타나모 반환과 중남미혁명 지원이라는 자기의 사회주의반제혁명의 과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고,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쿠바에 대한 침공위협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미국에 망명한 쿠바인들로 구성된 반동세력이 1996년 2월 반사회주의선동활동을 하기 위해 경비행기 두 대를 몰고 쿠바영공을 침범하였을 때 쿠바 공군기가 그 비행기들을 격추하자, 미국 국방부는 순항미사일로 쿠바공군기지를 공격하는 방안을 클린턴에게 건의하였던 것이다. (『연합뉴스』 1996년 10월 1일)
하지만 쿠바와 달리, 북(조선)은 사회주의반제혁명의 과업을 자국의 사회주의체제를 보위하는 것에 한정시키지 않고 반제국주의민족해방으로까지 전진시켰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과 벌이는 치열한 대결이 쿠바해역에서는 벌어지지 않지만,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6-5)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사회주의의 존재가치는 사회주의체제의 보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반제혁명을 밀고 나감으로써 사회주의자주화위업을 완성하는 데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북(조선)이 사회주의반제혁명의 과업을 반제국주의민족해방으로 전진시켰다는 말은, 제국주의 미국이 한미동맹체제로 위장하여 남(한국)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전략목표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남(한국)의 신식민주주의체제란 약소국이 조공을 바치고 강대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았던 옛날 봉건시대의 국제관계보다 훨씬 더 구조적으로 악화된, 반동적 지배예속관계인 것이다.
북(조선)이 사회주의반제혁명에서 수행하는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이란, 비타협적 반제투쟁으로 제국주의전쟁광들을 압박하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킴으로써 ‘핵우산 공약’의 포기와 제국주의점령군의 철군을 이끌어 내고, ‘한미동맹’으로 위장한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정치과업이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북(조선)의 핵실험은 사회주의반제혁명의 물리적 수단을 확보함으로써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을 혁명적 단계로 이끌어 간 사변이다.
한(조선)반도에서 사회주의반제혁명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반제혁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면서 시류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남(한국)의 중간정치세력은 북(조선)이 핵실험으로 개시한 사회주의반제혁명의 대공세에 놀라 난감하거나 동요하며, 진보정치세력의 반제투쟁에 직간접적으로 공조, 연대해오던 길에서 슬그머니 물러설 수 있다.
오직 반제의식과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진보정치세력만이 사회주의반제혁명의 대공세가 전개되는 긴장된 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중간정치세력의 동요를 막고,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북침전쟁전략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울 수 있다.
그들은 ‘핵우산’을 철거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공고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투쟁할 것이다. 그들이 투쟁의 기치로 치켜든 것이 비핵화강령이다.

7. 글을 맺으며

북(조선)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 자기의 핵무장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비핵화의지를 명백하게, 여러 차례 밝혔다.
역사적 경험을 돌아볼 때, 핵무장국들 가운데 핵무장의 자발적 포기를 선언하고 비핵화를 문서로 공약한 나라는 북(조선)밖에 없다.
이것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여느 핵무장국들과 달리, 북(조선)이 핵무장 포기를 선언하고 문서로 비핵화를 공약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단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가 가진 특성으로 볼 때, 비핵화를 실현하는 데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가 결정적이라는 것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만큼 자명하다.
제국주의전쟁위험을 사회주의핵억지력으로 막아내면서 미국의 ‘핵우산’ 철거와 북(조선)의 핵무장 포기를 상응적으로, 단계적으로 이행하여 비핵화강령을 실현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1994년의 조미기본합의를 내오는 과정에 참여했던 미국 국무부 관리로서, 1990년대 중반에 평안북도 영변의 핵과학연구기지(Nuclear Scientific Research Center)에서 통산 다섯 달 동안 머물렀다는 케네스 퀴노네스(C. Kenneth Quinones)는, 그곳에서 핵과학과 관련된 밝은 색채의 영상을 배경으로 그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거대한 초상벽화를 보았다고 기억하였다. (『워싱턴포스트』 2006년 10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거대한 초상벽화가 핵과학연구기지에 있다는 것은, 그가 북(조선)의 핵개발사업을 지휘해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30여 년 긴 세월 동안 안팎에서 조성된 온갖 역경과 난관을 무릅쓰고 사회주의핵억지력을 기어이 완성시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는, 이제 비핵화강령을 실현하는 길에서도 양보와 주저를 모르고 관철될 것이다.
북(조선)과 1 대 1로 맞서는 대결에서는 자기들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고 일찌감치 6자회담 장막을 펴들고 나타난 제국주의전쟁광들은 유엔안보리를 앞세워 제재범위를 확대하면서, 북(조선)이 재생시킨 사회주의핵억지력을 제거하려는 제국주의비확산전략을 다그치고 있는데, 제국주의전쟁광들의 제재와 압박이 가중되어 설령 ‘고난의 행군’과 같은 시련이 다시 앞길을 가로막아도, 북(조선)은 비핵화강령을 실현할 것이다.
비핵화강령을 논할 때 지적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과업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임을 천명함으로써 비핵화강령과 사회주의강령이 결합되어있음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비핵화강령에 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사회주의핵억지력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을 때, 다시 말해서, 사회주의반제혁명이 제기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을 완수할 때, 핵무장을 포기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의 발언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의 북침전쟁의지를 무력화하는 비핵화가 실현되어 사회주의반제혁명의 승리를 이룩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회주의핵억지력을 보유한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북(조선)의 핵실험 이후 변화된 정세에 대응하는 남(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이 수행해야 과업은 명백하다.
그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평화와 안전을 보위하기 위해, 한(조선)민족의 자주적인 삶을 보위하기 위해 비핵화강령의 기치를 치켜들 것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한(조선)반도의 푸른 하늘에 광란의 핵구름을 몰고 올수록,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비핵화강령의 기치가 휘날리는 반제전선으로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다. (2006년 10월 26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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