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혁명하라!

  • 글쓴이: 김영준
  • 2009-09-08

[서평]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김영수, 메이데이
정병기(영남대)

“국민이/정부의 신임을 잃었으니/두 배의 노력을 통해서만 이를/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차라리/정부가 국민을 해산하고/다른 국민을 선출하는 것이/쉽지 않을까?”

독일의 위대한 문호 브레히트가 1953년 동독 인민들의 봉기를 두고 노래한 시다. 이 풍자는 2008년 우리나라의 촛불집회에도 적용된다. 당시 정부는 명박산성을 쌓고 집회참가자들에 대한 폭력적.사법적 탄압으로 국민을 해산하고자 했다.

▲ <민주주의를 혁명하라> 김영수, 2009, 메이데이
이 촛불집회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나라 정치 전반에 대한 상상 혁명을 시도한 책이 나왔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을 꿈꾸던 김영수 박사가 금년에 내놓은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메이데이)가 바로 그 책이다. 책머리에서 저자는 촛불시위가 이 책을 쓴 동기이며 촛불시위 참가 청소년.소녀들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또한 브레히트의 영감을 받은 듯 진정으로 그가 하고 싶었던 정부와 국가의 해산을 통해 새로운 민주 공동체를 구상하였다. 그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실현되는, 권리주체들의 민주주의이다.

저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인 대의민주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통제하는 자치민주주의를 구상한다. 이러한 혁명적 구상은 상상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혁명을 위한 저항권 및 소환권과 관련해 그는 헌법효력정지권, 국가기관업무중지권, 국민헌법재판권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통치구조로서 입법권, 생활안전권, 권력통제권이라는 새로운 3권 분립을 제창한다.

또한 이 새로운 세 통치부서는 부문대표, 지역대표, 업종대표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차등투표, 순위투표, 기명투표제 등을 제안하기도 하며, 악법에 대한 비합법성기소제도를 제시하고, 만 명까지 가능한 국회의원 수 증가와 정당국보조금 폐지 및 정치인들의 무보수 봉사를 주장하며, 청소년들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한 그의 착상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국가기관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해야 하며, 모든 국가기관은 집행기관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의 관심은 통일과 평화 구성으로도 이어져 ‘1민족 2체제 3국가 3정부’라는 획기적인 평화동맹국가론을 고안했다. 유럽연합처럼 남북 체제를 유지한 채 평화와 통일만을 추구하는 새로운 연합국가를 창설한다는 이 구상은 실로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설명은 질박하면서도 상상과 논리는 웅숭깊은 텍스트다.

그의 상상은 항상 혁명을 동반한다. 혁명적 상상으로 상상은 혁명을 낳는다는 논리가 문장마다 끈끈하게 배어 있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상상력을 요구하며 사람들의 뇌세포를 자극하려는 그의 의도가 훌륭하게 성공할 듯하다.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의 뇌도 그의 자극에 철저히 노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극 속에서도 상상의 틈이 엿보이기도 했다. 그의 새로운 3권분립 구도에서 생활안전권은 행정권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사법권이 권력통제원에 속한다면 개인이나 비권력기구에 대한 재판권은 어디에 속하는가? 정치인들에게 보수를 주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은 돈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무엇보다 커다란 틈은 국민을 선하고 단일한 주체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국민은 단일한 의지를 가진 선한 존재인가? 그러면서도 그는 다른 한편으로 지금까지의 국민을 참된 민주주의를 몰랐던 주체로 가정하고 새로운 상상혁명을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국민은 지금까지의 국민과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의 상상력을 보건대 이러한 과제는 다음 기회에 충분히 풀릴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리라.

혁명적 상상을 꿈꾸는 자와 상상의 혁명적 실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신선한 자극과 희망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자극과 희망에는 가시적 길도 함께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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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희 (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2008년은 촛불의 해였다. 청소년·소녀들이 든 촛불은 여기저기서 타올랐다. 내로라한 정치세력들은 촛불에 끌려 다녔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춤을 췄다.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내 일상과는 하등 상관없었던 대한민국 헌법이 묵은 먼지를 털고 입에서 입으로 울려 퍼졌다.
2009년은 용산학살로 시작되었다. 살자고 망루에 오른 이들이 하루 만에 죽어서 내려왔다. 그 억울한 죽음은 7개월이 넘도록 냉동고에 갇혀 있다. 한여름 평택에서는 노동자들이 공장 안에 갇혀 있었다. 함께 살자고 외친 그 간절한 목소리들은 연대의 메아리가 아닌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되돌아왔다.
과연, 이 땅의 민주주의는 노동자·민중의 것이기는 한 걸까? 지배세력만의 민주주의인 것은 아닐까? 지난 10년이 민주주의 시대이기는 했을까? 민주주의로 위장한 부르주아 세력만의 시절이지는 않았을까?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부터 시작한다.
‘민주화 이후 민주화’를 뛰어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혁명적 상상력’을 주장하다!!
상상은 자유롭다. 자유롭지 않은 상상은 조작된 의식이다. 사람들은 법과 제도의 틀을 쉽게 넘어서지 않으려 한다. 법과 제도를 넘어서는 두려움이 작용해서다. 자유로움은 곧 두려움과의 경쟁이다. 혁명 또한 자유로움이다. 사람들은 억압과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혁명을 꿈꾼다. 일상에서 탈주하려는 꿈은 곧 혁명이다.
상상과 혁명의 경계에는 자유로움이 있다.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새로운 자유의 세상이 있다. 민주주의는 그 세상을 찾아 나선다. 민주주의는 권리의 한계를 부여한 적이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권리의 한계를 찾아 나서는 끝없는 여정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다. 상상혁명은 그 여정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형식적인 사고의 틀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상상력의 끝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 준다. 형식을 깨는 순간 무한한 창조와 창의의 힘이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그것은 의식혁명이기도 하고 제도혁명이기도 하다. 선언적인 주장에 머물러 버리는 혁명은 우리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은 곧 내 안에서 꿈틀대는 변화의 욕망을 자극할 것이다. 상상은 몽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하는 미래의 꿈이다.
《민주주의를 혁명하라!》는 지금의 헌법, 국가, 선거, 정치를 혁명하자고 한다. 과거와 현재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를 혁명적으로 상상하자고 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구속되어 있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헌법 제1조에 반한다. 사회계약의 주권자는 국민이 아니라 국가였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였다. 제헌헌법은 국민이 만들지 않았다. 기득권 지배세력이 자신의 헌법을 위해 국민을 동원하였다.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역사와 현실이 이러하다. 상상혁명은 그동안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허용했던 헌법을 넘어서고 있다. 헌법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 아니었다. 국민은 국가권력의 대상이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이 사실을 조작하였다. 국민은 조작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여기면서 살았다. 국민은 두려움에 중독되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없었던 두려움이다. 상상혁명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권력구조 자체를 전복한다.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민주주의 권력구조를 추구한다. 권력에 대한 자기지배의 원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선거는 생화가 아니라 조화다. 1인 1표제나 1인 2표제는 평등을 가장한다. 과반수 의사결정은 민주주의의 함정이다. 기성세대들은 청소년·소녀들의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 만 40세 이상이어야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다는 역사적 근거는 없었다. 만 15세 청소년·소녀들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민주주의의 꽃향기를 맡아야 한다. 이것이 상상혁명이다.
정치인은 권력의 꿀맛을 찾는다. 정치인이 누리는 무한한 특권은 국민의 피와 땀이다. 정당이 국고보조금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지배권력의 전국적 네트워크에 불과하다. 상상혁명은 국민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든다. 국민 스스로 자기의지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민주주의다. 조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민주주의다.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자유다.
상상은 아름답다. 형식을 뛰어넘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적이다.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혁명하는 것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 삶의 주인이 온전히 나일 수 있는 것, 그것을 그려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해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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