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웨일즈, 김산의 아리랑

  • 글쓴이: 노동자교육센터
  • 2012-10-17

님 웨일즈. 김산의 <아리랑>



박준성(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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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앞길이 아득한 때가 있다. 막막한 현실이 팔자 탓이 아니라 원인이 따로 있고, 자업자득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고 절망이 바로 희망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힘들어 지치고 만사가 귀찮을 때, ‘위인전’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태몽을 들으면 죽음까지도 예상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조건 속에서 힘들지만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생생한 삶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1980년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나오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살자하던 뜨거운 맹세’는 단순히 노래 가사 한 줄이 아니었다. 실제 그렇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가 김산의 <아리랑>이었다. 1983년에 <전태일평전>이 나오고, 1984년에 <아리랑>이 번역되었다. 두 책은 함께 읽을 필독서로 꼽혔다. 근현대사나 독립운동사 강의를 할 때 내가 꼬박꼬박 리포트 과제로 내주었던 책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님 웨일즈(본명 헬렌 스노우)가 1937년 연안에서 김산을 22차례 만나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전기이다. 여기에는 김산이라는 한 조선인 혁명가의 경험과 내면세계 뿐 아니라 그가 활동하였던 조선과 중국의 민족해방 혁명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1927년 광동코뮨의 실패나 중국 최초의 해륙풍 소비에트에 관한 기록은 당시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료가치도 높다.

1905년 3월 10일 태어난 김산(본명 장지락)은 11살 때 집을 나와 일본, 만주, 중국의 상해, 북경, 광동, 연안으로 떠돌면서 1938년 33살에 목숨을 잃을 때까지 조선과 중국의 해방과 혁명을 꿈꾸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함께 싸우던 친구나 동지들 수백 명이 죽어갔다. 그들은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의 사상과 인식도 기독교에서 시작하여 톨스토이즘, 아나키즘을 거쳐 마르크시즘으로 바뀌어 갔다. 1928년부터 그의 삶의 목표는 실패한 중국혁명을 강화하고 재건하는 것, 중국혁명 운동과 조선혁명운동을 조정하여 공동투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김산은 자기 인생에서 행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생애 전체가 실패의 연속이었고, 우리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으나 단 하나 자신에 대해서만은 승리했다고 한다. 자기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자신을 좌절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오류’는 필수적이며 선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한다.

김산은 1938년 ‘일본스파이’ 또는 ‘트로츠키주의자’, ‘반혁명’ 분자로 몰려 중국 공산당의 강생에게 목숨을 잃었다. 1983년에야 중국 공산당은 김산의 처형이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잘못된 조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명예와 당원 자격을 회복시켰다.

김산이 처형되기 전인 1937년에 연안에 있지 않았고, 헬렌이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둘 사이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영희 선생이 추측한대로 헬렌이 김산을 사랑하는 마음 없었다면, 존경심과 사상적 공감만으로는 <아리랑>같은 전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