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입학이 엄마의 입학?!

  • 글쓴이: 성희영(노동자교육센터 기획국장)
  • 2015-03-13

 

“엄마, 내일 학교 가야해?” 이렇게 묻는 아이에게,

“응, 가야해.”

단순명료한 대답으로 답했다.

 

14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던 아이는 6년간의 어린이집 생활을 끝내고 학교에 입학했다. 또래 친구들에게 싫은 소리, 화 한 번 못내는 아이라 학교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상처를 받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엄마의 걱정과 다르게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있다.

 

내 동거인 2, 민이는 내 인생을 바꾼 아이다.

스물아홉 겨울에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었다. 결혼 할 때쯤 동거인 1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식요리를 공부하겠다고 학원을 다녔고 나는 학습지 노동자로 살았다. 그래서 의료보험이 안 되므로 비싼(?) 지역의료보험보다는 부모님 밑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 년, 이 년이 지나면서 혼인신고를 왜 하지 않느냐, 애는 왜 낳지 않느냐는 성화와 압박으로 친척들과 부모님의 만남을 슬슬 피했었다.

 

어릴 때부터 보아 온 결혼한 여성은 시댁식구들과의 갈등과 육아,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비주체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여성의 모습으로 나는 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가사노동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결혼초기에는 동거인 1과 수 없이 싸웠다. 거기에 육아까지 보태진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육아를 분담한다 하더라도 아기에게는 엄마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겪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민이의 어린이집 부모 중에는 아빠가 일 년 간의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본 집도 있었다.- 페미니즘 책을 그렇게 많이 접했음에도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어쨌든, 육아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매사 엄마인 나와 성희영인 나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집에서 내가 돌봐야 하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동안 나는 내 시간을 가져도 괜찮을까?’

‘나와 아이의 관계는 어때야 하지?’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민이 엄마로 남아있는거지?’

아이가 커갈수록 성희영인 나의 정체성보다는 민이엄마의 정체성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민이가 태어나고 한 이 삼년 정도는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인지, 지금은 그냥 나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육아가 고통이고 부담감으로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민이가 크면서 배우는 것만큼 나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아이가 뱃속에 있었을 땐 –의학적 자료를 찾아본 적은 없지만, 임신을 하면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 여유로운 마음이 생겼고 세상이 다시 보였다. 그냥 지나치던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환경과 생태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육과 삶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이 살면서 인식이 확장되는 계기가 있을 텐데, 나에게는 그게 우리 아이였던 것 같다.

 

그 확장의 계기가 한 번 더 왔다.

약간 두렵기도 한 학교에 입학한 거다.

내가 12년을 보낸 공교육은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우기 보다는 오히려 깎아내리는 곳이 학교였다. 정해진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벌칙을 받고 왜 규율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민이도 가야 한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주변 활동가들의 자녀들처럼 대안학교에 보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공립학교에 보내야 하는 건지 고민이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다면 문제가 아니었지만 첫 학교에 대한 부모의 입장이 필요했다. 이미 대안 어린이집(?)인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대안학교로의 진학이 크게 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우려나 비판처럼 공교육에 대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부모의 임의로 원치 않는 학교에 보내는 것은 아닌지 이런 것들이 걸렸다. 부모의 만족감으로, ‘내 아이 잘 키우겠다는 마음만으로 대안학교에 보내는 건가.’ ‘더 많은 아이들이 대안학교의 교육을 공교육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은 뭔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교육을 국가가 주도해야만 하나.’,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교육을 무작정 받아들여야 하나.’

공교육을 변화시키는 것은 공교육에 들어가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혁신학교로 새롭게 교육을 만들어가고 공교육을 변화시키려는 시도와 노력은 공교육 자체에 대한 내부 평가도 있었겠지만 주변의 영향도 클 것이라 생각한다. 그 주변의 영향이 대안학교의 설립과 확장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대안적 교육의 모델이 공교육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으로까지 미쳤고 민이의 초등학교 결정은 쉽게 정해졌다. 다만, 현실적으로 비싼 교육비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부채도 자산이라는 마음으로 –말도 안 되는 말로 위로하며 살았다- 빚과 함께 살았는데 거기에 비싼 교육비까지 감당이 될까 고민이었다. 이 문제는 학교에 입학 시킨 지금도 풀리지 않은 고민이다.

이것은 대안학교의 가장 큰 문제 -문턱 높은 학교- 이기도 한 것이어서 나 혼자의 고민으로는 풀릴 수 없는 문제다. 대안학교의 구성원들이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서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몫이다.

민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나에게도 하나의 역할이 생긴 거다. 대안학교의 방향과 교육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지지하고 방안마련에 함께 하는 것.

그래서 나도 새롭게 입학을 하게 됐다. 아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