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과 '실천', 노동의 '가치'와 '행복 찾기'

  • 글쓴이: 권영국 (금속노조 두원정공지회 실천단장)
  • 2015-03-12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구조조정저지 투쟁, 2012년 직장폐쇄공격이후 지난10여년의 투쟁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새로운 형식의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민주노조의 정신을 지키면서 민주노조의 전형을 만들어 왔다고 자신하는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쉼 없이 달려온 투쟁 속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복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노조운동의 모범으로 불리던 외피를 벗고 내면을 바라보자.’ 우리는 조직력강화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현장은 신뢰를 보내며 함께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10여년이 지난 지금 현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여전히 지침을 내리면 따라준다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안주하고 있었다. 지도부가 바뀌어도 똑같은 내용과 주장을 현장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여전히 반대파를 성토하면서 위안삼고 온 것은 아닌지 내밀하게 복기해 보자.

 

 

조합 일은 간부들‘만’의 일

 

지난한 투쟁 끝을 알 수 없는 구조조정저지 투쟁 속에서 조합원들은 자신의 가족, 자신의 노후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전체가 똘똘 뭉쳐서 투쟁을 해왔는데 여전히 전망이 안 보이는 공장, 주구장창 회사 망한다는 협박질만 해대는 경영진을 보면서 고민하던 조합원들은 지쳐가고 있었고,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회피하는 방식은 노조에 대한 거리두기로 나타났다. 대의원선거는 옛말이 되었고, 서로 하지 않으려는 정서는 사번 순, 제비뽑기, 사다리타기로 변형되어버렸다. 조합원은 생산만하고 임금, 고용, 권리, 골치 아프고 힘든 일은 노동조합과 간부들 몫으로 굳어졌다.

 

대의원들은 재수 없어서 뽑혔다고 생각하는데 활동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기왕에 맡은 대의원역할을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어도 대의원회의 후 현장설명회를 하는데 전달하는 내용도 각양각색이고 조합원들의 집중도는 없었다. 조합원들의 격려보다는 오히려 마음의 상처만 남는 분위기였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집행부는 집행부대로 현장의 무관심에 서운함을 토로하면서 지쳐갔다. 서로를 지치게 만드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도 틈이 벌어져가고 있었다.

 

97년 경제위기로 시작된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에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기억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400여명이 공장에서 쫓겨나야 했고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불안에 떨면서 몸이 망가지는 줄 모르고, 아프더라도 내색한번 하지 않고 참으면서 버텨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본의 협박은 더욱더 악랄해져 갔고,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현장의 절박감은 새로운 집행부를 선택하면서 노조를 통해 해결의 길을 모색한 것이다.

 

자본의 협박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결의로 뭉친 집행부는 헌신적인 활동으로 현장의 신뢰를 획득했고 “단한명의 구조조정도 용인할 수 없다.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는 집행부의 선언을 실천해나갔다. 자본은 끊임없이 도발해 왔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조합원들은 흔들림 없는 투쟁으로 자본의 도발을 물리쳐왔다.

 

경제위기이후 1,000명이 하던 일을 600명이 하면서도 오히려 매출이 늘어나는 경험을 한 자본은 오로지 구조조정을 통해서 이윤을 남기겠다는 목적하나로 아무런 투자 없이 회사 망한다는 협박 질로 18년을 버텨오고 있다.

 

지난 10여 년 간 끊임없이 달려온 구조조정저지 투쟁에서 매번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자본의 협박에 조합원들은 지쳐갔고, 간부들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긴장의 연속인 노동조합활동은 간부들을 지치게 만들었고, 집행부조차도 구성하는데 어려움으로 나타났다.

 

10여 년 동안 쉼 없는 구조조정저지 투쟁을 거치면서 공동체의식, 서로를 배려하던 동료애는 점점 옅어져 갔고,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자본의 고용협박에 흔들리고, 불안을 스스로 감내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작은 실천이 만들어 낸 ‘변화’

 

지회장을 해고하면서 노조파괴의 칼을 빼든 자본에 맞서 현장을 조직하기 위한 실천단의 출투를 하면서 처음 일주일동안은 조합원동지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축 처진 어깨, 힘없는 발걸음, 무표정한 근심이 가득 찬 얼굴들.... 마지못해 출근하는 모습들....

 

민주노조 12년 동안 함께 살기위해 근골격계투쟁, 구조조정대응 연구사업, 주간연속2교대, 월급제, 그리고 조합원교육을 통해 투쟁을 조직하고 자본을 상대로 투쟁했던 지난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무엇을 놓쳤기에 조합원들의 불안감을 짊어지고 출근하는지... 지난과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출투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작은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표정하던 조합원들이 반갑게 서로 인사를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무관심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하던 모습들이 아니라, 자본의 고용협박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실천단의 선전선동에 귀담아 들어주고 매일 출투 상황과 실천단의 주장을 카톡을 통해 공유하면서 하나로 뭉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직접참여를 시작했다. 스스럼없이 정문 앞에 서서 선동을 하고 구호를 외치면서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정문 앞은 두원자본의 경영자들을 성토하는 장이 된 것이다. 출투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향우회, 동문회, 동호회, 분임조등 자신이 소속된 곳에 제안하고 함께 출투에 나오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에서 파업투쟁을 조직할 때, 조합원교육을 할 때, 상경투쟁을 할 때 간부들이 현장순회를 하면 마지못해 참여하던 조합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노동조합 지침도 아닌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동료를 조직하고 함께 참여하는 모습은 생소하기까지 했다. 일상에서 대면 대면했던 현장분위기가 활력이 넘쳐났다.

 

이러한 경험들은 분임조 활동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분임조 활동은 공동결정, 공동실천, 공동책임이라는 기본원칙 하에 파업을 진행했다. 자본의 폐업협박과 직장패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뭉쳐있었다. 두원냉기 광주공장, 두원공대, 부회장이 사는 타워 팰리스로 투쟁을 나가도 스스럼없이 나서고, 서로의 투쟁을 공유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주는 관계로 변화되고 있었다.

 

 

지킬 것은 ‘고용’만이 아니다

 

14년 투쟁과정에서 그동안 노동조합에서 놓쳤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지난 12년간의 구조조정투쟁에서 지치고 힘든 조합원들과의 소통보다 매년 반복되는 자본과의 싸움에 대한 긴장만을 요구했던 건 아닌지... 12년의 투쟁과정에서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었을 노동조합의 주장과 정당함에 대해 조합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조급해서 조합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점은 없는지... 두원자본이 경영하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체념하고, 끝 모를 자본의 고용협박에 불안해하면서 노동조합에서 알아서해 따라는 줄게라는 생각으로 굳어지고, 현장에서 일만하는 방식으로 회피한 것은 아닌지...

 

그동안 우리는 고용을 지키겠다고 투쟁해 왔다. 그런데 정작 삶의 터전인 공장을 동료를 그리고 노동조합 얘기를 하지 못하고 지내왔다. 고용만 지키면 되라는 생각만으로 구조조정저지투쟁만을 위해 살아오면서 우리 노동에 대한 자부심, 당당함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자신이 하고 있는 노동에 대한 자부심, 당당한 기세를 잃어버리고 반복되는 고용협박에 불안해하는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97년 경제위기 전, 후 현장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생산과정에서의 변화는 개별화되었다는 것이다. 각자 맡은 공정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완성품이 생산된다. 경제위기 전에는 자신의 일이 끝나더라도 동료의 일을 도와서 같이 일을 마치는 협업의 방식이 당연하게 인식되었고 그러한 방식은 서로의 노동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동료애가 있었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겪고 난 후 현장은 철저하게 자신의 일만 끝나면 동료가 일을 하고 있더라도 외면하고 자신만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다. 현장은 철저하게 개인위주로 돌아간다. 동료에 대한 불신도 나타나면서 사소한 일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격화되기 일쑤다. 자신에게 맡겨진 생산량만하면 된다는 인식은 서로가 소통하고, 협력해서 하나의 생산물을 완성시키는 노동의 가치를 의미 없게 만든다. 자신의 일이 끝났다고 동료를 외면하면 하나의 공정에 불과한 자신의 노동에서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설령 도움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도 동료가 일을 마칠 때까지 함께 있어주는 것에서부터 동료애를 찾고, 노동의 가치(의미)를 찾아보자.

 

우리는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지는 노동자들을 목격했다. 왜,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졌을까?

 

97년 경제위기를 겪고, 신자유주의가 본격화 되면서, 평생고용이라는 것은 사라졌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파견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세상이 바뀌었고, 정규직들은 각자 자신의 생존에 매달리고, 있을 때 벌자는 인식이 팽배해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생산과정이든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현실은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자신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살길을 선택한다. 노동자 개인의 힘으로 자본을 상대할 수가 없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뭉쳐서 투쟁했던 일들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흩어져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 무너지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임, 단협을 하지 말고 넘어가면 안 되는 걸까’라는 자조 섞인 얘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를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임, 단협을 포기한다면 자본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적들의 공격에서 승리한 노동자들의 선택은 우리의 단결에 있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흩어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단결은 동료들 간의 확고한 신뢰가 없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의 터전인 공장이 자본가의 것인지, 우리의 것인지를 분명히 하자. 우리의 노동이 없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한낱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노동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토론하고 실천하자

 

두원정공지회는 투쟁과정에서 회사의 현장 흔들기에 맞선 노조의 논리를 만들어내고 공유하는 교육을 진행해왔다. 두원자본이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주장한 것은 ‘금속노조’ 때문에, ‘강성노조’ 때문에 회사가 어렵다였다. 지회에서는 그룹사 전체 경영분석을 하고, 각 그룹사 현장을 조사해 몇 차례에 걸쳐 지도부가 직접 조합원 교육을 진행했다. 그 결과 그룹사 내 한국노총 사업장들이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 또한 두원자본은 전혀 투자를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오히려 그곳의 노동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착취당하고 있었다. 회사가 현장을 흔들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유포할 때, 이에 대한 대응논리를 지회가 연구하고, 조사하고, 조합원들에게 알려내면서 교육하고, 반드시 조합원들과의 토론과정을 거쳤다.

 

또한 실제 구조조정 투쟁을 전개했던 사업장들 사례(SJM, KEC, 쌍용차 등)를 직접 투쟁했던 주체들에게 받는 교육을 진행했다. 여러 투쟁사업장들의 교육은 노동조합의 요구의 정당성을 뒷받침 해주었고, 조합원들에게 분임조 활동을 통한 토론의 중요성과 단결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행복을 잃어버렸다. 특근 하나에 목메고, ‘있을 때 벌자’는 강박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 잔업, 특근이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안심하는 웃지 못 할 처지에 놓여있는 현실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어버렸는지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위한 교육과 토론, 실천이 필요하다. 노동을 한다는 것, 잃어버린 노동자의 삶을 찾기 위한 이야기들이 되어야 한다. 당당한 노동자의 삶, 자부심, 주인의식을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 조합원교육 삶의 터전인 현장,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자자신의 얘기는 없었다. 매년 반복되는 자본의 공격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조합원교육이 주를 이뤘다. 쌍방 소통보다는 때로는 지침에 의해, 때로는 지도부의 ‘선’ 판단으로 조합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하고 공포에 떨며 살아남기 위한 ‘강박’에 쌓여 있는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실천으로까지 나가게 하지 못한다. 조합원들을 주체로 세워내기 위한 것은 노동조합의 투쟁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도 녹아나야 한다.

 

‘파업’과 ‘투쟁’은 그 자체로 노동자의 훌륭한 학교다. 자본의 고용협박에 지쳐서 체념하고 있던 두원정공 노동자들이 자본의 폐업, 직장패쇄에도 위축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분임조별로 토론하고 결정한 투쟁을 실천해왔다. 2014년 투쟁과정을 통해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행복한 현장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삶의 터전인 공장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투쟁에 나서며, 노동의 가치를 찾아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