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위한 투쟁,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시작으로!

  • 글쓴이: 양유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 2015-05-22

 

    20120821,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투쟁 “1000일과 3년”

  그 동안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지내온 시간은 어느덧 낡아진 선전물들과 늘어난 영정사진에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2012년 8월 21일, 공권력과 12시간의 사투를 벌이며, 광화문역 농성이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와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이었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몸을 등급으로 나누어 모든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절대적 기준이다. 이와 비슷하게, ‘부양의무자기준’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제도적 폭력으로서 가난의 책임을 가족들에게 지우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 기준이다. 이 두 가지 기준 때문에 사람을 살려야하는 복지는 사람의 목숨을 쥐고서 흔들고 있다.

  2012년 말 18대 대선후보들은 모두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같은 약속을 한 바가 있다. 그러나 3년째 장애등급제는 폐지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단순히 장애등급을 단순화 하거나 등급판정체계를 수정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의 부양의무자 기준 역시 마찬가진데, 굉장히 교묘한 방식으로 ‘완화된 것처럼’ 바뀌어 올 7월부터 새로운 개정안이 시행된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살려고 나왔다. 그런데 장애등급 때문에 혹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친구들이, 내 동료들이, 내 동지가 죽어가고 있다. 결국엔 장애와 가난이라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죽음을 택하거나, 죽음의 상황에 이르게 되는 조건이 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사람을 살리고, 잘 살게끔 해야하는 ‘복지’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1000일 가까이 농성투쟁을 이어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처음에는 우리의 이야기를 알려 내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지금도 농성의 목표 중의 하나이지만, 농성이 길어지면서 이 공간을 안정적으로 ‘잘’ 지켜내는 것 또한 우리의 목표다. 광화문 농성장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출구를 설명해주는 안내판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문화공연으로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에는 현장 라디오를 한시간씩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일상들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지켜내고 있다는 것이 바로 가장 놀라운 힘이다.

  농성장엔 또 하나의 큰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연대’다. 누가 먼저일 것도 없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다. 이곳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농성장인데, 쌍용차해고노동자, 밀양의 할매들, 강정마을 사람들, 성소수자와 철거민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수많은 ‘쫓겨난’사람들과 크고 작게, 무엇인가를 함께 해왔고, 하려고 한다. 복지제도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나의 동네에서 쫓겨난 사람들,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 모두가 우리의 삶을 잃어버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서 서로 함께 힘을 주고, 받는 일들이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이 농성을 1000일가까이, 그리고 3년을 바라보며 강하게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2015, 보호와 시혜를 넘어 권리보장의 시대로! “장애인권리보장법 투쟁의 시작!”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농성투쟁이 길어지면서 한편에서는 이 투쟁이 제자리 걸음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작업들을 곳곳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 만들기가 바로 그것 중 하나이다.

  장애인 복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을 만난다. 이 법은 장애여부를 국가에 등록하게 하면서, 국가적 차원의 장애인 복지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이후, 1989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전면 개정되어 장애인복지법이 되었다. ‘보호’와 ‘시혜’의 시대로 들어선 순간이다. 이후, 장애등급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며, 기존의 등록된 장애인을 등급으로 구분하게 된다. 현재의 장애등급제가 바로 이때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장애등급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질 때 마다 전문성과 객관성의 이름으로 더욱 엄격해지고 강화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보호와 시혜적 관점의 복지를 그대로 둘 수 없기 때문에 장애인 권리 보장의 시대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장애와 장애인을 보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정의하며, 등급제와 등록제를 폐지하면서 복지제도의 개인별 지원체계를 구성하고자한다. 그리고 탈시설을 중앙정부차원에서 보장 및 지원 하도록 하며, 소득보장체계를 ‘표준소득보장금액’이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권리옹호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로 장애인 권리보장법의 핵심 내용이다. 물론, 이 안에서는 장애등급제, 장애등록제, 부양의무자 기준을 모두 적용하지 않고, 소득 기준 역시 기존의 가구소득 기준에서 벗어나 개인소득 기준을 적용하려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투쟁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의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법과 제도에 새로운 반기를 드는 아주 치열한 투쟁의 과정이 될 것이다. 완성된 법은 아니지만, 현재 광화문 농성장에서 외치고 있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는 방향에 맞는 내용을 담아내고자 했다. 비록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악을 빈틈없이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완전히 폐지될 때까지 광화문 농성장은 계속 유지 될 것이고,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실현시킴으로써 복지제도 안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될 수 있는 가능성과 사회적 합의를 보다 높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투쟁 역시 장애인들과 가난한 사람들만의 투쟁은 아닐 것이다. 또 어디선가 ‘쫓겨난’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함께 이야기하고, 외치고, 싸워 나가는 과정이 만들어진다면, 불가능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