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4.24 총파업 - 아주 오래된 숙제

  • 글쓴이: 차은남 (건설노조 대경지부 사무차장)
  • 2015-08-02

#. 짧은 감정.

4월 23일 늦은 밤 캔 맥주 하나 손에 쥐고 노조사무실을 한번 주우욱 둘러보았다.

‘그래 하자’라는 결의보다, ‘그게 되나’라는 우려와 회의로 출발한 4.24 총파업.

그 총파업 준비로 빽빽한 사무실을 둘러보니 가슴 한 켠이 묵직해 왔다.

아! 총파업 이구나 ... 아! 진짜 하는 구나 ...

몇 몇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내일 진짜 잘하자’

투쟁가 가사처럼 ‘한꺼번에 되찾는’ ‘단 한 번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투쟁은 될 수 없겠지만 나를 비롯하여 조합원들에게 ‘알싸리한’ 총파업 투쟁이 되길 바랐다.

 

#. ‘될까 안 될까’는 없었다.

사실 지부장의 의지가 워낙 강고한 탓이 컷 지만 간부들 모두 두어 달 남짓 오로지 4.24의 ‘가치’와 ‘의의’ 만을 보고 총파업 조직에 올인 하였다.

내 임금 올리자는 파업이 아니다.

건설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 1만원 쟁취’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등의 요구는 너무도 멀기만 하다. 어떻게든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간부들 스스로 부족한 시간 쪼개서 자료 읽고 내용 정리하며 대구, 구미의 전 건설현장을 돌며 서툴지만 직접 현장교육을 진행하였고 총투표에 한명이라도 더 참여시키기 위해 한 시간 넘게 걸리는 현장도 마다하지 않고 조합원들을 찾아갔다. 한 달여 가동된 지역 실천단에도 꾸준히 조합원들을 결합시켰다. 그리고 4월 24일, ‘박근혜 OUT’을 전면으로 내 건 정치 총파업에 건설현장은 멈춰 섰고 조합원들은 집결하였다.

 

#. ‘나는 사실 4.24 총파업 뭔가 제대로 된 판 일 줄 알았데이’

그날 오후 범어네거리는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뒤 덮이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대구 범어네거리’가 올랐다. 그리고 4명의 구속자와 42명의 소환자를 남겼다.

“나는 4.24 총파업 뭔가 제대로 된 판 일 줄 알았데이. 근데 이게 뭐 꼬?”

타성에 젖었던 나는 약간 속이 쓰리기만 했는데 진정을 다했던 우리 간부는 정말 실망이 컸던 모양이다.

7.15 2차 총파업까지 진행한 지금 사실 총파업 투쟁을 했다는 생각보다는 전국동시다발로 두 번의 큰 결의대회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산별에서 많이 나왔네 적게 나왔네 물대포를 쏘니 다 도망가네 어쩌네의 문제가 아니다. 총파업 몇 번 한다고 뭐가 바뀔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4.24 선제 총파업 이후 산별 파상파업 그리고 2차 총파업 하반기 총궐기라는 투쟁의 흐름 속에 정말 박근혜정권과 총자본에 제대로 맞짱 뜰 수 있다는 거대한 투쟁의 파고를 우리의 힘과 희망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파업에 대한 상은 매우 크고 준비는 부족하였다.

또 다시 아주 오랜 된 숙제를 확인하였다.

지금의 산별체계 속에 총자본에 대항하는 지속적인 총노동 전선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그 예전의 전투력을 기대하기에는 민주노총은 자꾸 나이가 들어가는데 다양한 세대와 영역을 아우르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등등

 

#. 조합원들 뒤에 숨지는 말자

7.15 총파업 조직을 위해 출근선전전에서 만난 조합원이 날 보더니 ‘최저임금 6,030원이 뭐꼬’ 그런다. 그 주변으로 다른 조합원들도 몇 몇 모이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확대간부 회의를 마친 뒤 짧게 노동시장구조개악에 대해 교육을 진행하면서 물어보니 4.24 전에는 5,580원도 잘 모르더니 척척 6,030원을 대답한다. 사실 쫌 놀랐다. 전혀 관심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4.24 총파업의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침소봉대하는 걸까?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 한다, “현장이 너무 얼어붙었다” “우리 조합원들은 관심 없다” 등등 ... 물론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정성이 있었던가? 진짜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했나?

타성에 젖은 회의감으로 ‘안된다’는 밑장을 깔고 조합원들 핑계 대며 뒤에 숨어서 피하려 하지는 않았던가?

이번 총파업을 통해 노동조합 지도부가 확고한 의지를 세우고 ‘진정성’을 다해 정면돌파 할 때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지난한 과정 속에 간부들도 단련될 수 있다는 것을...

 

4.24 총파업 앞에 두고 지난 97년 노개투 총파업이 자주 회자되었다.

노동법 개악에 맞서 책임 있게 총파업으로 맞서는 민주노총에게 시민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지지를 보냈고 집회대열로 모여들었다.

출근 선전전을 하면서 수많은 시민에게 선전물을 나눠주었다. 최저임금 1만원에 더러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나간다. 홍해의 기적과도 같은 간극. 이 간극을 좁히고 신뢰받는 민주노총이 되기 위한 책임과 노력에 대한 고민하나 더 보태며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