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의 한 직업고등학교에 노동인권교육 참관을 다녀왔다. 1학년과 3학년 수업이었다. 알바는 대학생의 전유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학생들을 만나보니 3학년이 되면 꽤나 많은 친구들이 알바를 경험하거나 친구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고 있었다.
외부 강사이기 때문에 호기심에 가득찬 눈초리로 반짝반짝 눈을 빛내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외부 강사의 경우 분위기를 잡지 못해 울고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들어서 오히려 걱정이 반이였다. 두 시간의 수업인데 강사분은 이렇게 말 문을 트신다. “ 두 시간 동안 여러분과 노동인권에 대해 알아볼 텐데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자도 좋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 방해되는 행동은 하지 맙시다.” 곧바로 취침에 들어가는 친구, 거울과 화장품을 꺼내드는 친구. . . 대체로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약속은 지킬 요량인가보다.
조금 후, 풉하고 웃음이 나온다. 거울을 꺼내들고 수업 내내 자기 얼굴 감상을 하던 몇 몇 여학생들이 선생님 질문에 대답은 다 하고 있다. 생각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
쉬는 시간에 물어봤다. “어떻게 그렇게 아는 게 많아? 알바 해봤어?” “아뇨. 친구들이 많이 해서 얘기 들은 게 많아요.”
이미 고등학생이면 알바나 실습을 통해서 노동현장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지만 친구들을 통해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근로계약서, 청소년노동시간, 잔업수당 계산법 등. 청소년을 취업 시켜준 게 어디냐며 갑질 설움 속에 배웠을 그들의 경험이 짠허니 다가온다.
독일과 프랑스는 초등과정부터 체계적인 노동인권교육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역할극을 통해 단체교섭 훈련을 하기도 한단다.
부럽기도 하지만 그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가를 생각해 본다. 권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러한 권리가 소중하다는 사회적 가치가 존중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인 것 같다. 내 권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만으로는 어쩌면 현실에서는 매우 한계가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괜히 아는척 시시비비만 따지다가는 짤리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바나 취업을 할 때,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사업주가 알아서 내놓기 전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단다. 다만 근로 이행 중에 문제가 많으면 증거를 모아놨다가 지방노동청에 한꺼번에 진정을 하는 형식이다. 이것도 노동조합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개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저항이다.
노동인권이 교육과정에서 체계적으로 교육된다면 하고 상상을 해본다. 아마도 그렇다면 법적인 권리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말 그대로의 최저, 최소의 권리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권리가 왜 생겨났고, 각자의 이해관계만이 최선이고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관점과 태도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현장으로 갔을 때 노동조합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노동조합 조직률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18년부터는 아직 구체적인 안이 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수준으로라도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가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노동인권 교육에 대한 준비 정도는 높은 수준이 아니다. 전교조 내부에서도 몇 개의 지부에서는 노동인권 교재를 만들거나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관심과 준비 정도는 현실적 필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와 진보진영에서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 몇몇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교재나 강의력, 교육 내용의 통합력 등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노동자로 살아야할 청년들의 미래와 보다 사람다운 사회를 위해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은 보다 많은 관심과 실천이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