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와 페미니즘

  • 글쓴이: 지수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운동위원회)
  • 2016-12-05

  지난 5월 한 여성이 강남역근처 화장실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되었다. '여자가 무시해서'라는 범행동기가 이렇게 수많은 여성들에게 공포로 다가온 것은, 단지 한명의 정신질환자 때문이 아니라 그간 평범한 남자들에게서 같은 맥락의 공격성을 일상에서 겪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간 만연해있던 일련의 여성대상 혐오발언, 폭력사건과의 연계 속에 강남역살인사건이 있었다. 강남역살인사건을 통해 여성에 대한 조롱과 폭력은 ‘여성혐오’라는 언어로 사회화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기회가 남성의 56% 수준인 나라, OECD국가중 성별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여성평균임금 남성평균임금의 63%),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남성에 배해 5배이상 긴 나라, 3일에 한 번꼴로 애인에 의해 여성이 살해당하는 나라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는 언제나 있어왔던 소소한 것이었다. 여성혐오가 공기처럼 당연시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조롱받고, 공격받아 왔다.

  2005년 ‘개똥녀사건’은 한국사회 온라인 마녀사냥의 시초였다. 지하철에 탄 반려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여성을 촬영한 동영상은 여성혐오를 일반 여성에게 확대하는 시작이었다. 이후 명품백에 환호하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분수 모르는 여자, 남자등골 빼먹는 과소비와 사치 등의 전형으로 ‘된장녀’가 나타난다. 고가의 외제차, 전자제품, 명품시계 등을 소비하는 남성의 사례는 언급되지 않았고, 유독 여성에게만 이런 소비형태가 문제가 되었다. 이후 일베의 등장 속에 2년 전쯤 등장한 ‘김치녀’ 담론에서 한국의 여성혐오는 정점을 찍는다. ‘된장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검소하게 데이트 비용을 나눠 내는 ‘개념녀’가 되면 됐지만, ‘김치녀’는 한국 여성이라면 연령·계층을 불문하고 벗어날 도리가 없었다. 이러한 온라인 상에서의 여성혐오는 ‘실제로 비난받아 마땅한 여성들이 존재 한다’는 담론을 형성해 냈다.

  이러한 온라인상에서의 여성혐오는 이미 몸에 깊이 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작동한 결과다. 그렇기에 온라인상에서의 여성혐오는 사이버공간을 넘어서 현실에서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증가시키고, 제도적 차별을 당연스럽게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대학가에서 연이어 발생된 성희롱 단톡방 사건 (2월 국민대, 6월 고려대, 7월 서울대·경희대, 8월은 서강대, 9월 연세대)은 단지 일베라는 집단만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여성혐오가 일상 언어생활로까지 외연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남성의 삶에 대한 기초연구(Ⅱ)보고서’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된장녀, 김치녀, 김여사, 성괴, 삼일한 등의 여성비하 표현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묻는 설문에 남성응답자의 54.2%가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남성청소년의 경우, 66.7%가 여성비하 표현에 공감한다고 응답했고, 실제 여성의 36.6%가 김치녀일 것이라 추정하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사회적 위기의 책임을 사회적소수자인 여성에게 돌리는 정치의 내면엔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남성성의 위기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안정된 일자리를 파괴하고, 88만원세대, 3포세대 라는 젊은이의 표상을 만들었다. 분노의 화살은 권력을 향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자인 여성에게 향했다. 여성 혐오는 삶의 위험과 사회적 불안이 만들어내는 분노를 사적영역/여성들에게 쏟아 부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안전망’(엄혜진 2012)이었다.

 

그러나 실제 가부장적 성별 분업 속에 한국 여성의 연령별 노동시장 진출은 ‘엠자형 곡선’을 그린다. 30대 여성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뚜렷한 이탈은 출산・육아가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경력단절 이후 여성의 일자리는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로 채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별 권력 구조와 가부장제의 문제, 사회 구조적·역사적 차이는 고려되지 않았고, 군가산점제 폐지, 호주제의 폐지, 성폭력 특별법 제정, 성매매 특별법 제정, 각종 여성할당제, 생리휴가제, 부부강간죄 인정 등이 남성의 위기의식과 박탈감을 자극하는 주요 사례로 인식되면서 여성이 우대받는 사회에서 남성이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이 정당화되기에 이른다.

  지난 7~8월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메갈리아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여성들이 처했던 여성혐오와 폭력의 민낯이었다. ‘창녀’를 미러링한 '창놈'(성을 구매하는 남성), ‘김치녀’·‘된장녀’의 미러링인 '김치남', '한남충', 맘충의 미러링인 '애비충','허수애비','투명애비'(가사와 집안일에 무심한 아버지와 남편), 낙태녀의 미러링인 '싸튀충'(임신 시키고 도망가는 남성) 등의 표현이 등장했다.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돌려주는 그녀들의 공격적이고 거친 언어들을 통해 우리는 미러링의 원본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그간의 일상적 여성혐오가 얼마나 여성에게 공포였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미러링의 원본은 잊혀 졌고, 그녀들의 거친 언사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메갈리아를 여자일베로, 혐오세력으로 낙인찍고 마녀사냥에 돌입한 사이, 국가와 자본은 재빠르게 검열과 해고로써 드러난 여성들의 목소리를 지워나갔다. 메갈리안에 대한 지지냐 혐오냐의 이분법 속에서, 메갈리아에서 이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문제제기들까지 함께 지워져갔다.

  그러나 메갈리아로 촉발된 여러 논쟁 이후 여성들은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직접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 시작된 운동은 소라넷을 폐쇄시키고, 표지사진으로 문제가 된 맥심잡지 전량수거와 폐기를 이끌어냈다. 선정성논란의 중심에 섰던 게임 서든어택2는 결국 서비스를 중단했고,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범죄로 명명해냈다. 최근에는 숨겨져왔던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낙태죄폐지’를 위한 대중행동이 수차례 이어지고 있다. 그간 침묵했던 여성들이 자신의 임신중지 경험을 대중 앞에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자신의 몸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을 권리를 직접 주장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은 멀리있지 않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맞부딪혔던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인식하는 것, 이를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메갈리아 논쟁을 통해 확인된 것은 여성혐오 문제와 관련해서는 좌우의 인식의 차이와 대립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운동진영 내에서도 여성혐오는 ‘일베’들이나 하는 것이라 떠넘겨버림으로써 혐의를 벗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여성을 싫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동체 내에서 여성혐오, 성폭력, 불평등한 성별권력관계문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가에 있다.

  농담삼아 오가는 여성혐오 발언을 문제시하지 않고 넘겨버리는 분위기가 축적되어 여성에 대한 폭력을 낳고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일상의 여성혐오에 우리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해왔는지를 돌아보고, 어떤 의제와 실천을 통해 여성차별과 여성의 성적대상화,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에 맞서 싸워나갈지를 함께 고민하자. 그것이 만연해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낙인과 공격으로 왜곡된 방향타를 다시 제대로 세우는 길이며, 차별 없는 평등세상을 꿈꾸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자기노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