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데올로기와 노동의 미래

  • 글쓴이: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 2017-11-11

  로봇은 자본주의를 구원할 것인가?

  “지니야, 냉장고 안을 보여줘. 양파 2개 주문해 줘.” 인공지능 음성비서인 지니를 통해 사물 인터넷(IoT)으로 연결된 냉장고를 보여주면 부족한 양파를 주문한다. 지니는 인터넷에서 아마존의 식재료 주문 사이트에 접속해 주문하고 블록체인으로 보호되는 스마트 계좌를 통해 결제를 완료한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로봇인 키봇이 물류창고에서 양파를 꺼내오기도 전에 이미 빅데이터를 통해 해당 지역에 양파 주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물류창고에서 지역 배송센터에 양파를 보내두었다. 주문과 결제가 이뤄지자 아마존은 즉시 드론을 띄워 집 앞까지 배송한다. 음성비서 지니는 양파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양파를 받는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혁명…. 혁명이 난무하는 시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자율주행차가 날아다니고, 3D프린터로 건물을 짓고, 화성탐사까지 앞둔 지금, 이런 기술혁신이 경제의 생산성을 높일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다소 어리석은 일로 보인다. 생활이 급속도로 바뀌는 것 같고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바둑까지 접수하는 상황에서 경제의 생산성이 크게 둔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기 힘들다. 하지만 사실이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제의 생산성 증가세는 매우 둔화됐다. 노동 생산성 증가율은 OECD(경제협력기구) 평균으로 2008년 이전 30년 동안의 2%에서 금융위기 이후 0.75%로 감소했다. 또한 이 같은 둔화는 OECD 국가는 물론 전체 국가에 만연해 있다. 미국의 노동 생산성 증가율은 2008년 이전에는 평균 1.6%의 성장세를 보였는데, 금융위기 이후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한 유럽에서는 1.2%에서 0.3%로, 일본에서는 1.8%에서 0.4%로 감소했다.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은 생산성이 둔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기업들이 기록적인 이윤을 남기고 있고, 설령 현금이 없다 해도 지금과 같은 저금리에선 충분히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재투자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생산성 둔화는 기업 투자 축소가 주요한 원인 중에 하나인데, 기업이 투자를 줄이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금리도 낮은데,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생산성도 둔화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살고 있다.

 

  로봇경제, 자본주의의 종말

  4차 산업혁명 또는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무시하거나 아니면, 일부러 간과하는 것이 생산양식으로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영향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 장기불황과 장기침체 속에 있는 자본주의의 생산혁신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미증유의 생산성 혁신을 이뤄 자본주의의 생산성이 무한대로 발전하면 인간은 줄어든 일자리를 걱정할 게 아니라 로봇이 생산한 풍요를 누리고 여가를 즐기면 된다. 문자 그대로 유토피아다.

  하지만 이런 유토피아식 기대와는 달리 로봇이 생산하는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중단 또는 종말을 맞게 된다. 로봇 생산과 디지털 경제의 발전은 생산비를 낮추게 하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시켜 임금하락을 이끈다. 가격 하락->저임금 노동자 양성->실질임금 감소->가격 하락의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 만성적인 디플레이션, 저성장, 장기침체를 구조화 시킨다. 가령, 한국에서 인터넷 쇼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2013년부터 상품가격지수는 4년 연속 마이너스다. 실질임금도 하락하고 있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2013년부터 GDP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 역시 2012년 6.1%에서 2016년 0.6%로 급락했다.

  기술혁신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공황과 자본축적의 위기로 치닫는 이유도 이와 같다. 생산력의 상승은 아이러니 하게도 생산성 증가를 주기적으로 막는 이윤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인간 노동을 대체해 로봇을 도입한 기업의 생산성은 향상된다. 거기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아예 노동시장에서 빠져 나가면 노동투입량이 줄어 생산성은 향상된다. 하지만 이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저부가가치 기업 즉, 저임금 일자리로 몰려간다. 그러면 총 노동시간은 유지되고 저임금 일자리가 증가해 평균임금 수준이 하락한다. 기술혁신, 생산성 향상, 생산비 절감 등으로 상품가격도 낮아지지만 줄어든 임금의 상쇄효과로 상품이 더 많이 팔리지 않아 평균이윤율은 떨어지고 경제성장률은 늘어나지 않는다. 다만 로봇 대체가 가능한 고기능 고기술을 가진 독점 대기업과 생산성을 높여 일반 기업과의 이윤 격차는 더 벌어지고 독점은 더 심화한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고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 경제가 성장하기보다는 경기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이윤율도 하락한다. 로봇 대체와 고정자본 중심의 생산은 경제를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상태로 몰아넣기 때문인데, 생산의 자동화와 로봇화 및 인터넷-디지털 경제의 발전은 최근 장기침체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나아가 로봇이 소비재를 만들고, 그 로봇을 다른 로봇이 만들고, 원재료의 채취와 운송도 로봇으로 이루어진 생산체제 즉, 로봇 경제가 도래하면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을 언급하지 않아도 자동반복적인 생산과 경쟁에 따라 상품 가격은 생산원가에 수렴된다(마진이 없어진다). 낮아진 마진으로 자본간 경쟁은 더욱 격화하고 이에 따라 이윤율은 더 하락한다. 결국 이윤이 목적인 자본주의적 생산은 마진이 없어질 때까지 경쟁하다 중단된다.

 

  디지털 전환과 노동

  자본은 이윤을 남겨 확대재생산을 위해 자본축적을 진행해야 성장하기 때문에 돈이 남는다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으로 나눠주지 않는다. 과잉자본 상태에서 이윤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주주들에게 챙겨주기 위해 노력하며 과정에서 임금도 비용으로 보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로봇과 기계가 인간노동을 대신한다 하더라도 노동자와 이윤을 나누려고 하거나(나눌 돈도 없지만), 없는 돈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에게 나눠 줄 수도 없다. 즉, 로봇이 일하고 노동자, 인간은 그저 여가를 즐기면 되는 그런 날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아래에서 결코 오지 않는다. 오직 임금과 일자리는 (비용을 낮추기 위해) 로봇과 바닥으로의 경쟁을 가속할 뿐이다.

  기계대체의 한계는 기계의 도입비용이 노동비용 보다 낮을 때 이루어지므로, 로봇과 기계 가격이 노동비용 이하로 하락하면 일자리에 대한 기계 대체도 증가한다. 일자리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은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로 몰리게 되고 노동력 과잉으로 임금수준은 하락한다. 로봇 비용이 저임금 저숙련 일자리 비용 이하로 떨어지면 여기서 다시 로봇 대체가 이뤄진다. 그러면 더 낮은 저임금 일자리로 노동자들이 몰려 임금수준은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또한 경제위기의 확산 속도와 경쟁에 따라 더 아래쪽의 저임금-저숙련 노동을 대체하고, 점점 더 많은 과잉 노동력을 낳아 일자리와 임금수준의 하방압력을 증가시킨다. 아래로 쥐어짜면 계속 불거져 나오는 풍선처럼 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더 낮은 저임금 일자리를 로봇이 주기적으로 대체하게 된다.

  한편, 플랫폼 산업의 발달과 디지털 경제 확대에 따라 임시직 고용이 일반화된 산업의 형태가 출현하고 있다. 이른바 긱 경제(Gig Economy)다. 긱 경제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해 노동대중 가운데 일할 사람을 선별하거나 집단적으로 조금씩 나눠 일하는 형태의 크라우드(Crowd) 워크가 확산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군중노동이다. 이런 크라우드 워크는 클라우드 워커(Cloud Worker)와 클릭 워커(Click Worker)와 같이 임시직 고용형태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런 긱 경제는 활용 가능한 인력 풀을 확대함으로써 노동복지와 인건비를 낮추고자 하는 자본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우버, 에어비앤비, 태스크래빗 등과 같은 온라인 일자리 거래소는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일을 놓고 경쟁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임금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부분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전통적인 고용형태에서 노동자가 받는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이런 클라우드 워커나 클릭 워커는 임시직일 뿐 아니라 유연화 된 노동형태와 결합되어 있다. 정해진 노동시간도 없고, 정해진 사무실도 없이 마감일까지 작업량을 완수해야 한다. 이들은 하나의 기업에 정규적으로 고용될 수 없어 생계를 위해 여러 다른 기업의 프로젝트에 결합해 벌이를 충당한다. 더욱 극단적인 유연화 된 형태의 노동을 강제 받고 있는 셈이다.

  자본주의 발달에 따라 노동력은 1차 산업 -> 2차 산업 -> 3차 산업으로 이동했다. 미국의 1차 산업 종사자는 1~2% 수준이고, 제조업 등 2차 산업은 20%대다. 75%이상 3차 산업인 서비스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로봇화와 고정자본 중심의 생산에 따른 노동력 재배치는 이런 산업별 이동보다도 전 산업에서 거의 동일하게 노동을 공장, 사무실, 작업장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 로봇 대체와 산업재편, 경제위기에 따른 해고와 일자리 감축은 물론이고, 클라우드 워커와 같이 사무실에 나와서 일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동이 행해지고 있다. 거기에다 다양한 노동수단을 보유한 독립 자영업자 또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양산시켜 노동력을 재구조화는 동시에 탈공장화 하고 있다. 이를 3차 인클로저 운동이라 부를 수 있다.

  3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불안정 노동은 확산하지만 생산수단인 고정자본과 노동자의 결합이 과거와 달리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노동자층이 양산되고 있다. 고정자본인 생산수단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분리되거나 배제된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수단을 보유하고 생산과정에 나타나고 있다. 독립 자영업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우버는 우버 택시, 에어비앤비는 주택이나 대여 가능한 방(room) 등을 가지고 플랫폼에 참여하고 있다. 긱 경제에서도 클라우드 워커와 클릭 워커의 경우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기술이나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프리랜서 영역이 더욱 확장되면서 프리랜서 헝태의 노동도 늘어나고 있으며, 문화, 예술,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노동자도 독립 자영업이나 기타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3D프린터의 경우 이러한 노동수단의 보유를 촉진시킬 것이다.

 

  산업재편, 구조조정, 로봇대체...3개의 파도를 넘어야

  로봇 대체는 일반적인 시기보다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 왔다. 경제 위기 하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 하여 이윤을 상승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으로 로봇 대체를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산업용 로봇의 도입 속도가 증가했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과 로봇 대체는 경제위기 시 구조조정과 결합하여 더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노동의 로봇화, 기계 대체는 노동력의 가치 하락과 과잉 노동인구를 양산한다. 구조조정, 산업재편과 결합해 탈공장화를 촉진하고 노동유연화와 노동의 양극화를 확산한다. 디지털 전환에 따른 산업재편과 조만간 다시 도래 할 경제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의 파고까지 몰려오고 있다. 벌써부터 조선과 해운업 등은 불황의 여파를 노동에게 전가하며 살인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였고 자동차 등 다른 부문에서는 국내물량 축소와 해외 이전 시도가 더욱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양적완화 등으로 청산되지 못한 좀비기업들이 경제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2배 이상 확대된 점을 감안한다면, 다음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파괴적일지 짐작할 수 있다. 25년 뒤, 100년 뒤의 인공지능 보다 2년 뒤 혹은 5년 뒤 나타날 자본주의의 주기적 공황이 더 파괴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세계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후퇴와 신자유주의 대응에서 파편화된 노동진영의 대응이 무엇보다 아쉽고 또 급해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