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노동시간제, 조목조목 파헤쳐 보자

  • 글쓴이: 유상철 (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법무법인‘필’공인노무사)
  • 2019-05-14

 노동시간에 관한 사항은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에 명시되어 있다. 법정(法定)노동시간이란, 사업장에서 소정노동시간을 정할 경우의 법률상의 상한을 의미한다. 법정노동시간은 일(日) 주(週)마다의 상한 시간수이므로 모든 주(週)의 노동시간이 기준 노동시간 미만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기법이 제정된 1953년 1일 8시간, 1주 48시간의 원칙을 명시하였다. 1989년 1일 8시간, 1주 44시간으로 단축된 이후 2004년 1일, 1주 40시간으로 법정노동시간을 단축하였다. 다만, 당사자 간 동의가 있는 경우 1주 12시간 한도내에서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하여 노동할 수 있다.(주52시간 상한제)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기 위한 기준이다. 주40시간을 초과하여 노동을 한 경우 연장, 야간, 휴일노동에 대해 각각 0.5를 가산하여 지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탄력적 노동시간제는 일정 기간의 평균 노동시간을 법정노동시간(1주 40시간) 내로 맞춰서 운영할 수 있는 제도이다. 예를 들면, 현행 2주 단위 탄력적 노동시간제에서 첫째 주 45시간(9H×5일), 둘째 주에 35시간(7H×5일) 노동을 한 경우 주당 평균노동시간이 40시간이므로 첫째 주에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한 5시간에 대한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근기법에서 탄력적 노동시간제 운영이 가능한 ‘단위기간’은 취업규칙으로 정하여 실시할 수 있는 ‘2주 단위’, 노동자대표와 서면합의가 필요한 ‘1개월~3개월 단위’를 정하고 있다.

 현 정부는 2017년 이후 과로사회 탈출이라는 명목하에 OECD 내 최장시간 노동국가라는 멍에를 던져버리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을 사회적 화두로 던졌다. 2018. 7. 1.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이나 공공기관에 대해 주52시간 상한제를 위반한 경우 강력하게 처벌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도 도입을 감안하여 처벌 조항 적용을 유예하다가 2019. 4. 1.부터 주52시간 상한제 위반에 대해 시정기간을 두고 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노동부는 오는 5월부터 근로감독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렇듯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 “부칙 제3조(탄력 근로시간제 개선을 위한 준비행위) 고용노동부장관은 2022년 12월 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등 제도개선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개정법에 명시되었다. 2018. 7. 1. 정부 여당에서 탄력적 노동시간제 단위 기간을 1년까지 확대하겠다는 입장이 솔솔 풍겨져 나왔던 것을 보면 2019. 2. 19.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최대 6개월로 한다”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문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잠시 탄력적 노동시간제 도입 경과에 대해 살펴보자. 탄력적 노동시간제 도입은 1980. 12. 31. 개정 근기법 제42조 제2항에서 4주 단위로 도입되었다가 1987. 11. 28. 법 개정 때 삭제되었다. 당시 개정법은 1일 또는 1주 최장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가 없는 관계로 장시간 노동이 강제될 수 있고, 건강 장해와 업무상 재해 발생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노동계는 폐지를 주장하였고, 경영계는 노사 합의를 전제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절차가 엄격하고 특정주 또는 특정일의 법정노동시간을 상회하는 노동시간에 대하여 가산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해석되었기 때문에 사용자에게도 실익이 없어 제도를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9. 3. 22. 개정 근기법에서 주44시간제를 도입하였다. 경영계는 한 주는 40시간으로 다른 한 주는 48시간으로 소정노동시간을 운영하는 토요 격주 휴무제 도입을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시간에 대해 연장노동 가산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으로 인해 마찰이 빚어졌다. 이후 본격적으로 경영계를 중심으로 근기법의 노동시간 규제가 지나치고 노동시간 운용이 경직되어 있어 기업들이 산업구조나 노동형태의 변화와 시장 여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데 장애 요인이 되고, 국가경쟁력 제고의 걸림돌로 작용하므로 탄력적 노동시간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노동계에서는 96, 97년 총파업 투쟁 당시 정리해고제 뿐 아니라 변형노동시간제(탄력적 노동시간제, 선택적 노동시간제, 재량노동시간제, 간주노동시간제 등) 도입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결국 1997. 3. 13. 법 제정 때 2주 이내 및 1개월 이내의 탄력적 노동시간제가 다시 도입되었고, 2003. 9. 15. 개정에서 기준노동시간을 1주 40시간으로 단축하면서 단위 기간이 1개월 이내에서 3개월 이내로 확대되었다. 2019년 현재 탄력적 노동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3개월 이내에서 6개월 이내로 확대하는 것이 경사노위 노사정 합의문의 내용인 것이다. 이 합의문이 가이드라인이 되어 입법을 추진하는 국회에서는 경사노위 합의문 보다 탄력적 노동시간제를 더욱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처럼 노동시간 단축으로 시작된 논의가 결국 탄력적 노동시간제 확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진 것은 맞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노동시간 단축은 개악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이슈는 주로 장시간 노동을 단축하는데 집중하였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양질이 일자리 창출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 논의 과정에 노동자의 건강권과 삶의 질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행 2주 단위 탄력적 노동시간제는 취업규칙에 명시한 경우 시행이 가능하다. 2주간 이내의 일정한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 40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 특정 주에 48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지만 특정일 상한선은 없다. 특정주 최대 48시간 노동을 하고 12시간 연장을 통해 60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다. 3개월 단위 탄력적 노동시간제의 경우 근로자대표(과반수 이상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노동조합, 그렇지 않은 경우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와 서면합의(대상 노동자의 범위, 단위기간, 단위기간의 근로일과 그 근로일별 노동시간, 유효기간 등)를 해야 한다. 단위기간을 평균하여 1주에 40시간 이내여야 하며 특정주 52시간 이내 특정일에 12시간을 초과해서는 아니 된다. 특정주 최대 52시간 노동을 하고 12시간 연장을 통해 64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다.

 경사노위 합의문에 따라 6개월 단위 탄력적 노동시간제를 확대할 경우 6개월(26주) 동안 13주는 주64시간, 13주는 주 40시간씩 노동을 하는게 가능하다. 현재 정부의 과로사 판단 기준은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고 있다. 즉, 과로사회 탈출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추진과 탄력적 노동시간제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인 것이다. 탄력적 노동시간제가 확대될 경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장시간 노동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사노위 합의문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으로 우려되는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함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 아울러, 노사정은 노동자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정하고 있다.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 한 경우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때문에 표면적으로 과로 방지 대책을 언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탄력적 노동시간제가 확대될 경우 합법적으로 과로를 조장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노동자의 실질임금 삭감(탄력적 노동시간제는 초과노동에 대한 가산수당 미지급)이 발생할 수 있다. 경사노위 합의문에서 “사용자는 임금저하 방지를 위한 보전수당, 할증 등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하여 이를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태료를 부고한다. 다만,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하였다. 사용자가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경우 ‘과태료’ 처분에 불과하고,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한 경우 신고 의무를 예외로 한다는 내용을 볼 때, 입법 과정에서 과태료 부과 조항 마저 삭제될 우려가 있고, 서면합의로 도입된 경우 대부분 예외를 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로자대표’의 대표성에 관한 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의 건강권, 휴일․휴가 확대 휴식권 보장에 대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상황이 정책 방향과 역행하는 탄력적 노동시간제 확대로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것은 미조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있는 경우 탄력적 노동시간제 도입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서면합의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도입이 쉽지 않고, 만약 도입이 된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방지대책을 마련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적 신분상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에 속하는 경우 탄력적 노동시간제 확대에서 비롯된 각종 문제점이 그대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간, 주간, 월간 노동시간은 더욱 불규칙해지고 장시간 노동은 하지만 실질임금은 하락하여 저임금 노동이 상시화 될 수 있는 탄력적 노동시간제 확대 논의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노동시간 단축,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정책과 역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경사노위 합의문을 통해 촉발된 탄력적 노동시간제 확대 뿐만 아니라 노조법 개악안을 국회에서 발의하는 등 지금 노동법 개악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절대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더라도 노동 밀도를 높여 생산량을 보전하려는 자본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탄력적 노동시간제 확대를 통해 합법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상시화된다는 것은 자본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인 것이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대해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