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투쟁의 의미를 생각한다

  • 글쓴이: 이철의 철도노조 서울본부 교육국장
  • 2015-05-22

  1. 파업이란 무엇인가?

  파업이란 무엇인가? 모든 노동조합 교범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파업이란 노동력의 제공을 거부하여 생산을 정지시키고 사용자에게 타격을 가하는 전술”이다. 실제로 그런가? 그렇다. 모든 훌륭한 파업은 실제로 생산을 정지, 나아가 마비시킨다. 뿐만 아니라 생산물의 반출과 이동까지 막아서 그야말로 파업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투쟁을 벌인다.

  파업은 선배 노동자들이 피어린 투쟁으로 확인한 노동조합 최고의 전술이다. 그 결과 파업은 대한민국이라는 자본가 천국에서도 헌법에 명문화되어 보장하고 있다. 비록 정권과 자본의 마음에 들면 합법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법이 되는 현실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요즘 한국사회에서 강렬한 파업을 보기 힘들어졌다. 파업 그 자체만으로도 자본과 정권을 불안과 공포에 빠뜨리고 노동자들의 피를 끓게 하는 ‘고전적인 정통’ 파업투쟁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요즘 화제가 되었던 몇 가지 투쟁을 이야기해 보자. 2013년 12월 철도노조가 23일간 흔들리지 않는 파업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은 나름대로 박근혜 정권과 투쟁전선을 만들었으며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강력한 지지엄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철도파업이 23일간이나 지속되었던 것, 이것은 거꾸로 그만큼 위력이 떨어지는 파업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간 것이다. 만약 예전처럼 전체 열차를 마비시킬 정도로 강력한 파업을 벌였다면 진작에 승리했던가 강압적 탄압에 와해되었던가 하였을 것이다. 필수공익사업장에 적용된 이른바 “필수유지업무제도”가 이 철도파업을 지지부진하게 만든 주요인이다.

  이 제도를 만든 이들은 친 노동자적이라던 노무현 정권 때 사람들이다. 이 당의정은 “필수공익사업장에도 합법파업이 가능하다.”는 포장을 입혔다. 그대신 핵심요원들을 파업에서 배제하도록 하여 파괴력을 완전히 거세하였으니 정권과 자본에게는 참으로 슬기로운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불법을 각오하고, 그래서 탄압도 각오하고 전면파업을 벌이던 철도 노조의 전투성과 완강함마저 거세할 수 있었으니 일석삼조의 효과를 불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 노조들은 대개 공황기나 구조조정에 맞서 강력한 파업투쟁을 벌인다. 그러나 어쩌랴? 그 시기에는 자동차가 팔리지 않아 재고가 누적되어 있다. 자본가로서는 파업기간을 재고를 소진하고 조직을 재정비(군살을 빼는) 하는 시기로 삼으면 된다. 활황기에는 그럭저럭 임금을 지불하고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 된다. 한국사회 대부분의 대기업 노조들과 하청, 외주 노동자들이 이런 관계로 맺어져 있다.

  “노동자 투쟁이 꼭 시민사회, 더 나아가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얻어야 한다.”고 믿는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위력적인 파업을 피한다. 그래서 생산이나 운영에 필수적인 요원들을 파업에서 제외시킨다. 이러니 파업투쟁에서 유력한 보조전술로 쓰는 피켓팅이나 사업장 점거 등을 갈수록 보기 힘들게 된 것이다. 노동자 투쟁이 시민사회나 국민의 지지를 얻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파업의 본질인 생산과 유통의 마비라는 파괴력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다면 스스로 손발톱을 빼고 싸우는 맹수와 같다고 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모든 위력적인 파업은 반드시 탄압에 직면한다. 이런 사실은 대한민국 검찰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검사들에게 잡혀가 취조를 당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이들은 시시껄렁하고 별 걱정이 없는 파업은 그냥 둘까 말까 고민한다. 그러나 파업이 물의를 일으키고 커다란 사회문제로 비화하게 될 경우 회사, 경찰, 검찰, 법원, 노동부를 비롯한 정부기관들은 그 어떤 구실을 붙여서라도 트집을 잡고 탄압을 일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 파업에 경찰이 개입할까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판정하기는 매우 쉽다. 지도부가 비실비실 여론이나 살피고 파업위력을 되도록 줄이려 노력할 경우 참작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지도부가 순진해서 “뭐,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권이니까.”하고 파업권을 제대로 행사하면 십중팔구 법적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요즘에는 제대로 된 파업투쟁이 적은 대신 보조적인 전술이 주로 쓰이게 되었다. 고공농성, 단식, 삼보일배, 천막농성등은 파업투쟁 대신 노동자들이 할 수없이 선택하는 전술들이다. 도대체 왜 확실하고 간단한 파업투쟁을 두고 이런 고난에 찬 투쟁을 벌여야 하는가? 파업을 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것이다. 파업의 위력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파괴력이 적을수록 장기화되고, 승산이 적어지며, 고립된다.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은 대부분 이런 환경 속에서 고공으로 올라가고 삼보일배로 땅바닥에 엎드리며 목숨을 건 단식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2.파업의 종류를 살펴보자.

  <경제파업과 정치파업>

  한국사회는 워낙 노동자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이므로 경제파업과 정치파업의 구분이 무의미할 때가 많다. 처음에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하여 파업을 벌인다 해도 고소고발, 가처분신청, 손배가압류, 연행, 구속, 해고가 줄줄이 이어지게 된다. 그럼 노동자들은 싫어도 정치적 요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탄압 철회하라. 구속노동자 석방하라는 요구가 이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조의 이야기이고 애써 정치파업을 회피하는 집단이 있으니 한국노총 산하의 노조들이 그렇고, 일부 기회주의적인 처신을 하는 노조들이 그렇다.

  민주노총은 2015년에 박근혜 정권에 맞서 강력한 총파업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당연히 정치 총파업이다. 그런데 투쟁을 기획하고 이끌어 나가는데 어려움이 많다. 과연 기대한 만큼 폭발력을 보일 것인가? 무엇을 계기로 하여 노동자들의 분노와 잠재력을 한꺼번에 분출시킬 수 있을 것인가? 96,97총파업은 야당도 몰래 새벽에 날치기한 정권과 여당이 준 훌륭한 계기가 있었다. 파업투쟁의 목적과 전술운용은 또 다른 면이 있으므로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계기를 어떻게 만들고 잡아채느냐 하는 것은 지도부의 판단과 능력이다. 과거 경험을 예로 들면 94년 철도파업때 당시 지도부는 공세적인 파업을 기획하였다. 6월 27일 철도,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이 한날 한시에 파업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또한 전국노동조합 대표자회의 공동임투에 참여하여 수십개 노조가 시기집중 파업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당시 지도부는 철도파업이 불법파업이고 정권탄압에 노출되어 있음을 직시하고 일부러 “얻어맞고 들어가는” 이른바 고육지계를 쓸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정권과 사측의 심기를 계속 거스른 결과 파업 4일이나 앞둔 6월 23일 전격적인 경찰투입을 맞이하게 되었다. 철도 노동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게 되었으며 파업은 위력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처럼 투쟁에는 명분과 계기가 중요한 것이다.

 

  <동정파업과 동맹파업>

  동정파업은 다른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하여 벌이는 파업을 일컫는다. 예를 들자면 1929년 석유공장의 노동자 탄압으로 촉발한 원산노련 총파업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2001년 ‘세원테크 노동조합’ 탄압에 맞선 충남지역 노조들의 지역 총파업등 훌륭한 사례들이 많다. 2002년 발전노조의 38일 파업에 총파업으로 엄호하고자 했던 민주노총 파업투쟁 계획도 일종의 동정파업이라 할 것이다.

  동맹파업은 노동자들이 일정한 경제적,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하여 사전에 약속하고 결행하는 파업 대표적인 예로 85년 ‘대우어패럴’ 노조탄압에 맞선 구로동맹파업을 들 수 있다. 노동자 파업투쟁으로는 질적으로 매우 높은 단계의 파업이라 할 수 있다.

  <합법파업과 들고양이 파업>

  한국사회에서도 합법파업이 성행하고 있다. 노사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파업회피노력을 하며, 냉각기간도 가진 뒤에 불법시위등 일체의 불법 행위를 하지 않으며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파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여론에 파업의 정당성, 불편함을 끼치는데 대한 사과 이런 것을 통해 지지를 받으려 노력한다. 사실상 합법파업이 불가능한 필수공익사업장도 법을 지키려 노력한다. 철도노조는 최근 2013년 파업에서 일부무죄판결을 받았는데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는 파업을 벌였다는 것”이다.

  들고양이 파업은 법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 노동조합의 대표성 따위는 관계없이 파업할 수 있는 조직이나 단위가 마음대로 파업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두차례의 들고양이 파업 경험이 있는데 한번은 1988년 기관사 파업이고, 또 한번은 1994년 전국기관차협의회 파업이다. 당시 노동조합은 파업을 심하게 비난하며 심지어 경찰에 고소고발까지 하였다. 정권과 철도청은 예상치 못한 파업에 커다란 타격을 입고 비틀거렸다. 법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하는 파업이므로 당연히 파괴력이 크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시기에는 이와같은 들고양이 파업이 성행해서 “선파업, 후노조설립”이 공식처럼 된 일이 있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어졌다. 서구에서는 노동조합이 대부분 산업별노조이므로 기업별, 공장별 조직이 파업하기가 매우 힘이 든다고 한다. 기업별, 공장별 파업을 하더라도 산별노조의 승인을 받고 하니 마찬가지로 들고양이 파업 구경하기가 힘들 것이다.

 

  <연대파업과 시기집중 파업>

  연대파업은: 동맹파업과 비슷하나 약간 느슨한 의미가 있다. 동맹파업이 시작과 끝을 같이한다는 의미가 강한 한편, 연대파업은 타결을 각각 달리하는 것을 용인한다.시기집중 파업은 임단투에서 지역,업종을 불문하고 파괴력을 키우기 위해 한국에서 흔히 구사하던 파업전술이다.

 

  <부분파업, 경고파업, 시한부 파업, 파상파업, 전면파업,무기한 파업, 총파업>

  부분파업은 일부의 부서, 사업장, 공장등만 파업토록 하는 파업전술을 말한다.

  경고파업은 전면파업에 앞서 조직력을 시험하고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 구사한다.

  전면파업은 노동조합 전 조합원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파업전술을 말함이다.

  시한부파업은 미리 종료시점을 정해두고 벌이는 파업이다.

  파상파업은 시한부로 파업을 되풀이하거나 부분파업을 이어가는 전술

  무기한파업은 파업기간을 정하지 않고 들어가는 파업

  총파업은 산업별, 지역별, 혹은 전국적으로 가능한 모든 노동조합이 일시에 벌이는 파업(46년 전평 총파업, 96-97 민주노총 총파업등)

  필자의 시각으로 96-97총파업 이후에 벌어진 민주노총의 이른바 총파업들은 모두 시한부파업으로 총파업이라 할 수 없다.

 

  <농성파업, 출퇴근 파업>

  농성파업은 사업장이나 특정장소를 점거하며 벌이는 파업

  출퇴근 파업은 비용등 여러 사정으로 집에서 출퇴근하며 벌이는 파업

 

 

  3. 한국사회에서 파업투쟁의 특징을 살펴보자.

  1) 파괴력이 클수록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 강해진다.

  한국사회에서 정권이 마음먹으면 합법파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헌법이나 노동관계법은 그저 장식물에 불과할 뿐 노동자 투쟁은 모두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일종의 공안사건이다. 파업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투쟁을 어디에서 담당하는가? 검찰 공안부에서 맡고 있다. 정권과 자본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어떻게 보는지 상징하는 것이다.

  정권, 언론, 사법, 검찰, 경찰등 탄압이 입체적이다. 모든 탄압의 처음과 끝은 정권이 담당한다. 그래서 중요한 투쟁일수록 관계기관합동회의가 탄압을 기획한다. 언론은 당연히 파업에 부정적이다. 시민사회도 파업투쟁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왜? 여론이 안 좋다는 것이다. 그럼 여론이 왜 안 좋은 건데? 언론과 시민사회가 부정적이니까 안 좋은 것이다. 결국 “아저씨는 왜 술을 먹는 거냐”고 어린 왕자가 묻자 “술먹는 게 부끄러워서 마신다.”는 술꾼 격이 된다.

  자유주의 야당과 시민단체는 파업투쟁에 기회주의적이다. 그것도 정권을 잡았을 때는 표변한다. 정통야당인 민주당은 김대중 정권때 정리해고제를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 파견제, 변형근로제를 도입하여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에 주춧돌을 깔았다.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대우자동차 정리해고를 보면 이 정권의 본질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노조활동 타임오프제를 도입하여 노조활동을 크게 약화시켰다.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는 필수유지업무제도를 도입하여 파업권을 무력화시켰다. 요즘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 시민단체의 눈치를 본다.

  한국사회는 비정규직의 파업에 대하여 특히 탄압이 가혹하다. 왜 그럴까? 한국사회 자본가들의 자본축적의 유력한 호구인 비정규직을 유지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통해 정규직 노동자들을 순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차피 구조조정이나 정년으로 급속하게 줄어든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정권과 자본은 더 가혹하게 탄압하게 되는데 한편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률이 현저히 낮다는 것, 그래서 이들의 파업이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이 원인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화물연대가 법적으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사실상 인정을 받고 정부와 교섭을 벌이는 것은 역시 파괴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2)파업투쟁의 위력과 시민사회 지지의 상관관계

  요즘은 파업투쟁에서 파괴력을 발휘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사업장 노동자들이 여러 단위로 분할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정규직, 기간제 비정규직, 1차, 2차, 3차 외주등으로 분할되어 있다. 이러니 파업이 위력을 발휘하기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조선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파업해도 일이 다 돌아가요. 우리는 이제 파업하기 힘들어요.” 하는 한탄을 벌써 십여년 전에 들은 바 있다. 파업지도부나 조합원의 의식변화도 파괴력 약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파업에 대하여 시민사회가 부정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노동조합 지도부는 파업전에 미리 사과하는 광고를 내기도 한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는 식이다. 이러면 파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자부심이나 결기를 가지기 어렵다.

  경남도와 의회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결정했을 때 여론은 압도적인 반대를 보였다. 심지어 새누리당이나 복지부조차 폐업을 반대할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진주의료원 노조나 보건의료노조는 계속 여론에 호소하는 전술로 일관했다. 여론이 충분히 좋은데도 여론만 찾으니 파업투쟁은 실종되고 저지력도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그렇게 여론이 좋았다면 과감하게 산별 동정파업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한국 산별노조가 기업별 연맹이나 잘해야 연합체같은 성격이라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에 동정파업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산별노조 건설의 의미는 반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시민사회 여론이라는 것도 기회주의적이기 짝이 없다. 96-97파업은 정권과 여당의 날치기라는 헛발질도 있었지만 파업이 위력적이었기 때문에 여론이 지지로 돌아섰다. 파업이 충분히 위력적이고 쉽게 끝나지 않을 태세라면 여론은 시간에 따라 부정-중립-지지로 돌아서게 마련이다. 2013년 철도파업의 경우에도 여론은 처음부터 중립적이었다가 나중에는 교섭을 통해 대화하라고 계속 촉구하는 정도였다. 23일이라는 기간동안 파업이 완강하게 지속되었기 때문에 비롯한 일이다.

 

  4.노동자 대투쟁이 폭발할 날은 언제일까?

  언제부터인지 노동자들의 총궐기가 촛불시위 위력보다 못하게 되었다. 미국소 수입으로 인한 광우병 촛불시위는 물론이고 웬만한 촛불시위보다 공감과 위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서글픈 일이다. 생산과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투쟁이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는가? 시민사회로부터 노동조합은 늘 훈계를 들어야 하는 한심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연대하자고, 지원해 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동자의 무기는 여전히 파업투쟁이 아닌가? 노동자들은 주로 파업투쟁으로 발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파업은 당연히 사업장 파업이면 사업장을, 지역총파업이면 지역을, 산별총파업이면 산별을, 말 그대로 제네스트로 일컫는 총파업이라는 나라를 마비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투쟁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소수로 파편화되어 고공으로, 삼보일배로, 단식으로,농성으로 기약없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야 할 조건은 차고 넘치는데도 그렇다. 87년 대투쟁과 같은, 96-97 총파업과 같은 위력적인 노동자 투쟁이 올해 성사되도록 우리 모두는 각자의 현장에서 투쟁을 제약하는 모든 요소들과 쉬지않고 투쟁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