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괴담: 언더독의 반란?

  • 글쓴이: 원영수 (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
  • 2016-08-29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6월 23일 영국 국민투표는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탈퇴파도 잔류파도 예상치 못했다. EU와 주요 정부, 국제 주류언론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모든 여론조사 기관들도 체면을 구겼다!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가 사임하고 테레사 메이가 제2의 마가렛 대처를 자처하며 나섰다. 노동당에선 절대다수의 의원단이 제러미 코빈 불신임안(180표 대 40표)에 동의하면서 블레어파의 반란이 터져 나오면서 전면적 내전에 돌입했다.

  유럽연합측은 브렉시트의 신속한 집행을 요구하면서 영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인한 혼란의 최소화와 확산 방지를 위해서다. 그러나 테레사 메이 정부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충격 속에 헤매고 있고, 탈퇴파 역시 예상치 못한 승리에 당황했다. “총알 한방 쏘지 않고 주권을 되찾았다!”고 환호하며 “영국 독립”을 선포한 나이젤 파라지(영국 독립당)든, 보수당 경선에서 발을 뺏다가 외무장관으로 돌아온 전 런던시장 보리스 존슨이든, 탈퇴파에게는 애당초 브렉시트 이후는 없었다!

 

 [6월 23일 유럽연합 국민투표 결과]

 

득표

%

유럽연합 탈퇴

17,410,742

51.89

유럽연합 잔류

16,141,241

48.11

총투표수

33,577,342

100.00

등록 유권자 및 투표율

46,501,241

72.2%

 

  누가 브렉시트에 투표했는가?

  51.89% 대 48.11%. 주요 영국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브렉시트 지지는 저학력, 저소득, 중소도시, 농촌, 노동계급, 백인, 남성 층에서 우세한 반면, 고학력, 고소득, 대도시, 중산층, 다민족 층에서 잔류가 우세했다. 출구조사의 예측마저 틀린 마당에, 이런 여론조사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의문이지만, 한마디로 현재 상태(status quo)에 누적된 불만을 가진 노동계급과 빈민층이 브렉시트에 찬성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성권력(the Establishment)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거부였다.

  브리메인(Brimain) 잔류파는 제국금융의 중심(The City)인 런던과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잉글랜드와 웨일스 전역에서 브렉시트에 패배했다. 가히 런던으로 상징되는 기성권력과 부의 중심에 대한 언더독의 반란이다. 마가렛 대처의 보수당 정권과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권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루저(loser)인 노동계급과 빈곤층의 반란이었다.

 

  무엇에 대한 반란인가?

  영국인의 51.89%가 유럽연합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이 반대한 것이 신자유주의적 긴축의 유럽연합일까? 잔류를 선택한 상당수도 유럽연합이나 신자유주의적 긴축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따라서 탈퇴 여부에 관계없이 소수 기득권 세력을 제외한 다수의 영국인이 유럽연합과 신자유주의적 긴축에 대해 비판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주류 제도언론과 보수 정치세력이 감추고 싶어하는 브렉시트의 진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자유주의적 긴축은 브렉시트 논쟁의 핵심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조에서 영국좌파 일부에서 좌파적 브렉시트(Lexit)를 주장했지만, 이들의 주장은 사실상 논쟁의 외부에 밀려나 있었다. 이들이 소망하는 사회주의적 브렉시트는 실현가능성 없는 주관적 소망일 뿐이며, 문제의 핵심은 딴 곳에 있었다.

 

  이른바 이민자 문제

  캠페인 기간 동안 유럽연합을 둘러싼 많은 의제와 쟁점들이 제기된 양측의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EU의 모든 문제점이 까발려지고, 특히 관료주의와 비민주성이 공격받으면서 브렉시트는 민주주의와 주권을 위한 투쟁으로 포장되기 시작했다. 탈퇴파의 비판은 대부분 정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브렉시트의 승리를 가져온 것은 난민/이민과 외국인 혐오 문제였다. 브뤼셀의 유럽연합과 기성권력에 대한 비판은 현실적으로 눈앞의 이민자에 대한 비난과 분노로 표출됐다. 어쩌면 6월초 이민자 문제가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브렉시트의 운명은 결정됐는지 모른다.

  탈퇴파의 악의적인 데마고그(자극적인 변설·문장에 의해서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선동가)는 제국의 전쟁범죄와 세계화가 낳은 난민/이민문제를 갈수록 부실해지는 지역사회의 삶의 문제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고, 언더독의 불만과 분노는 거침없이 폭발했다. 이 거대한 분노 앞에 노동당 조 콕스 의원의 충격적 피살사건은 조용히 묻혔고, 이민자에 대한 조 콕스 의원의 사랑과 연대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반란의 정치적 함의

  브렉시트는 그 자체로 기성체제에 대한 반란이었다. 한편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광기에 닿아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2015년 9월 노동당의 반란과도 닿아 있다. 브렉시트 캠페인 세력 자체가 극우적 영국독립당(UKIP)과 민족주의적 보수당 우파에서 좌파적 탈퇴를 주장한 극좌적 트로츠키주의 소정파(?)까지 포함했다는 사실과도 맥이 닿아 있다.

  노동당 지도부는 EU 잔류와 내부로부터의 개혁 기조로 대응했지만, 브렉시트의 광기(?)어린 분노와 불만 앞에서 무기력했다. 패배 이후 노동당 우파는 이 점을 악용해 전면적 반란에 돌입했고, 탈당과 분당을 불사한 내전에서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온갖 편법과 꼼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세운 스미스 오웬이 제러미 코빈에게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65대35로 코빈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지금까지 EU 관련 국민투표는 대부분 실패했고, 이번 브렉시트는 또 하나의 추가 사례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됐기 때문에 그 충격은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를 향하고 있다. EU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면에 가려진 반신자유주의를 전면화시켜 신자유주의적 긴축에 대한 대안이 물질화되지 못하는 한, 그 도전은 주로 극우파가 주도하는 외국인혐오 파시즘/포퓰리즘적 저항의 형태를 취할 것이다.

 

  잘못된 질문과 절반의 정답

  데이비드 캐머론은 영국 역사상 가장 멍청한 선택을 한 총리로 기억될 것이다. 2015년 5월 총선의 승리에 도취돼 약속한 불필요한 깜짝쇼에서 자신이 희생된 것이다. 영국이 처한 문제의 해결은 EU 내의 개혁과 EU 탈퇴와 외부로부터의 혁신, 두 가지 모두 이론상 가능한 경로다. 전자는 편안한 선택이고, 후자는 괴로운 선택이다. 현재로선 둘 다 실현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브렉시트 선거운동 과정은 한마디로 진실은 실종된 채 거짓정보와 협박이 난무하는 최악의 사기극이었다. 사실상 정답이 없는 선택에서 영국의 언더독과 루저들은 누적된 불만을 기성 체제에 대한 거부로 표현하는 나름의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트로이카 앞의 굴욕에도 불구하고 배제한 그렉시트와 같은 긴박함은 없는 선택이었다.

  어쨌든 영국의 브렉시트는 되돌릴 수 없도록 결정됐고, 예상되는 브렉시트의 미래는 신고립주의와 신자유주의, 인종주의의 기묘한 결합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잔류를 원하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독립추진으로 더욱 복잡해질 영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연합 전체를 뒤흔들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긴축 이외의 대안이 없는 한, 유럽연합은 항상적인 체제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