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 투쟁은 계속된다!

  • 글쓴이: 김승하 (전국철도노동조합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
  • 2017-11-11

  KTX승무원 문제에 대한 악플 중에 대부분은 “자회사 비정규직인 것 모르고 들어갔나? 떼쓰면 공사 정규직 되는 줄 아는가?” 이다. 이 노예근성에 찌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렇다. 알고 들어갔다.”이다. KTX승무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갔더니 홍익회라는 회사 소속이더라. 하지만 KTX가 국가 것인 것을 알았고 KTX에서 일하는 사람은 공무원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회사라는 형식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KTX승무원으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고,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다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자회사라는 단어가 나쁜 것인가? 좋은 자회사가 있을 수 있고 나쁜 자회사가 있을 수 있다. 모회사보다 돈 더 잘 벌고 잘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철도공사의 자회사는 달랐다. 철도공사 퇴직자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자회사. 중간착취 역할만 하는 자회사, 사장 마음대로 책임의식 없이 운영해도 되는 자회사다. 스스로 수익도 못내는, 운영도 제대로 못해 모회사가 다 챙겨주고 수익만 챙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자회사다.

  처음 입사했던 홍익회라는 자회사 그리고 지금 KTX승무원이 속해있는 코레일 관광개발이라는 자회사도 그런 자회사다. 개통전날까지 승무원의 스케줄정리가 안돼서 다음날 몇 시에 출근을 해야 하는 지도 정해주지 못한 회사. 모든 일을 철도공사와 소통해야만 일처리가 되는 회사.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같은 열차 안에서 일하는 승무원을 2개의 회사로 나누기 위해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은 안전업무, 자회사 소속 승무원은 서비스 업무라 억지로 구분하는 논리를 펴면서 승무원을 안전업무에 제외시켜버린 것이다.

  법리적 상황도 아이러니하게 변해버린 것은, 2014년 세월호 사건이후 안전문제에 관심이 높아져 철도안전법이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열차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아서 생긴 피해에 대해서 3년 이하의 징역과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안전담당은 아니지만 안전업무를 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이 모든 불합리와 비상식을 사회초년생이었던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학교 밖을 벗어나면 사회가 얼마나 험한지 알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라가, 국가기관이 비상식과 비논리로 운영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투쟁을 시작할 이유가 없었다. 학창시절 등록금 투쟁한번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좋았을 리도 없고 다들 겁 많은 사회초년생들이었다. 상사의 눈치를 보고, 월급에 대해 불만만 많지 한마디 하지 못하고, 우리 처우에 대해 속으로 삭히기만 했지 노동조합을 통해 해결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가 어쩌다 12년째 투쟁하는 비정규직의 꽃이 되었을까.

  참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홍익회가 작작 해먹었다면, 그렇게 악랄하게 승무원들을 대우하지만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냥 그렇게 순응하면서 약간의 불만만을 품고 일했을 것이다. 지금의 코레일 관광개발에서도, 10년째 같은 임금, 성폭행과 성희롱, 수많은 비리문제 없이, 정도껏 해먹었다면, 12년만의 파업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벌어진 일이고, 우리는 그 오랜 세월 이 자리에서 KTX승무원은 코레일에 직접고용 되어야 한다고 외쳐왔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투쟁들 하나하나 주워섬기기도 지겨울 만큼 오랜 시간을 싸웠다. 지금도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치열하게 싸웠던 옛날 동영상을 보면 눈물이 흐른다.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라 처음에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KTX문제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끝난 뒤에나 가능한 일인 것인지, 전혀 괜찮아 지지 않는다. 아니 만약 KTX승무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어쩌면 그때의 기억은 여전히 아픔으로 남을지 모르겠다.

  처음 전투경찰과 부딪혔을 때의 공포, 서러움에 울부짖던 비명, 무섭게 들리던 경찰헬기의 프로펠러 소리, 두려움을 이기려 동료들과 팔짱을 꼭 끼고 불렀던 투쟁가...

  어쩌면 지금까지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에는, 이런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서로 이외에 세상 어디에도 없기에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이 한 몫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정권이 변하고 세상이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그 변화의 기운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흔들리며 이 자리에 서있다. KTX승무원은 코레일에 직접고용 되어야 한다! 외치면서... 이제 다시 북풍이 분다. 살얼음판을 걷는 이 기분을 언제까지 견뎌야 할지 모르지만, 다음 꽃피는 기운이 올 때엔 비정규직의 꽃이 아닌 우리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