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의 부활인가, 재현인가
배성인 / 한신대, 운영위원
박근혜 정권의 등장을 놓고 성격 규정에 대한 논쟁이 유신체제의 부활 또는 재현 대 부르주아 민주주의 구도로 전개되어 왔다. 그것은 박근혜의 통치기조가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인 박정희의 통치방식에 영향력을 받았으며, 박정희 시대 국가철학과 인물들이 부활하는 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그 결과 박근혜의 인사정책, 업무스타일, 권력의 1인 집중, 청와대의 친정체제 구축, 기술관료 등용, 성장 중시 정책, 아버지 사람 전면배치 등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박정희 정권 시절의 담론과 구호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19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연상케 하는 ‘제2의 새마을운동’, ‘제2의 한강의 기적’ 등이 공개적으로 언급됐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과오조차도 성과로 만들려는 왜곡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적대의 정치’, ‘공포의 정치’, ‘증오의 정치’를 지속하면서 헌법과 인권을 유린하고 노동자 민중에 대한 탄압을 강도 높게 구사해 왔다. 물론 유신체제가 박정희 1인의 죽음을 통해 체제와 제도가 붕괴된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만, 유신시대의 사람들과 문화가 지속되어 왔고 그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에 유신체제의 부활보다는 재현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유신에 대한 기억의 정치가 명료하게 작동해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박정희의 유신과 다른 점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불완전하게나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과 원칙’을 내세운 21세기형 ‘박근혜식 파시즘(?)’과 정치적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체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슬라보예 지젝(1)이 한국의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혼생활이 끝났다는 식상한 발언이 새삼스럽지 않다. 언제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에 대해 친화력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이러한 행태의 근원적인 힘은 근래에 보기 드물게 보수 세력과 국가기구가 강력하게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내각, 군, 국정원, 경찰, 검찰 등이 알아서 충성하거나 눈치 보거나 협력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강고한 동맹연합체를 만들어서 진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권력 장악과 동시에 헤게모니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의 독점적인 프레임 속으로 시민사회를 흡수하는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박근혜 정권의 역량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매우 절박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며, 그 저변에는 안보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군사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획득한 박정희의 딸로서 대통령이 된 박근혜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안보’이다.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의 철학, 사상, 가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고 정당화만 된다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묻지도 않을 것처럼 보인다.
분단의 현실 앞에 안보는 보수 세력의 득세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이 매우 취약한 박정희 정권과 후계 체제인 박근혜 정권을 지켜주는 유일한 도구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드러난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을 시작으로 NLL문제와 이석기 사태를 거쳐 역사교과서 문제와 전교조의 법외노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안보이데올로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했고 확인하지 않았는가?
이들 지배세력은 그 동안 이승만과 박정희를 자신들의 절대적인 우상으로 내세워 친일 부역과 친미적인 행태를 감추기 위해 독재 권력을 미화하고 적극 협력하였다. 게다가 일반 대중에게도 경쟁과 차별을 통해 성공신화를 내면화시키면서 자신들의 과거 역사를 교묘하게 감추었다.
그래서 박근혜가 대통령 선거 당시 내세운 주요 슬로건 중 하나가 ‘안전한 대한민국 국민행복의 시작입니다’이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안전사회 논리가 단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등 4대악으로부터의 해방은 국민이 행복한 시대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첩경이다. 이는 일반 대중들이 가장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회 문제로서 대통령 선거의 공약으로서는 가장 평범하면서도 임팩트가 있기 때문에 쉽게 동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안전사회는 비단 4대악뿐만 아니라 질병, 재난, 치안 등 전 영역에 걸쳐 있는데, 그 정점이 바로 현 정부의 주적인 북으로부터의 안보가 진정한 안전사회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사회는 과연 북으로부터의 안보가 확보되어야만 안전사회가 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 내 계급갈등이나 차별에 의한 불안전한 요소는 없는 것인지, 그리고 안보의 주체는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안보가 단순한 억압의 논리라면 그 사회는 해체될 수밖에 없지만, 박정희 체제 방식으로 성장·발전·개발 이데올로기와 결합이 된다면 국가에 의해 시민사회가 통제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자율성을 회복하는 데 너무나 커다란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12월 22일 민주노총을 침탈한 후 다음 날 23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는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라고 일갈(?)하였다. 바로 그것이다. 당장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운동해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박근혜 정권에게 대화, 타협은 낭만적이고 사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조급하게 굴지마라. 대중은 항상 모순적이면서 가변적인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청와대로 돌진하듯 찾아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혁명의 순간은 대중의 비판정신과 소통이 성숙된 후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대중들을 움직일 사회적 언어를 가지고 일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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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라보예 지젝(1949. 3. 21) 은 유고 출생의 철학자이자 헤겔, 마르크스, 자크 라캉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비판이론가이다. 지제크라고도 불린다. 그는 정치이론, 영화이론, 이론정신분석학에 공헌을 해왔다. 지젝은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학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또한 유럽 대학원(영어: European Graduate School)의 교수이다. 또한 시카고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런던협회, 프린스턴 대학교, 뉴욕 대학교, 뉴스쿨, 미네소타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그리고 런던 대학교 버벡에 교환 교수로 재직했으며, 류블랴나에 있는 이론정신분석학회의 의장이다. 지젝은 대중문화에서 온 예시들을 라캉의 이론과 라캉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철학과 마르크스의 경제비판이론으로 사회현상을 해석한다. 그는 주체,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근본주의, 인종주의, 똘레랑스, 다문화주의, 인권, 생태학, 세계화, 이라크전, 혁명, 이상주의, 전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대중문화, 오페라, 영화, 정치이론과 종교를 포함한 많은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다.(편집자주, 위키백과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