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글 - 시 "풍기문란 죄"

  • 글쓴이: 노동자교육센터
  • 2014-02-04

풍기문란죄

 

하태성 / 한국가스공사

 

해떨어진 으슥한 곳 남녀가 포옹하면 풍기문란이란다

미풍양속을 헤치는 경범죄에 해당한단다

 

그러면 난 풍기문란 1급 범죄자다

광화문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이에

동성연애 하듯 사람들을 껴안고 입술을 대고 비벼댔으니

아침을 굶는 노동자들을 껴안고 악수하고 입을 맞췄으니

수많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고

그들이 아프고 다칠 때마다 마음 조려 왔으니

그들이 머리를 깎을 때마다

그들이 밥을 굶을 때마다

혀가 갈라지는 아픔을 느꼈으니

상사병중 상사병이고 풍기문란중 상풍기문란이다

그들이 정규직을 쟁취하기 위해 철탑 위에 오를 때도

정리해고철회를 위해 굴삭기에 오를 때도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고 온몸에 사슬을 묶을 때도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조려 왔으니

평화와 평등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그런 날 밤이면 흠뻑 취해 쓰러지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수음하는 밤이었으니

나는 풍기문란 1급 범죄자다

 

나의 죄를 물으려거든

저기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들을

저기 온몸을 뒤척이며 일렁이는 파도를

불러놓고 물어봐야지

사랑이 무엇이냐고

지금까지 나의 죄는 판결되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범죄 넘어 강력범 수준이다

수많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으니

광장에서 수많은 여성동지들을 안았고

키스했고 사랑했고 심지어는 함께 밤을 새웠다

한 이불 속에서 별을 헤기도 했고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