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를 위해 ‘생명’을 걸어야만 하는 현장
- 안전보건 교육이 중요한 이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손진우
사고 소식만 들려와도 가슴이 철렁하는 요즘. 지난주 저녁시간에 카카오톡이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대전지역의 모사업장에서 작업과정에서 원료 투입 배관이 터져 노동자 한명이 2도 화상을 입었고, 한쪽 눈의 망막이 녹아내렸다는 사고 소식……. 카톡을 보낸 동지는 해당현장의 상급노조 간부로 다급하게 안과병원을 찾는다는 도움요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업장은 작년부터 명절 상여금과 임금체불 문제 등으로 노사 간의 마찰이 있어왔고, 결국 사측이 폐업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으며 노동자들의 자진퇴사를 종용하던 곳으로, 최근에 노조활동이 많이 위축됐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사업장입니다. 몇 년 전 ‘반도체 산업의 유해위험성’을 주제로 안전보건교육을 진행한 작은 인연이 있던 현장이라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해당 사업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역의 안전보건활동가들과 월1회 정기회의와 역량강화 교육을 진행 중인데, 이번 사고에 대한 지역차원의 긴급 대응계획 논의와 사고 현장 안전점검을 진행하기 위해 그 현장이 회의장소가 된 터이지요.
1시간여 회의를 진행한 후 참가자들이 함께 사고 현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할 말을 잃었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이렇게 현장을 방치하고 있었을까?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그 시간, 그 장소에 함께 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사고 당일 현장의 상태>
<화학물질이 누출된 배관, 한눈에도 부식 상태 등을 알 수 있다.>
작업장 한 귀퉁이에 아크릴 판을 들어 올리자 드러난 출입구, 사고 현장은 발받침이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되지 않은 상태의 미끌거리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만 하는 지하였습니다.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을 위해 연결된 화학물질 공급 배관과 제품 세척에 사용된 원료들이 배관을 타고 내려와 배출되는 그 지하공간은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미로 같았습니다. 바닥에는 사용된 물질들이 원활히 배출되지 않아, 넘쳐흘러 쌓인 침전물이 가득했고, 후레쉬를 켜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지상의 작업시설을 지탱하는 지하의 비계들은 강산 용액 등에 의해 부식되어 언제 대형사고로 이어질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생산해야 하는 제품의 종류에 따라 매일은 아니지만, 바로 위의 지상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지면 누군가는 작업을 위해 이곳으로 내려와 원료공급을 위해 밸브를 열었어야 한다는데……. 그 현장의 노조간부는 그나마 지금 사고가 난 후에 청소를 해서 이 정도라고 쓴 웃음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위에서 작업이 없어서 그나마 시야가 확보되는 것이라며, 사고 당일에는 작업이 진행되는 와중에 혼자 내려와서 사고를 당한 터라,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고, 사고를 당한 동지가 얼굴에 화학물질을 뒤집어 쓴 상태라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나마 빠져나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고현장인 지하공간을 빠져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라고 입을 모아 모두가 말하지만, '과연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목숨은 제품보다, 이윤보다, 생산보다 얼마나 더 소중하게 대접받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흔쾌히 ‘그렇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현장이 얼마나 될까? 다시 한 번 이런 생각이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내가 일하는 일터의 유해위험요인은 무엇인지, 무엇이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지, 위험에 처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사고를 당한 노동자가 개인의 몫으로 떠안아야 하는 몫이 너무나 크기만 한 이 기형적인 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밥벌이’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서, 노동안전보건의 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