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만드는 역사와 글로 쓰는 역사
박준성 ( 역사학연구소 / 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
창원에 있는 한 동지가 전화를 했다. 1894년 농민전쟁 120주년을 맞아 세미나를 해보려고 하는데 읽을 만한 책 세권만 소개해 달라고 한다.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 전집 가운데 18권째 <민중의 함성과 동학농민전쟁>과 조경달 선생의 <이단의 민중반란>,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을 알려줬다. 이이화 선생 책은 농민전쟁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상황과 농민전쟁을 개괄하여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된다. 조경달 선생 책은 일본 민중사의 연구방법과 성과를 바탕으로 연구한 전문 연구서로 좀더 깊이 있게 1894년 농민전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한문으로 된 책을 번역한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은 원자료를 통하여 농민전쟁의 분위기를 가깝게 느껴볼 수 있다.
황현(1855∼1910)은 농민군 지도자들인 전봉준(1855∼1895), 김개남(1853∼1894), 손화중(1861∼1895)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았다. 황현은 이건창 김택영과 함께 한말삼재(韓末三才)로 불리기도 하였다.
황현은 원래 전라도 광양현 문덕봉 아래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20대에는 서울로 올라가 이건창 등과 사귀면서 과거도 보았다. 과거의 비리에 실망한 뒤 서울 생활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32세 되던 1866년에 구례 간전면 만수동으로 이사했고, 1902년에 구례 광의면 월곡마을로 옮겨 살았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1910년 9월 10일 새벽 56살의 나이로 빼앗긴 나라를 통탄하면서 목숨을 끊은 충절의 위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다.
난리를 겪다 보니 머리만 희어지고
몇 번이고 이 목숨 끊으려다 이루지 못하였네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까물거리는 이 촛불만이 푸른 하늘을 비칠 뿐이네
요망한 기운이 가려서 큰 별이 옮겨지니
대궐은 침침하여 시간 또한 더디구나
이제는 조칙을 다시 받을 길 없으니
구슬같은 천만 줄기 눈물만 쏟아지는구나
새, 짐승 슬피 울고 산과 바다도 찡그리는데
무궁화 이 강산 이미 가라앉고 말았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옛 일을 돌이키니
문자나 안다는 사람 인간되기 정말로 어렵구나
일찍이 나라를 지탱할 조그만 공도 없었고
단지 인자를 이를 뿐 충성을 못했네
이제 겨우 윤곡처럼 죽음을 택하는데 그칠 뿐
당시의 진동처럼 나라를 위하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월곡마을에는 황현의 충절을 기리는 매천의 사당이 있다.
황현은 농민전쟁의 원인, 배경을 꼼꼼이 따지고 진행과정을 자세하게 써놓은 '오하기문(梧下記聞)',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매천야록(梅泉野錄)', 농민전쟁이 끝난 뒤 수습책으로 내놓은 '갑오평비책(甲午平匪策)'은 농민전쟁을 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이다.
그는 민씨와 흥선대원군의 싸움, 왕의 나약함, 외세를 등에 업은 개화파, 선비들의 비리를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는 농민전쟁이 진압된 뒤 수습책으로 농민군 지도자들은 물론 동학전염자와 절도자들을 찾아내어 모두 처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비류(匪類)중에 죽일만한 자를 모두 죽여도 만(萬)인에 지나지 않으니 결코 참혹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황현은 지배층의 눈으로 농민전쟁의 부당함과 반역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에게 농민군은 '동비(東匪)', '적(賊)', '적당(賊黨)'이었으며 농민전쟁은 '비란(匪亂)', '난(亂)'이었다.
그는 먹고 살려고, 좀 더 사람답게 살려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반봉건·반침략 투쟁에 온몸을 던졌던 농민군들을 이해하고 함께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게 탄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낡고 썩은 봉건 왕조체제를 깨뜨리고, 침략 외세를 물리치는 일에 직접 나서지 않았던 그는 나라가 망하는 민족의 비극을 맞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황현은 '동학란'의 역사에 대한 많은 기록은 남겼으나 그가 '농민전쟁'의 역사를 몸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농민전쟁에 참여한 농민들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다. 농민군을 토벌하던 세력이나 적대적인 관점으로 써놓은 기록을 바탕으로 1894년 농민전쟁의 역사를 쓸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노동’과 ‘투쟁’으로 역사를 만들어간다. 몸으로 직접 만드는 역사이다. 몸으로 만드는 역사는 글로 쓴 역사를 통하여 재구성된다. 몸으로 만든 역사를 글로 쓴 역사와 연결시키는 고리가 기록이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을 읽으면서 노동자 역사가 제대로 쓰여 지려면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과 투쟁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