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과 선동 연설이 뛰어났었다고 알려진 히틀러는 거부감이 들 수 있는 단어를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표현으로 바꾸는 것에 뛰어났다. 예를 들어 독재 혹은 독선적 정치를 ‘결단력 있는 정치’, 전쟁준비를 ‘평화와 안전의 확보’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히틀러의 복심, 헤르만 괴링은 말한다.
“국민은 지도자들의 의도한 바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는 매우 쉬운 일이다. 자신들이 외국으로부터 (물리적이든 아니든)공격당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평화주의자들에게는 국가를 위험에 내모는 이들로 애국심이 없는 이들이라고 비판하면 될 문제다. 이 방법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똑같이 통용된다.”
최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의 한국 배치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역량강화 실험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이를 근거로 사드 배치를 ‘결단’하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을 두고 ‘불순분자’ 혹은 ‘애국심이 부재한 자’로 낙인, 배제하는 모습에서 히틀러와 괴링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미군의 한반도 사드 배치가 한국과 미국 정부 간 합의에 이르며 국내적, 지역적, 세계 패권적 차원의 갈등을 야기 시키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의 중대성을 반영하듯, 학자들과 언론, 그리고 정치계에서는 장단점을 나열하며 치열한 찬반 논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의는 인체유해성과 한중관계 악화에 따른 경제적 논란 뿐, 사드 한반도 배치에 따른 거시적 관점이 부재한 형편이다. 그 결과 사드 한반도 배치의 핵심, 즉 한반도 평화,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 문제를 희석시켜, 결국 본 문제의 핵심과 그 주체를 배제시키고 만다.
한반도 사드 배치의 의미를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살펴보고, 본 문제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갖고 개입해야 하는지 이야기 해보려 한다.
탈냉전 체제 하의 동북아: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와 중국의 부상
냉전체제의 해체는 미국 중심의 단극적 세계패권질서의 도래를 의미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미국이 갖고 있던 세계 정치·경제적 패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세계 패권의 토대인 달러체제가 위기에 직면했고, 압도적 경제적 우위와 이를 기반한 미군의 군사체제에도 위협받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중국이 세계 생산기지로의 역할을 수행하며, 막대한 외화 보유고를 축적하고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신흥 강국의 지위를 구축해왔다.
미국의 세계 패권의 상대적 약화와 중국의 부상은 미국으로 하여금 정치 경제적 전략을 아시아로 틀게 만들었다. 달러환류체제의 중요한 거점인 아시아로의 회귀를 통해 미국의 패권체제를 공고히 하는 한편,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전략으로 압축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 Pacific Partnership)과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미군 재배치가 대표적 예다. TPP는 세계최대 경제권으로 미국의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경제전략이다. 이는 새로운 자유주의적 수탈적 경제체제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는 미국은 역사, 사회적 관계도 부재한 ‘환태평양’이라는 지리적 개념을 등장시킴으로써 미국의 정치적 영토를 확장하여, 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더불어, 미국의 미군 재배치는 더욱 공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최근 중국 견제를 위해 중국의 영토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는 남중국해에 미군 재주둔을 추진하고 있으며, 오키나와 미군기지 확장 및 재배치, 아울러 전략적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한국과 일본의 군사전략적 동맹 강화를 막후에서 진두지휘하며 관계개선에 힘을 쓰는 등 해양동맹체제(미국-일본-호주-한국)와 아세안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여,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동맹체제를 봉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이원적 접근은 미중간 전략경제대화로 모아진다. 미국 닉슨 정부의 중국 포용정책 이후, 미중관계의 가장 큰 모멘텀인 2009년부터 시작된 미중간 전략경제대화는 G2시대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위와 같은 전략들과 중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중국에게 위안화 절상과 무역문제들에 자국 패권 유지에 유의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동시에 군사문제 및 인권문제를 제기하며 중국의 평화적 부상을 저지하고 있다.
미중간 전략적 불균형과 사드 배치
이러한 가운데, 한미간 합의(?)에 의한 한반도 사드 배치는 G2체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난 6월에 개최된 제8차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미국의 전략적 견제와 중국의 저항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중국은 미국에게 지역적 이해당사자적 지위를 요구해 왔고, 이를 일정 정도 용인해온 미국이었다. 그러나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이 절대 포기 못하는 지역적 이해 당사국으로서의 지위를 미국이 침해하는 행위였다.
지난 6월에 열린 15차 아시아 안보회의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공식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자, 쑨젠궈 인민해방군 부참모장은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두고, 이는 한반도에 ‘필요 이상의 조치’라며 반대의사를 강하게 내비쳤다. 여기서 중국이 말하는 ‘필요 이상의 조치’는 북한에 대한 필요 이상의 조치가 아니라,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상관하는 조치라는 의미이며, 이는 한국의 미국 MD체제 편입에 대한 의심과 우려이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 혹은 미사일 전력에 대응하기에는 기대 이하라는 것은 이미 알려졌다. 수도권의 가장 큰 위협 요소인 북한의 방사포 전력에 대한 대응에도, 평택과 오산, 군산의 주한민군 전략기지 방어에도 그 실질적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북한을 대상으로한 전략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울러 국방부는 지역 주민의 안전을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적용했다고 하나, 실제 해당 지역 현장 조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는 점은 더욱 설득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이에 더해 지난 2012년 캐슬린 힉스 미국 정책 담당 수석부차관이 한국의 MD 참여방법을 두고 지상발사요격미사일 기지는 차치하더라도 레이더망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MD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바 있다. 이러한 근거들은 사드 한반도 배치가 한국의 미국 MD체제 편입을 의미함을 보여준다.
미중간 세력균형과 동북아 평화
국가들이 구성하는 국제사회는 권력정치의 장이다. 이런 점에서 국제사회는 무정부적 속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강대국들 간의 세력균형과 국제사회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규범적 요소들은 안정된 체제, 즉 소극적 평화 상태를 유지시킨다. 여기에서 ‘필요이상의 조치’는 한반도 사드 배치가 그 세력균형을 깨는 행위라고 중국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력균형이 깨진다는 것은 균형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군비경쟁과 이에 따른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특히, 이는 닉슨 정부 이후 미국과 중국 간에 대화를 통해 형성해낸 국제사회의 질서, 즉 규범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점에서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사실상 중국 동북부(퉁화, 덩사허, 탕산, 장자커우, 웨이팡)에 위치한 전략적 미사일 전력의 사드 레이더 시스템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두가지 점에서 미중간 전략적 불균형을 초래하는 것인데, 첫째는 중국의 한반도 개입을 차단하는 효과와 둘째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 이는 기간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세력균형이 남북한 적대적 상황을 일정부분 통제해 왔으나 중국의 개입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는 사드 배치를 통해 이러한 균형이 무너져 미국의 의지에 한반도 평화가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물론 중국은 이러한 불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군비를 늘릴 것이고, 이는 미소간 냉전해체 이후 미중간 새로운 냉전체제의 도래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1945년 4월, 연합군은 바이마르 지역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앞마당에 쌓여있는 시체들과 뼈와 가죽 밖에 안 남은 상태의 수용자들을 발견한다. 연합군은 그 처참한 모습, 나치의 만행을 바이마르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방문한 바이마르 시민들은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한다.
“나는 몰랐어요!”
그러자 수용자들은 분노하며 이렇게 되받아 쳤다.
“아니, 당신들은 알고 있었어.”
권력자들의 말에 따라 우리는 단지 애국을 했을 뿐인데, 그리고 그들의 말을 믿었을 뿐인데,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최신무기를 사들여 왔고, 북한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보복공격에 찬성을 했고, 우리를 지켜줄 것만 같은 주변 강대국의 의견에 동조할지 모른다. 그러나 각각의 선택에 따를 수 없이 많은 위험요인들을 정말 몰랐을까?
이러한 선택들이 다시 한번 동북아에 냉전을 형성시키고, 한반도 정세에 불안감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리고 그 결과 전쟁이 일어나고 폐허가 된 한반도에 살아남게 된다면. 우리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니, 당신들은 이미 알고 있었어.”
주요 언론들에서는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화려한 수사, 그리고 어려운 수식과 단어를 나열하며 각자의 국익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관점에서 안보적 불안요인들을 내뱉고 있다. 그러나 사드 한반도 배치의 찬반 논쟁은 오히려 동아시아의 패권적 질서의 변화와 세력 불균형에 따른 불안 가중을 은폐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민적 이익’을 배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미’ 알고 있는 사드 배치가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숙지하고 국가적 이익이 아닌, 국민적 이익을 되새겨 평화적 국제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의 불명확성을 미래의 가능성으로 방향 전환시킬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