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로 폐질환 등 심각한 건강 피해를 입은 소비자 수가 공식 집계로 5천 명을 넘었다. 사망자가 1천 명이 넘는다. 옥시를 비롯한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 기업들은 인체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거짓 광고를 했다. 심지어 아이들을 위해 꼭 써야 한다고 부모들을 유혹했다. 그래서인지 피해자들 중에는 3세 이하의 어린 아기들이나 젊은 어머니들이 많다. 살균 기능이 있는 화학물질을 가습기에 타서 방 안에 뿌리는 것은 마치 농약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안전성을 제대로 확인 하기는 커녕, 호흡 독성이 나타난 연구 결과를 은폐하면서까지 제품을 팔았다. 뒤늦게 국회와 정부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자 비로소 사과하고 보상에 나섰으나, 건강과 목숨을 잃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삶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만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별다른 안전성 검증 없이 사용된다. 심지어 잘 알려진 독성 물질들이 버젓이 이용되기도 한다. 아기들이 수시로 입에 가져가는 장난감들에서, 학생들이 날마다 사용하는 학용품에서, 아침, 저녁으로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에서, 요리를 편리하게 해준다는 주방용품에서, 각종 중금속과 인체 및 환경에 해로운 화학물질들이 검출되고 있다. 나노물질처럼 인체 독성이 아직 제대로 연구되지 않은 물질들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양 각종 생활용품에 등장하기도 했다.
화재 피해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커텐, 침구 등 집안의 각종 섬유 제품들에 덧입히는 방염제는 또 어떤가. 다큐 영화 <의혹을 파는 상인들>(Merchants of Doubt)을 보면 이런 유해물질 방염제가 널리 쓰이게 된 배경이 나온다. 미국에서 가정집의 화재 주범인 담뱃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내흡연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담배회사들이 방염제 생산업체들과 손잡고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이런 방염제가 각종 질병과 환경오염을 일으키며, 심지어 화재 발생 시 훨씬 유독한 가스를 뿜어 오히려 해롭다는 사실은 철저히 숨겨져 왔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은 소비자로서 불특정 다수의 화학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문제에 더하여 일터에서 더 높은 농도에 매일 장시간 노출되는 문제까지 떠안게 된다.
1988년에는 서울의 모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15세 소년 노동자가 수은 중독으로 두 달 만에 쓰러져 끝내 숨졌다. 수은의 독성은 이미 오래 전에 잘 알려져 있었고 법으로도 관리기준이 엄격히 설정된 물질이었지만, 그런 지식과 법은 노동 현장에 통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일이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작년, 광주의 남영전구 공장을 철거하던 건설 일용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수은 중독에 걸렸다. 형광등 재료로 쓰이던 수은이 공장 터 곳곳에 남아 있다가 이들을 공격한 것이다. 올해 초 부천 지역의 휴대폰 부품업체에서 20대 파견 노동자들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사건도 마찬가지다. 독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물질들이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법이 있는 물질들이지만, 그런 지식과 법은 노동자들에게 가 닿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에러’다.
시스템 에러는 전 지구적 현상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독성물질이나 유해산업을 없애거나 줄이는데 실패했다. 아니, 일부 노동자의 목숨이나 일부 지역의 환경을 희생시켜서라도 경제를 키우고 이윤을 늘리는 방향을 선택해왔다. 일찍이 1930년대 미국에서 심각한 독성이 알려졌던 레이온 공장들은 2차 대전 패전국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에 발맞춰 한국으로 유입되었다. 경기도 구리시의 원진 레이온 공장에서 수백 명의 피해자를 낳은 뒤 간신히 공장을 폐쇄시켰지만, 그 기계는 1990년대 중반에 다시 중국 단둥으로 팔려갔다. 석면은 어떤가. 소위 선진국들에서 석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일본과 독일의 석면 기업들은 한국에 투자하여 석면 공장을 옮겨왔고, 한국에서 석면 피해가 증가하면서 규제가 강화되자, 이번에는 인도네시아로 석면 생산 설비들을 이전했다. 전 세계적인 석면 금지 추세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석면 수입과 사용량이 급증하는 현실은, 자본주의의 시스템 에러를 여실히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그렇다면 이런 화학물질 피해로부터 건강과 삶,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할까? 우선 ‘영업비밀’이라며 제품의 성분이나 독성을 숨기는 기업들을 잡으려면 소비자와 노동자의 알 권리가 법제도로 보장되어야 한다. 독성이 충분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마음껏 사용하는 사후 약방문 식의 관리가 아니라, 안전성이 충분히 확인되기 전까지는 엄격하게 규제하는 사전 예방의 원칙을 소비재와 작업장 화학물질 사용에 도입해야 한다. 만일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 의심 사례가 드러날 경우, 그 인과관계를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부당한 입증책임의 부담을 제거해야 한다. 또한 원청에서 유해작업을 하청으로 넘기거나, 선진국의 유해산업을 후진국으로 수출하거나, 자국에서 금지한 물질을 해외에 수출하는 등의 ‘이중 잣대’를 없애기 위해 국내법과 국제법 및 국제협약 등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만 가지 화학물질들이 사용되고 매년 수천 종이 새로 합성, 개발된다고 한다. 이런 현실에서 알려진 독성물질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뒤쫓는 노력 뿐 아니라 이를 ‘시스템’의 문제로 인지하고 대처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맞선 싸움들은 결국 생산성, 편의, 이윤을 일순위에 두어온 자본주의 시스템의 에러를 고치고 안전, 인권, 생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더 큰 싸움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