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과 그 이면의 싸움들

  • 글쓴이: 임광순(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 2016-12-05

  국정교과서의 보편적인 문제들 – 反민주주의, 그리고 역사왜곡

  상상 해본다. 어느 날 여당 대표가 “노동조합의 90%는 좌파다. 올바른 노동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통령은 노동운동의 문제를 묻는 질문에 “전체 노동운동을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변한다. 그리고 얼마 뒤 노동부 장관과 국무총리는 ‘올바른 노동운동’을 위하여 현재의 노동조합을 모두 해산시키고, 정부주도의 노동조합만을 승인한다.

  군사 쿠데타에나 있을법한 일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이다. 국정화를 역사쿠데타로 부르는 이유이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그나마 2000년대에 등장한 검정 역사교과서를 폐기하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구실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있다. 역사학자, 역사교사, 학생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며 각종 성명을 발표하고, 많은 시민들과 거리에 섰다. 그럼에도 정부는 ‘복면집필’로 교과서를 만들고 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도 불구하고 원래대로 국정화 계획을 추진한다고 한다. 국정교과서 실험본이 온라인에 공개되면 한 달간의 형식적인 검토를 거쳐 내년부터 학교현장에 보급된다. 역사학자, 역사교사들은 이를 돌이키기 위해 계속 싸울 테지만 가장 큰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다. 이처럼 국정교과서는 내용 여부에 상관없이 ‘탄생’ 자체에 큰 문제를 갖고 있다. 국정교과서 내용이 공개되면 논란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교육부의 핑계가 궁색하기만 하다.

  한편 역사교과서에 대한 공격은 지난 10년간 집요하게 진행되었다. 2005년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 조직을 시작으로 2008년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공격과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 발행, 2013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공격은 언제나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지원 아래 진행되었으며 교과서 시장의 바깥에서 안으로 침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뉴라이트 교과서로 불린 2013년 교학사 교과서는 학교별 채택률 0%대로 사실상 실패하였다. 국정화 사태는 이러한 실패를 국가권력의 힘으로 뒤집으려는 시도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교과서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이자 역사왜곡의 문제이다. 국정화 반대운동의 대중적인 구호가 “역사왜곡 반대”, “친일독재 미화 반대”인 까닭이기도 하다.

 

  국정화 반대운동의 성격

  국정화 반대운동은 운동의 측면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박근혜 정권의 폭주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정화는 오랜 역사교과서 공격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냈다. 교과서 문제를 역사전쟁으로, 역사학‧교육계의 문제를 전 국민의 이슈로 전환시켰다. 국정화 고시가 있었던 작년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여론은 53%에 육박했다. 반면 찬성의견은 36%에 불과하였다. 박근혜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응답도 긍정응답보다 높아졌다. 역사학계 내에서도 기존 역사교과서 사태와 달리 모든 세대의 연구자들이 반대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국정화는 1년 째 강행 중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5%에 불과하여 사실상 정치력을 잃었지만 교육부는 그대로 국정화 프로세스를 강행하고 있다.(내부적으로 국정화 철회를 준비한다는 보도는 있었다.) 그만큼 국정화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정책이자 아킬레스건이다.

  다른 한편 국정화는 박근혜만의 작품이 아니다. 당내에서 박근혜와 대립하는 김무성은 새누리당 근현대역사교실을 만들어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국회 진출을 도왔다. 또한 색깔론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역사학자 90% 좌파발언도 김무성의 입에서 나왔다. 이뿐만 아니다. 보수언론은 연일 국정화를 지지하는 기사와 사설을 내보냈고, 전경련도 산하단체인 자유경제원을 활용하여 국정화 작업에 적극 호응하였다. 국정화 전도사를 자처했던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이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것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물론 이들은 현재 국면에서 국정화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역풍에 대한 우려이자 국정화의 책임을 박근혜에게 덧씌우려는 속셈이다. 이들은 현재의 국정화 정책이 폐기되고 더 나아가 박근혜가 하야하더라도 역사교과서에 대한 공격을 재개할 것이다. 또는 다른 우회로를 찾을 것이다. 마치 박근혜표 노동개악을 막아내더라도 노동개악의 근원이 제거되지 않듯이 말이다. 국정화 반대운동은 국가의 역사독점 시도에 맞서는 싸움이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서술하고 싶은 보수정당, 언론, 기업들의 이해관계에 맞서는 싸움이다. 따라서 국정화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지속될 싸움이다.

 

  국정화 반대운동 너머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국정화 저지는 중요한 과제이고 현재 집중해야할 문제이다. 국정화가 폐기된다면 보수세력은 당분간 국정화 카드를 꺼내지 못할 것이다. 동시에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싸움도 수면 아래에서 역사학계‧교육계 소수의 싸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국정화 이후의 싸움은 일부 업계의 문제인가? 작년 10월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조선일보는 “전태일은 있어도 이병철은 없는 국사교과서”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국정화를 추진하며 속내를 여과 없이 내보낸 것이다. 보수언론의 공격과 다른 방향에서 젊은 역사연구자들은 오랫동안 현행 검정교과서를 비판해왔다. 검정 역사교과서가 중요한 사실을 누락하고 보수적으로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발행체계를 바꿔야한다는 비판이었다. 검정 교과서의 문제는 집필진의 문제라기보다 현행 교과서 발행시스템의 문제이다. 검정 교과서의 집필진과 출판사는 모두 다르지만 교육부의 집필기준(준거안)에 따라 제작된다. 이것을 따르지 않으면 교육부가 ‘검정’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하여 이명박 정부에서는 ‘민주주의’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변경하는 등 집필기준(준거안)을 여러 차례 수정해왔다. 집필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출판사에 교과서 수정을 명령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현재 역사교과서에는 해방 후 노동운동에 대한 서술이 1쪽~2쪽에 불과하다. 전경련과 보수언론은 이마저도 트집을 잡는 것이다. 전경련은 2011년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에 “대표적 기업인과 한국경제를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으로 이끈 대기업의 성과를 공정하게 서술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압박은 받아들여져 사회과(경제) 과목에서 시장실패와 국가의 역할, 노동 서술이 빠지고 자산관리가 삽입되었다. 전경련은 역사과목에 반영되지 않은 자신들의 의견을 2015년 국정화를 통하여 삽입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화가 폐기되더라도 전경련과 보수언론, 정부는 더 교묘한 방식으로 교과서를 바꾸려 할 것이다. 심지어 국정교과서도 대놓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진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대신 중요한 부분(근현대사, 운동사)을 축소하고 성장과 개발, 그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내용이 큰 폭으로 바뀌지 않는단 말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교과서가 공개되면 논란이 종식된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럴 경우 안타깝게도 국정반대운동에서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구호, “친일독재 미화 반대”는 힘을 잃게 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구호와 전략이 필요하다. 국정반대운동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너머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적들은 오랜 시간 자신들의 의도에 맞는 교육교재를 개발했고, 교과서 발행에 개입해왔다. 이제라도 우리의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기초적인 노동법을 사회과목에서 배울 수는 없는가. 역사교과서에 노동운동과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적을 것인가. 근현대사에서 기업의 역할과 활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교과서 발행체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인가. 교과서 너머의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역사학계‧교육계가 답을 구하는데 앞장서겠지만 비단 이런 질문이 역사학계‧교육계만의 것은 아닐 테다. 민주주의는 내 삶의 정체성, 그리고 이해관계의 문제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