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외침, 500일의 기다림, 절대로 안 지겠습니다
지난 3월 6일은 고 황유미님의 10주기였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삼성은 여전히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해화학 물질과 위험한 작업환경을 은폐하는 것도 여전하다. 언론을 통해 진실을 가리고, 반올림을 비난하는 일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무책임과 노동부의 삼성비호도 바뀌지 않으며 삼성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직업병 피해자는 끊임 없이 추가되어 왔다. 삼성반도체/LCD 부문에서만 230여명이 병에 걸렸고, 이 중 79분이 목숨을 잃었다. 삼성계열사 전체로 보면, 피해자는 306명이고, 그 중 113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10년 간의 싸움에 적지 않은 성과도 있었다. 먼저 언급할 중요한 성과는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자 14명의 8개 질환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산재를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는 불합리한 제도와 삼성이 영업비밀을 핑계로 증거를 은폐하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이룬 값진 성과였다. 양심적인 법률가와 학자들, 영화와 책, 기사를 통해 삼성직업병의 진실을 알리려 애쓴 분들의 노력이 큰 힘이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싸움을 지속해 온 피해자 가족과 활동가들, 연대한 수많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삼성은 산업재해 판결을 뒤집기 어렵게 되어서야 반올림과 대화의 문을 열었고 교섭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삼성의 인사팀과 법률팀 중심의 협상위원을 언론인 출신의 홍보담당자들로 바꿨다. 적극적이고 악의적인 삼성의 언론 대응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삼성과의 교섭은 피해자 가족과 반올림을 분리하려는 삼성의 집요한 노력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6명의 피해자 가족이 가족대책위원회로 분리되어 삼성, 반올림, 가족대책위 3자의 교섭으로 진행되다, 결국 삼성과 가족대책위의 제안을 반올림이 수용하여 조정위원회를 꾸려 조정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5년 7월, 정작 조정안이 나오자, 삼성은 이를 걷어차고 자신들이 임의로 정한 보상절차를 강행하며 반올림과 대화도 단절한다. 최종 대화가 단절된 2015년 10월 시작된 반올림 노숙농성이 이제 500일을 훌쩍 넘기고 있다.
지난 몇 달 간 광화문 광장을 뜨겁게 달군 촛불광장은 반올림에게 더욱 특별했다. ‘삼성직업병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삼성의 거짓주장이 더는 잘 통하지 않게 되었다. 초기에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지만, 마침내 이재용이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실체가 권력과 자본의 정경유착이었음을 드러내려 많은 이들이 노력했고, ‘박근혜 퇴진’과 함께 ‘이재용 구속’을 외친 수많은 시민들이 이뤄낸 성과이리라. 이재용은 사익을 위해 회사돈을 횡령해서 은닉하고, 뇌물을 주고, 해외로 빼 돌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노후자금까지 손을 대고, 온 국민 앞에서 거짓말을 반복한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특검이 밝힌 이재용의 죄는 일부에 불과하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의 권리를 미행과 납치, 해고까지 서슴치 않으며 탄압했던 죄, 명백한 삼성 노동자들을 위장도급으로 하청노동자로 고용하며 불법을 저지른 죄, 위험한 작업을 안전하게 하는 대신 외주화로 해결하며 노동자들의 눈을 멀게 하고 죽게 만든 죄, 삼성직업병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계속 외면하고 방치하고 있는 죄가 훨씬 더 무겁다.
특검의 수사발표가 있었던 날, 삼성은 미래전략실 해체와 계열사 자율경영을 골자로 한 쇄신안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알맹이 없는 빈껍떼기다. 삼성직업병 문제와 불법도급, 해고노동자 문제는 고사하고, 범죄로 얻은 수익에 대한 얘기도, 이건희가 약속했던 사회 환원 이행조차 빠져있다.
총수 구속에 직면한 삼성이 사회적 여론의 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어떤 쇄신책을 더 내놓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삼성과 오래 싸워 온 이들은 삼성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 노조는 안된다’는 식의 아집과 뒤떨어진 사회인식이 쉽게 변하기 어려울 것이다.
황유미 10주기 문화제에서 황상기 아버님이 하셨던 얘기가 아마 반올림의 다짐이 아닐까 한다.
“10년 전 삼성 직원이 우리 집에 와서 유미더러 사표를 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기에 '우리 유미,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이 큰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난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처음에는 혼자 싸웠는데, 지금은 반올림을 비롯한 여러분과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같이하고 있습니다.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큰 삼성과 싸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기지는 못 할 망정 지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지지 않는 일은 잘못된 것을 밝히고 똑바로 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절대로 안 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