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열기 연재1)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네요.

  • 글쓴이: 하효열 (와락치유단 상담자,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운영위원장)
  • 2017-03-22

마음열기 연재-1

내 마음을 이야기 해야 한다

 “연애도 못하는 사람이 일인들 제대로 하겠어요?”

 ‘으, 재수 없는 년, 어째 말을 해도 저리도 얄밉게 할까? 내가 지하고 친하게 지낼 때, 연애도 한번 제대로 못했다고 부끄럽게 이야기한 것까지 끄집어내서 이제 아주 대못을 박네, 아주 대못을... 나쁜 년!’

 ㅇ씨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ㄱ씨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속으로 꾹꾹 누르며 참는다. 기운이 다 빠져서 집에 돌아오니 아이가 방을 어질러 놓고 게임을 하고 있다. 금방 먹은 과자 부스러기도 방바닥에 떨어져 있다.

 “게임을 해도 정리 좀 하고 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니, 너는 어째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니? 너 때문에 온갖 수모 다 겪으면서도 암말 안 하고 참고 살고 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게임이야 게임은... 그렇다고 엄마가 누가 게임 못하게 하니, 게임을 하고 싶으면 정리라도 하고 하란 말이야.”

 ㄱ씨가 꺽꺽거리며 울고 있다. ㅇ씨에게도, 아이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자신이 죽고 싶을 만큼 밉다. 이 회사에서 정리해고 싸움이 시작된 지 이제 3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회사가 정규직들을 정리해고 하려하자 시작된 싸움이다. 비정규직은 도매금으로 넘어갔다. 정규직이 잘려나가는 판에 비정규직이 살아남을 거라고는 꿈도 못 꿨다. 싸움이 시작되자 정규직 쪽에서 같이 싸우자고 제안을 해 왔다. ㄱ씨는 비정규직이고 ㅇ씨는 정규직이다. 둘 다 해고되었다. 처음에는 같이 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기투합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이 길어지면서 힘든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에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기로 했는데, ㄱ씨가 아이 때문에 몇 번을 빠진 게 화근이 되었다. ㅇ씨는 이제 노골적으로 ㄱ씨를 타박한다.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그러니 회사에서 정식 직원으로 계약을 안 한 것’이라 수군거린다. 서로 의지하면서 같이 잘 살아보자고 시작한 싸움인데 오히려 원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세상이 전쟁터라는 것을 배우고, 학교는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 보내면서 스펙 쌓기를 가르친다. 그게 공정하다는 것이다. 스펙 쌓을 능력과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안전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는 좀 더 불공정한 처지로 떨어지게 된다. 비정규직은 불공정함의 바닥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다. 한 번 떨어지면 회복하기 어렵고, 그 밑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세상과 만나야 하는 곳이다.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스펙 밖에 없다는데 진즉에 포기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앞날이 불안하고 고달픈 인생들이 넘쳐나는 곳이 삶의 터전이 된다. ㄱ씨와 ㅇ씨는 그곳으로 떨어지기 싫어 사다리를 부여잡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것도 너무 힘들다. 내가 싫더라도 참고, 남이 싫어하면 맞춰주는 것만 알지 마음을 나누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섭섭해 하는 눈치가 보이면 믿는 척도 해주고, 선심 쓰듯이 밥도 사주고 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속을 박박 긁어 놓는다. 같이 싸우자고 할 때 ‘처지가 다른데 그게 가능할까?’ 싶었던 생각이 옳았다 싶다.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제 마음을 이야기해야 하더라고요. 제가 너무 힘들어져서 섭섭한 것만 보였는데, 글쎄 ㅇ이가 그게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요. 세상에 제가 그걸 못 봤어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방 보였을 텐데 어째 그런 게 안 보였을까요? 제 맘이 복잡해서 그랬나 봐요. ㅇ이는 살면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누가 자기한테 섭섭해 하는 걸 봐 내지 못해요. 불쌍해요. 에고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어요, 참. 이제 화해했어요, 그래도. 이제 앞으로 어찌 살지 고민 좀 해 봐야겠어요.”

 같이 마음 맞추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내 속을 긁는지 원망만 되던 사람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숨통이 조금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참는 것도, 맞추는 것도, 눈치를 보는 것도, 원망하는 것도 아닌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게 쉽지 않다. 그래도 화해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자신감도 조금 생긴다. 이런 게 치유라는 것이구나 싶다.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사다리 타고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는 반쯤 접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진짜배기 철이 드는 것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만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철이 들고 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남는 법을 깨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절대 안 가르쳐주는 것인데,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힘든 마음 나누고 못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것이다. 나눔이 곧 치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