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생활이 즐겁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상상 민주주의

  • 글쓴이: 김영수(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 2017-03-22

 2016년 11월부터 시작된 ‘민’의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을 강제하고 난 이후, ‘민’의 권리를 허접한 쓰레기로 여겼던 자들에게 감옥행 수갑과 잠자리를 안겨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을 인용하는 것만 남았다. 아마도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용하고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국정을 정리할 것이고, 정국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게임의 장으로 돌진하게 될 것이다.

 촛불항쟁은 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태극기의 강풍에도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타올라 청와대 권력을 무너뜨렸을까? 그 배경을 거대한 담론이나 정책을 넘어서 생각하면 간단하다. 혐오담론(헬조선, 망한민국, 흙수저 등)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노동자·민중들은 삶의 질이 악화되고 존재기반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주권과 권리를 허접한 쓰레기로 만들어버린 권력의 야수들에게 권리의 자존감까지 맡길 수 없었다. 한마디로 ‘쪽’팔림에서 벗어나거나, 이미 팔려버린 자존감을 회복하려 했던 것이다.

 노동자·민중은 2017년 3월 현재까지도 촛불을 뜨겁게 밝히면서 제도정치나 정당정치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거리에서 직접 해결하는 정치적 주체로 나섰고, 국가의 입법권력과 사법권력을 포획하는 승전고를 울렸다. 물론 제도화된 권력은 항상 노동자·민중들의 직접정치의 울림에 반응하지 않았지만, 이번 촛불항쟁의 열기만큼은 피해갈 수 없었다. 촛불은 혁명적으로 전복당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지배체제의 보이지 않는 ‘손’을 작동하게 하였다. ‘수동혁명적 정치’이자, 깃털을 뽑아내고자 한 몸통세력의 ‘권력정상화 정치’가 제도정치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촛불항쟁을 어떻게 바라보든, 5월에 대통령선거가 진행된다면, 정권교체는 거의 확실하다. 촛불의 힘이다. 그러면 촛불은 정권교체만을 바라보았단 말인가? 새롭게 등장하는 정권도 지배체제의 ‘수동혁명적 정치’와 ‘권력정상화 정치’의 우산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까지 정권교체의 블랙홀 속에 집어넣어야 한단 말인가. 단지 행정권력의 교체만이 이루어지는 정권교체의 ‘부흥회’에서, 노동자·민중의 민주적 가치와 실체가 정권교체의 뒤안길로 사라져도 좋다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답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주 협의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정권교체는 의회권력이나 사법권력을 구조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지배세력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개혁이라는 틀 속에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간단하다. 국가권력이 청와대나 대통령에 집중되어 나타났던 문제들이 촛불의 불쏘시개였던 만큼, 국가권력의 뇌수만큼은 지배세력에게 집중시키되, 주변화될 수 있는 권력을 각종의 공공기관이나 NGO(NPO)로 분산시켜 나가는 ‘국가권력의 구조전환’이다. 이러한 과제조차 쉽지 않은 것이지만, 새로운 정권은 권력분산을 국가개혁과 사회적인 대타협의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노동자·민중들을 ‘제2기 권력 중심이 민주화’ 과정에 대대적으로 동원할 것이다. 권력의 일부를 넘겨받은 공공기관이나 NGO(NPO)는 노동자·민중을 지배체제의 틀에 맞게 관리하는 새로운 ‘관리 민주주의’의 권력주체로 등장한다.

 이런 상황은 틀림없이 노동자·민중들의 눈과 마음을 딜레마의 늪에 빠지게 할 것이다. 새로운 정권이 지향할 ‘권력 중심의 개량적 민주화의 그늘’ 속에서 느껴지는 기만적 시원함에 만족할 것인지, 아니면 ‘권리 중심의 개혁적·변혁적 민주화의 태양’ 아래서 느껴지는 희망의 고통스러움을 지향할 것인지. 이 딜레마 상황은 노동자·민중에게 적지 않은 혼돈(chaos)의 선택지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가치이자 실제이다. 어제는 민주적이었던 것이 오늘은 반(半)민주적일 수 있고, 내일에 가서는 비민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민중은 늘 ‘노동과 생활이 즐거운 세상의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상상하는 ‘희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자존감조차 내팽개치는 것과 같고, 노동자·민중의 ‘해방’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쓰레기로 취급하는 것과 동일하다. 노동이 즐겁고 만인의 삶이 행복한 세상은 정말 간단하다. 인간의 생활이 존중되고, 노동의 자존감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를 관통하는 가치는 바로 민주주의다. 노동의 격은 다음과 같은 노동조건에서 뿜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동시간은 짧지만, 노동의 권리가 강해서, 노동자 간의 차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노동의 자부심도 크고, 인간다운 삶의 자존감이 보장되는 세상의 노동자.’ 이러한 세상이 바로 노동에서 해방되거나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이 아닐까. 희망은 인내와 훈련이 요구되는 장밋빛 미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모퉁이 뒤에 있다는 것을 상상할 때, 세상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견인차로 작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