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철회 투쟁, 성주에 빚지지 말자

  • 글쓴이: 천용길(뉴스민 편집장)
  • 2017-05-25

 하나를 내주고, 둘을 얻는다. 장사치라면 어느 하나 손해를 보더라도, 이득을 보는 쪽을 선택한다. 만약 그것이 사람이라면, 빼앗길 수 없는 권리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둘을 얻지 않더라도, 하나를 잃지 않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2016년 7월 13일, 박근혜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을 발표한다. 경상북도 성주군. 면적(616.14km²)은 1천만 명이 사는 서울특별시(605.25km²)보다 크다. 박근혜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문제는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 등을 감안해 가면서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따라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4만5천여 명이 사는 고요한 농촌 사람들은 사드 배치 소식에 혼란에 빠졌다. 첫 의문은 ‘사드가 무엇인가?’였고, 다음은 ‘왜 하필 성주인가?’였다. 한민국 국방부 장관은 “건강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최적 부지”라며 성주읍 성산리에 있는 성산포대를 찍었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성주는 엑스밴드레이더로 인한 피해를 적게 입는다는 말과 같았다.

 이틀 후인 7월 15일, 황교안 국무총리 일행이 성주를 방문했다. 황 총리는 성주군민들과 대화는커녕, ‘죄송하다. 하지만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군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자, 황 총리는 황급히 성주를 떠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텔레비젼에 나온 성주의 모습은 ‘폭력 시위’, ‘외부세력 개입’으로 얼룩졌다. 이 사건 직후 성주군민은 레이더로 인한 전자파 유해성 차원의 문제를 넘어섰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속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동네가 희생을 감수하라는 폭력에 맞서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촛불집회에 1~2천여 명이 모였고, 사드가 가져올 동북아 정세 변화 등을 공부하고 분석했다. 이어지는 거센 항의에 국방부는 돌연 입장을 바꾼다. ‘최적 부지’라던 성산포대는 1만여 명이 모여 사는 읍 소재지와 가까워 부지 선정을 새로 한다고 했다. 성주군수와 관변단체들은 이에 호응했고, 사드 배치 부지는 성주군 내에서도 외곽인 초전면 소성리 구 롯데골프장으로 바뀌었다.

 소성리는 17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군수와 관변단체가 떨어져나갔지만, 이미 사드 밀어부치기의 속성을 알아차린 성주군민들은 “대한민국 어느 곳에도 사드는 안 된다”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소성리와 맞닿은 김천시민들도 이 무렵부터 매일 촛불집회를 여는 등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 곳곳의 평화운동단체, 시민들이 성주로 모여들었다. 한여름 시작한 사드 철회 투쟁은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맞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전국적인 정권 퇴진 운동이 벌어졌다. 박근혜가 탄핵, 구속되고 조기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다. 그 와중에도 성주, 김천 시민들은 사드 배치 철회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이 급했는지, 국방부는 사드 장비 반입을 시도한다.

 2017년 4월 26일 새벽 2시, 경찰 8천여 명이 호위하는 가운데 사드 장비 반입이 이뤄졌다. 주민과 평화활동가 80여 명이 막아섰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성주, 김천시민들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 사드를 통해 세월호 참사 진실을 알았고,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일색인 지역정가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4천여 명에 달하던 새누리당 당원들이 탈당운동에 나섰고, 광화문으로, 진도 팽목항으로, 광주로 갔다. 단순히 사드라는 무기 하나가 들어온 게 아니다. 불의한 권력이 평화로운 일상을 어떻게 짓밟는지, 내 권리가 어떻게 무시당하는지 철저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극복하고 이겨내는 방법은 힘없는 시민들이 촘촘하게 얽힌 연대라는 사실. 박근혜 탄핵 뉴스를 보며 만세를 부르던 팔십대 노인들이 사는 곳, 광주민중항쟁 37주기를 앞두고 여든넷 노인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기 시작한 소성리. 공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숫자가 오가는 손익계산에 익숙하다. 1980년 5월 광주에 민주주의의 빚을 지고 있다면, 이제 더는 빚을 져서는 안 된다. 사드 배치 철회 싸움의 앞에 선 성주, 김천시민들과 어깨를 걸고,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