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2) 치유를 하면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가?

  • 글쓴이: 하효열 (와락치유단 상담자,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운영위원장)
  • 2017-05-25

치유는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이거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기는 하나요? 요즘 스트레스 엄청 받는데...”

 진행자를 소개하고 인사를 나누고 마음이 어느 정도 말랑말랑해지면 이런 질문이 들어온다. 진행자가 부담스러워할까 싶어 직접 묻지 않아서 그렇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 질문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 선생님은 아무 것도 안 하고 푹 쉴 수 있게 해 줬어요.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뭘 하나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쉬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세상사란 것 자체가 늘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 왔기에 마음 편히 푹 쉴 수만 있으면 훨씬 나아질게 틀림없다고 확신을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프로그램에 와서라도 쉬고 싶은 것이다.

 “뭘 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쉬었으면 좋겠어요?”

 “에이, 그래도 여기까지 시간 내서 왔는데 뭐라도 해야죠.”

 몸과 마음은 같은 것을 원한다. 편안함이다. 몸이 건강한 사람이 피로를 느끼면 쉬고 싶고, 쉬면 나아진다. 자신의 몸에 휴식을 준 것이다. 이럴 때 휴식은 그 자체가 치유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 역시 스트레스를 느끼면 쉬고 싶고 그러면 나아진다. 이런 경우에도 휴식이 치유다. 그런데 마음이 건강하지 않을 때는 그렇지 않다. 쉬어야 하는데 잘 쉬지를 못한다. 몸이 진짜 아픈데 쉬면 괜찮아진다고 우기기만 할 뿐 병원을 가지 않고, 마음이 아파도 마찬가지로 고집을 피운다. 아프다고 쉬면 밥 굶기 딱 좋은 세상을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인양 자신을 대한다. 이렇듯 힘들 때 쉬면 나아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마음이 아플 때에는 한계가 있다.

 "더 이상은 이런 문제로 제가 저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저를 바라보는 눈이 느껴질 때마다 창피해서 숨이 막히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그렇다고 말을 못하니 답답해 미치겠어요. 이러고 있는 제가 한심하고 너무 미워요. 죽어버리고 싶어요. 아버지는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해 놓고도 남들 앞에서는 어쩜 그렇게도 뻔뻔스럽게 잘 다니는지...”

 아버지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집을 나왔지만 집을 들려 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똑 같은 경험을 한다. 아버지와 형식적으로는 화해도 하고, 아버지가 이전처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변하지 않는 눈빛과 말투에서 섬뜩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던 일은 그만두었고 일 때문에 엄두를 못 냈던 취미생활을 시작했지만 불편한 마음이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마음의 상처가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은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잘 돌보아야 하는데 혹시 자신이 잘못될까 싶어 조바심이 난 것이다. 겉으로 보면 멀쩡하게 지내는 아버지처럼 자신도 남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며 지내고 있다.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은 몸이 건강해 지는 것하고 비슷하다. 몸이 아플 때는 아픈 부위를 직접 고친 후 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쉬어야 한다. 감기 같은 경우는 순서를 바꾸어도 나아질 수 있지만 다른 경우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몸이 회복되고 나면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골고루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한 후 잘 쉬어야 한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이 다친 사건을 잘 들여다보며 새롭게 만나야하고 충분히 회복이 될 때까지 공감해주는 지지자를 곁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는 다시 아프지 않기 위해 마음의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남들은 웃으며 넘기지만 자신은 마주하기 힘든 장면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 장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는 견뎌야 한다. 몸에 근육이 생기려면 힘든 운동과정을 견뎌야 하듯이 마음의 근육이 튼튼해지려면 자신이 왜 힘든지 깨닫고 그것을 견디는 과정이 필요하다.

 “얘기를 하고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의 삶을 살았더라고요. 나한테 그렇게 관심도 없었고,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 전혀 이해를 못 하더라고요. 지난번에 화해했던 건 내가 하도 힘들어하니 얼떨결에 그랬던 것이고요. 아버지는 나를 괴롭힐 정도로도 관심도 없었어요. 지금은 그게 나를 더 힘들게 하지만 이젠 견딜만 해요. 어찌 보면 내가 핑계가 필요해서 아버지를 잡고 있었던 거에요. 그걸 놓으니 힘이 좀 빠지긴 하지만 많이 가벼워지는 걸 느껴요.”

 치유를 한다고 마음이 늘 편해질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마음이 늘 불편한 걸 피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 기대는 적절해 보인다. 마음이 건강해지면 마음이 불편할 때는 불편해 하고 가벼울 때는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치유 과정에서도 가끔은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불편할 걸 마주해야 할 때가 더 많다.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불편함을 견디면서 마음의 근육이 새로 생겨나는 것이다. 치유가 마음을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그런 것이다. 마음이 늘 편안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것쯤은 이젠 알아차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건강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