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과 마크롱 승리의 의미

  • 글쓴이: 원영수 (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
  • 2017-05-25

승자는 없고, 패자만 양산한 기묘한 프랑스 대선

 5월 7일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는 예상대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손쉬운 승리로 끝났다. 결선투표에서 마크롱 후보는 2,070여만표(66.06%)를 얻어 1,064만표(33.94%)에 그친 국민전선(FP)의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르고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마크롱이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격차로 여유있게 승리하면서, 당초 우려됐던 마린 르펜의 국우돌풍은 잠재졌다. 극우 르펜과 극좌 멜랑숑이 결선에서 대결하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사라진 이상, 주류언론이 부풀린 프렉시트(Frexit) 소동 역시 해프닝으로 끝나게 됐다.

 

프랑스 대선결과 (1차투표 4월 23일, 결선투표 5월 7일)

후보

정당

1차 투표

2차 투표

득표

%

득표

%

에마뉘엘 마크롱

전진(En Marche!: EM)

8,656,346

24.01%

20,703,694

66.06%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7,678,491

21.30%

10,637,120

33.94%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LR)

7,212,995

20.01%

 

 

장뤽 멜랑숑

불굴의 프랑스(FI)

7,059,951

19.58%

 

 

브누아 하몽

사회당(PS)

2,291,288

6.36%

 

 

총투표

36,054,394

100%

31,340,814

100%

유효표

36,054,394

97.43%

31,340,814

88.51%

무효표

949,334

2.57%

4,066,801

11.49%

투표자/투표율

37,003,728

77.77%

35,407,615

74.62%

기권

10,578,455

22.23%

12,041,278

25.38%

등록 유권자수

47,582,183

 

47,448,893

 

 

마크롱 승리의 의미

 마크롱의 여유있는 승리에 안도한 프랑스 국내외 주류 언론은 마크롱을 “프랑스 엘리트 정치의 이단아”로 치켜 세우면서 마크롱에게서 “좌우로 극명하게 나뉜 기성 정치의 한계를 넘는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고 있다.

 주류언론은 그 이유로 마크롱이 좌파정부의 경제장관으로서 자유무역과 노동개혁 등 친기업적인 우파 경제정책을 주도한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왜냐면 바로 그 똑같은 이유 때문에 프랑수아 올랑드와 프랑스 사회당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예쁘게 포장된 마크롱 정권은 여전히 동일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엄중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사실상 프랑스가 처한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해 기존의 신자유주의와 긴축 외에 어떤 다른 해결책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마크롱의 승리는 새로운 정치의 승리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카드를 내세운 과두세력(oligarchy), 또는 체제를 움직이는 세력(일명 Deep State)의 승리이며, 마크롱을 구원투수로 내세운 전략의 절묘한 승리이다. 그러나 현실은 분명하다. 2차투표에서 그가 얻은 2,070만표(66.06%)란 압도적 수치(?)에 현혹되서는 안된다. 1차투표에서 마크롱이 얻었던 857만표는 투표자의 24.01퍼센트, 전체 유권자의 18.1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4월 23일 1차투표는 이른바 1958년 체제의 몰락을 선언했다. 드골주의 체제의 양대축인 우파 공화당와 좌파 사회당이 몰락해, 사상 처음으로 양대 거대정당이 대선결선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조된 대안인 앙마르셰(En Marche!)의 마크롱과 극우 마린 르펜의 대결은 2002년 대선의 재판이었음에도, 주류언론의 요란한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미 예정돼 있었다. 따라서 마크롱의 대통령 당선은 프랑스 지배계급의 승리였지만, 잘 포장된 정치적 기만에 불과하다.

 

마린 르펜의 성적표

 2012년 아버지의 국민전선을 승계한 딸 마리 르펜은 외형상 1차 투표에서 768만여표를 얻어 2위를 차지했고, 2002년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에 이어 국민전선 역사상 두 번째로 결선에 진출했다. 마린 르펜은 2012년대선 때보다 100만표를 더 얻었고, 5월 결선에서는 1,000만표를 돌파했다.

 외형상 국민전선과 마린 르펜은 부정할 수 없는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2016년부터 대선 전까지 유지했던 30%대의 지지율에 비하면 성과는 아쉬울 것이다. 애초부터 결선에서 르펜의 승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이민과 경제위기를 무기로 프랑스와 EU의 주류 제도정치를 압박한 마린 르펜의 극우 포퓰리즘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마린 르펜 지도부 아래서 국민전선은 당원(85,000명)와 득표력(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제1당으로 등극)에서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위협적 제도정당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결선투표의 결과는 인상적이지만, 주류정당화 전략의 딜레마와 한계 때문에 르펜의 2세대 정치는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겨울 마린 르펜과 유럽의 극우세력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에 한껏 고무됐다. 그러나 취임 후 트럼프의 행보 때문에 미국의 동료는 그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초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서 제1당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됐던 게르트 빌더스의 자유당이나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 모두 트럼프 효과를 보기는커녕, 트럼프 때문에 강화된 반극우 정서로 예상보다 적은 득표에 머물렀다.

 

전망 - 불확실한 미래

 주류언론은 “갈 길은 첩첩산중”이란 말로 마크롱 정부의 미래를 은근히 암시한다. 6월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임기 내내 거대 야당들에게 끌려다니며 개혁 어젠다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나름 막강한 조직과 득표력을 갖춘 국민전선의 하원 의석이 2석에 불과한 현실을 보면, 신생정당 <앙마르셰>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프랑스 하원은 여전히 결선투표를 이용해 공화당(LR)과 사회당(PS)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사회당의 몰락 정도를 확인하는 것도 6월 총선의 관전 포인트이긴 하지만.) 마크리 정부는 사실상 좌중우 3파연합(EM-LR-PS) 정부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크롱이란 새로운 포장으로 동일한 신자유주의-긴축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만큼, 마크롱 정부의 미래는 여전히 체제의 총체적 위기와 불확실성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1차투표에서 선전한 장뤽 멜랑숑은 사라졌다. 2008년 사회당을 탈당해 만든 좌파당(PG), 공산당을 끌어들인 선거연합 좌파전선(FG) 역시 사라졌다. 멜랑숑이 대선을 앞두고 급조한 불굴의 프랑스(La France insoumise: FI)은 어떻게 될까? 멜랑숑의 대선은 개인 플레이였고, 멜랑숑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남는 성과는 없다. 프랑스 좌파(프랑스식으로 극좌파, 즉 공산당과 좌파당, 앙상블, 반자본주의신당, 노동자투쟁 등)는 이번 대선에서 최대의 패배자였다. 좌파의제를 극우파가 선점한 상황을 되돌릴 방법이 없는 한 위기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마크롱은 승리를 거뒀지만, 그의 실세 주주들은 정치적으로 패배했다. 마린 르펜은 패배했지만, 중대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장뤽 멜랑숑은 개인 플레이로 좌파의 체면을 세웠지만, 그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좌파들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프랑스 대선은 39세 마크롱의 새로운 정치로 포장한 사실상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원점으로 되돌아온, 승자는 없고 패자만 넘치는 묘한 선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