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으로 오래갈 줄 알았던 4.13호헌조치를 폐지시켰다. 1972년 유신헌법 이후 16년 만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는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6월 항쟁에 참여했던 많은 민주화 운동 세력은 선거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 때, 6월 항쟁에 참여하여 승리의 경험을 맞보았던 노동자들,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시위를 지켜보던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에서도 민주화를 이루고,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목소리를 터뜨렸다.
17년 전 서울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22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자도 인간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외치며 분신하였다. 17년이 지났어도 대부분 노동자들의 사회적 처지는 밑바닥에서 맴도는 삶이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을 부르는 말은 여전히 ‘공돌이’와 ‘공순이’였다. 공장 다니는 돌이와 순이에서 나온, 노동자들을 천시하고 비하하는 말이었다. 노동자들은 한 달 동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오랜 시간 힘들게 일해도 임금은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낮은 저임금이었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이해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회사 측 앞잡이 노릇을 하는 어용노조가 많았다.
1987년 7월 5일 울산에 있는 현대 엔진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7.8.9 노동자대투쟁이 불붙기 시작하였다. 울산에서 시작한 노동자 투쟁은 부산, 수출 공단이 있던 마산 창원을 거쳐, 거제도에서 구로까지, 강원도 태백 광산에 이르기까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1970년대부터 1987년 이전까지 민주 노조 운동은 주로 중소영세사업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중심이었는데 비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는 재벌계열 대기업 노동자들이 앞장섰다. 투쟁은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중화학공업에서 경공업으로, 광공업에서 운수, 부두, 선원, 사무직, 전문직, 판매서비스직 같은 모든 산업으로 퍼져나갔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한국전쟁 뒤에 벌어진 투쟁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노동자 1천 명 이상이 일하는 대규모 사업장 가운데 75.5%가 쟁의에 참가하였다. 3달도 안 되는 기간에 3300 건이 넘는 쟁의가 발생하였고, 모두 122만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투쟁에 참가하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쟁의 방식은 95% 정도가 먼저 일하는 작업장을 점거하고 파업농성을 벌인 뒤 협상을 ‘선투쟁 후협상’의 ‘불법’ 파업이었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중심으로 ‘노조결성의 자유-민주노조 쟁취’, ‘인간적 대우’를 요구하였다. 작업장의 민주화와 인간 대우를 요구하는 대표적인 예가 ‘두발자유화’ ‘복장자유화’였다. 노동자들은 군대와 같은 병영적 규율 속에 군인처럼 통제를 받으며 일해야 했다. 남성 노동자들에게는 머리가 귀를 덮으면 정문에서 출근을 막고 머리를 짧게 깍아 군인들처럼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니도록 하였다. 출근할 때 푸른 작업복을 입지 않으면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도 하였다.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요구와 함께 노동조합을 새롭게 설립하고, 회사 측 앞잡이 노릇을 하던 어용노동조합을 민주노주로 바꾸었다. 1987년 한 해 동안 노동조합이 2,675개에서 4,103개로 늘어났다. 노동조합 조직률도 12.3%에서 13.8%로 늘어났다.
1987년 노동자 투쟁에 대하여 정부는 '불순세력 개입'과 '국민생활', '국민경제'를 들먹이며 노동자들을 협박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질수록 '좌경척결'이라는 구호를 높여갔다. '좌경척결을 위한 3대 방안'이니 '좌경용공세력 척결을 위한 담화'니 하면서 국민들에게 '노동운동의 격화=좌경세력의 개입'이라는 등식을 주입하면서 대 탄압을 준비해 나갔다. 자본 측은 노사공존을 내세우면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파괴, 폭력, 불법행동'으로 매도하고 정부당국의 개입을 요청하였다. 그 과정에서 거제도 옥포에 있는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가 최루탄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거세게 타올랐던 노동자 대투쟁은 전두환 정권의 강경한 탄압을 받아 9월 중순부터 수그러들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자들의 거대한 ‘인간선언’이고 ‘주인선언’이었다. 100만이 넘는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을 천대하고 비하하던 '공돌이' '공순이'라는 말이 우리사회에서 썰물이 빠져나가듯 사라졌다. 그렇게 벗으려고 했던 푸른 작업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예전처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 노동자들은 투쟁하면서 스스로 노동자라는 의식을 높이고, 연대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7.8.9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운동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분수령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