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회의를 통하여 역사기행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그 동안 노조를 통한 교육은 근로기준법교육, 임단협교육, 조직화교육 등 노조활동과 연계된 교육들이었다. 하지만 역사기행은 노조활동과 전혀 다른 나를 힐링(?) 할 수 있는 교육일꺼라 생각하고 첫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첫 수업시간에 박준성강사님께서는 역사기행을 통한 조합원과의 소통을 이야기하였고, 직접 역사기행의 인솔자가 되는 체험활동까지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하지? 괜히 교육 듣는다고 했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4강의 수업을 모두 들은 후 처음 들었던 걱정과 우려는 모두 날라 갔다. 역사기행 수료 후 ‘정말 좋은 수업 잘 들었다.’ 라는 생각과 함께 수업을 마련해주신 박준성 강사님과 노동자교육센터에 이 글을 통해 감사드린다고 꼭 전하고 싶다.
“나도 역사기행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수업은 모두 4강으로 진행되었고,
1강 역사 기행의 의의와 진행/2강 역사기행사례-1984년 동학농민 전쟁/3강 불교 유적과 유물/4강 역사현장의 구성과 조형물로 구성되었다.
‘1강 역사 기행의 의의와 진행’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였다.
조합 활동을 하기 전, 나의 역사교육은 학교시험을 위한 어렵고 지겨운 공부였다. 하지만 조합 활동을 시작한 2013년 이 후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 민중들에 의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면서, 그 동안 민중의 역사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내가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뭔가 체계적인 공부를 통해서가 아닌 경험을 통한 막연한 인식의 변화로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이런저런 책들을 들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파편화된 단편적인 지식의 축적으로 뭔가 많이 부족하다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번 역사기행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역사 인식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역사인식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어떤 자리에서 서 있느냐’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라는 사실은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역사를 누군가에 의하여 쓰여진 과거의 결과에 대하여 피동적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좀 더 적극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을 중심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찾아가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과거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이 진정한 역사공부임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2강 역사기행사례-1984년 동학농민 전쟁’강의는 동학농민 전쟁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기회가 되었고, 수업을 듣고 난 후 분명히 달라진 점이 있다.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보면서 예전 같으면 ‘그냥 재밌다’ 로 읽고 끝냈을 역사소설도 이젠 이순신이 백의종군했던 시대적 배경을 상상하면서 그 시대 민중을 생각하면서 읽게 될 정도로 감수성도 커졌다.
‘3강 불교유적과 유물’의 강의에서 석탑 하나를 설명하면서 당시 시대적 상황과 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배경 및 절의 기둥이 둥근 이유 등 절의 구조물 하나하나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설명해주신 박준성 강사님의 강의는 감동이었다.
‘4강 역사의 현장’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고정관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특히 ‘탑’‘기념비’의 강의에서 왜 탑은 수직으로 높이 올려다보게끔 했는지 만든 이들의 의도를 알게 되었고, 수평의 기념비가 의식의 전환의 결과물이라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특히 독일의 가라앉는 기념비에 대한 강의는 지금도 생생하다.
첫 강의를 들으면서 역사기행 전문가로서 체험활동을 위한 준비도 함께 진행되었다.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듣던 역사기행 강의와 역사기행의 주체가 되어 인솔자로 역사기행은 세심한 준비를 필요로 했다. 1차로 역사기행 선정 장소를 정하기 위하여 수강생들이 각자 가고 싶은 곳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듣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수강생들의 현재 관심사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 2기의 역사기행 장소는 강화도로 결정되었다. 강화도 선정 후 역사기행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강화도 읍내와 초지진, 광성보 등을 돌면 되겠다고 생각 했지만 사전 답사를 통하여 동선을 파악하고 일정을 짜보니 하루 종일 강화 읍내를 돌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이전에는 강화도 하면 마니산만 생각났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역사기행을 통하여 강화도에는 고인돌의 선사시대부터 구한말의 항쟁역사까지 한 곳에 모여 있는 역사적인 장소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강화산성 북문을 시작으로 북장대에 올라가서 개간한 농지를 보면서 고려시대 강화산성을 쌓고 간척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던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또한 농경지너머 멀리 강화해협과 임진강을 바라보며 몽골이 쳐들어와 40년간 강화도에서 보낸 고려의 고종은 개성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였다.
고려의 옛 궁터는 ‘규모는 비록 작으나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었고, 궁궐의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고 개경을 그리워하며 저항의지를 키워 갔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제대로 복원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북한과 통일 후 고려에 대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역사 발굴을 하면 현재의 역사와 다른 결과물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지게 되었다. 궁터 안에 위치하고 있는 외규장각의 의궤를 보면서 조선 왕실의 중요한 행사 현장에서 직접그린 그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당시 사람들의 옷 색깔, 모양, 각각의 다른 깃발과 마차모양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조선 구한말로 옮겨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철종의 잠저 용흥궁, 강화조약을 체결 했던 연무당터까지 돌면서 그 시대의 아픔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적석사의 환상적인 일몰을 보면서 우리의 강화도 역사기행은 마무리 되었다.
‘나도 역사기행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교육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기행하는 역사기행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바로 알고 몸소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조직의 강화를 위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 탐방 및 답사를 통하여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알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고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추전하고 싶다.